영화 <공동정범>을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레아가 아직 있나?"라는 K 감독님의 말에, '레아가 어디지' 싶었던 나는 책상 밑으로 손을 내려 '레아'를 검색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수많은 검색 결과가 나왔지만 찾는 내용은 아니었다. 구글로 옮겨 검색해 보니, 몇 가지 결과가 나왔다. '남영동 펍 레아' 내가 찾던 곳이었다. 용산참사 피해자이자 생존자, 유가족이면서 '공동정범'인 이충연 씨가 아버지와 운영해 왔던 곳. 4년여간의 복역 끝에 출소하여 다시 연 곳. 용산참사에 관심이 있고 이야기를 꾸준히 좇았던 사람들은 그곳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알았을 거다. 뒤늦게 용산참사를 알게 된 나는 이제야 '레아가 어디지?' 하며 찾고 있었지만. 레아가 몇 년 전에 폐업했다는 글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때가 있다. 을지 OB베어 이야기. 나는 그곳이 어딘지 모른다. 어떤 의미인지, 어떤 이야기를 가진 곳인지.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기렸고, 함께 연대하며 투쟁했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새롭게 터전을 잡아 사람들을 불러다 축하 파티도 했다고 들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기억이 깃들어있던 곳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수많은 사람이 연대했고, 투쟁했고, 새로 자리를 잡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축하했던 이유는.
인권운동가이자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으로 활동했던 어떤 분은 기억이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그러니까 과거의 어떤 일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기억하고 돌아보는 것이며 참사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이 있다고. 기억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 사람들을 그저 홀로 내버려 둔 채 시간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기억이라는 건, 앞으로 이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작업이라고.
병원 가는 길에 지하철역에서 정선 가리왕산 케이블카를 홍보하는 광고판을 봤다. 아, 저기 케이블카가 생겼구나. 몇 가지 동시에 스쳐 지나갔던 기억들이 있다.
(1) 어릴 때 즐겨 읽었던 잡지 <소년>의 '편집부가 전하는 말'에서 읽었던 가리왕산 이야기: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원시림을 파괴하고 있다고. 거기 살고 있는 수많은 동식물이 있다고. 소중한 자연유산인데, 올림픽을 위해 함부로 파괴하고 있다고.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2) 실제로 페이스북에서 그런 서명을 본 적이 있었고,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가리왕산의 벌목과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연유산을 지키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저 서명에만 참여했던 것이지만.
(3) 설악산 케이블카: 설악산을 개발한다며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여러 환경단체에서는 (당연히) 반대했고 말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문구가 적힌 컵받침을 받아 한동안 쓰기도 했었다. 이때 서명에도 참여했던 것 같다.
(4) 결국 가리왕산은 개발됐고 설악산에도 케이블카가 설치됐다. 둘 다 환경파괴를 최소화한다는 조건을 걸었다고 들었다. 가리왕산은 올림픽이 끝나면 원상 복구한다고. 패배지만, 비참한 패배이지만 그래도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믿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5) 올림픽이 끝나고 가리왕산 복원에 강원도가 의지가 없다는 뉴스를 봤다.
그렇게 끊겨 있었던 기억이었다. 조각들로 나뉘어진 채 머릿속 어딘가를 부유하던 기억들이었다. 광고를 보자 그 기억들이 다시 상기됐다.
아주 오래된 원시림을 함부로 개발하다 보니 산사태도 났었다고 한다. 케이블카 운영이 기상 등 조건 때문에 갑자기 멈춰진 적도 많다는 뉴스도 찾았다. 이왕 개발까지 했으니 사람들더러 찾아오라고 내건 광고판을 마주했다.
참담함 말고, 무엇을 느껴야 할까.
사라져 버린 수많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200원짜리 불량식품을 팔며 수년간 아파트 정문을 지켜오던 구멍가게는 편의점으로 바뀌어버렸다. 오랜 시간 마을 주민들의 생활을 책임지던 마트가 사라져 버렸다. 준비물을 미처 못 샀을 때 한줄기 빛과도 같았던 문구점은 내가 중학교를 올라가면서 문을 닫았다. 도로 확장 공사를 한다며 상가를 철거할 때에서야, 십 년 정도 돼 보였던 간판 뒤에 숨겨져 있었던 육칠십 년은 돼 보이던 한약방 간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사라져 버린 많은 것들은 아쉬움과 애틋함을 남긴다. 설령 경험해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무언가를 상상해 보게 되는 것은. 사라져 버린 어떤 삶이나 생활, 행동을 떠올려보는 것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비록 사라진 것이지만 그것들이 끝나버린 거라는 생각은 안 한다. 비록 형태와 지리는 잃었지만, 훼손되었지만 그러더라도 외롭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사라진 어떤 것들을, 어떤 사람들을
누군가는 계속 기억하고 상기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