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찬하 Mar 07. 2016

심청 외전

다시 써본 심청전

 대강 우리가 사는 곳하고 비슷해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알 수 없는 세상에, 심청이라는 소녀가 살았다. 심청은 눈 먼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이였다. 그리고 심청은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없었다. 심청이 일곱 살 때쯤 빨래터에서 아주머니들이 떠는 수다에 들은 바로는, 심청의 엄마는 심청이 태어난 지 일년쯤 됐을 무렵 시루에 머리를 부딪쳐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다고 한다. 심청은 엄마가 죽은 지도 모르고 울기만 했더란다. 심청의 아버지는당신의 아내가 죽은 후 말이 없어졌고, 어느 날 아궁이에 몇 시간이고 멍하니 장작을 때다 거기서 튄 불똥에 시력을 잃었다. 이 사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심청이 미처 듣지 못했다. 심청은 엄마가 그렇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멍했으므로. 

 심청은 ‘엄마’라는 단어를 한 번도 제대로 불러보지 못한 채 자랐다. 으레 부모 중 한 사람 밖에 없는 아이가 그렇듯, 심청은 철이 일찍 들었다. 그리고 불행을 안은 가정의 아이가 가끔 그렇듯, 심청은 똑똑했다. 눈만 먼 것이 아니라, 말도 못하게 된 듯한 아버지의 끼니를 챙기면서도, 심청은 조금씩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심청은 자신의 아버지처럼 죽은 듯 살아가는 이들을 돕고 싶었다. 심청은착하다 못해 바보 같은, 사춘기가 올 시기의 나이이지만 여린 소녀였다. 그리고 막연할지라도, 그 꿈은 등불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온기는 없었지만, 그 빛은 심청에게 따스했다. 그러나 심청의 소박한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심청은 아버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냥 눈 먼 아버지는 아버지일 뿐이었다.주위 사람들 모두가 그녀의 아버지를 심 봉사라 불렀기에, 심청은 아버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고 알 수도 없었다. 심청의 아버지는 죽은 듯 아내의 기억을 붙잡고 살아갈 뿐이었고, 심청은 아버지를 챙기고 꿈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것만이 현재 삶의 전부였으므로.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 말하면 햇볕이 따가워 아무도 밖에 아무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던 날, 늘 그렇듯 심청이 집을 비운 사이 그녀의 아버지는 검은 낯빛으로 볕을 쬐고 있었다. 마치두 눈 뿐만이 아니라 온 몸을 태우라도 하려는 모습으로.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한 여자가 말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그가 아내를 잊지 못한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어디서 그 말이 들려온 지 몰라 감은 눈으로 주위를 다급히 두리번거리는 심청의 아버지에게, 그녀는 공양미 삼백 석만 있으면 아내의 영혼을 이승에 머물게 할 수 있다 말한다. 자신이 아내가 죽은 뒤 처음으로 말을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심청의 아버지는 공양미 삼백 석을 약속한다. 

 그리고, 그는 절망한다. 심청이 억척스레 이웃의 잔심부름을 해 그나마 자신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도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원망한다. 그는 공양미 삼백석을 마련해 아내를 저승에서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그리 죽은 듯 살지는 않았을 거라 자책하면서 흐느낀다. 햇볕에 말라 비틀어진 울음소리가 잦아들 무렵, 심청이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라며 사정을 묻는다. 너무 놀라 아버지가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심청은 덤덤히 아버지가 횡설수설 뱉어내는 사실들을 주워담는다. 그리고 당연하지 않은 듯 당연하게, 심청은 자신이 어떻게든 삼백석을 마련해 보리라 다짐한다.  

 삼백석을 마련하는 것은 어린 소녀에게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두운 곳에는 그녀처럼 불행한 이의 인생을담보로 돈을 건네 줄 이들이 즐비했다. 비참함과 덤덤함이 뒤섞인 채,그녀는 자신에게 가장 많이 돈을 줄 곳을 찾는다. 더 이상 밝은 곳에서 억척스레 웃으며다닐 필요는 없어, 오히려 부담은 평소보다 덜하다. 축축하고 어두운 곳을 돌아다닌 지 삼일 째, 심청은 바다로 나가면서 바다신에게 바칠 제물을 구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팔기로 결심한다. 다짜고짜 자신이 제물이 되겠다는 말부터 내뱉는 이 소녀에게, 뱃사람들은 사정도 묻지 않은 채 계약서부터 내민다. 불행한 가정의 불행한 아이여서 이런 선택을 할 것쯤은 그들도 알고 있으므로. 다만 심청과 비슷한 나이의 딸이 있어느끼는 연민에, 그들은 그녀가 죽은 뒤에도 그녀의 아버지를 돌봐주기로 약속한다. 

 다음날, 공양미 삼백오십 석이 심청의 집 앞에 쌓여가기 시작한다. 오십석은 뱃사람들의 연민으로, 곳간에 쌓인다. 허물어 쓰러져갈 듯한 집 앞에, 거대한 삼백 석이 낯설다. 심청의 아버지는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한다. 그는 바보가 아니라 심청이 자신을 팔지 않고서는 이런 대가를 받을 수 없음을안다. 전날 밤부터, 심청은 보이지 않았다. 불안의 연결고리가 맞춰지는 순간, 그는 머리를 움켜쥐고 절규한다. 그리고 무작정 밖으로 달려나간다. 몇 걸음 가지 못해, 쌀을 나르는 건장한 사내에 부딪쳐 나동그라진다. 땅 위에서 허우적대며, 그는 딸의 행방을 묻는다. 그리고 자신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그는 아내를 허무하게 보내고, 헛된 욕심에 딸마저팔아버린 아버지이다. 딸이 그렇게 팔려갔는데도 아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스치는 기대에, 그는 더 비참하다. 

 심청은 배 위다. 몇 분 안에, 심청은 죽어야만 한다. 심청은 불안하지도, 무섭지도 않다.다만 여태껏 고되게 살아오며 막연한 꿈을 꾸었던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다. 초점 없는 눈빛으로심청의 입만이 웃는다. 이내 눈에서 바닷물과 비슷한 굵은 것이 떨어진다. 엄마가 어떻게 죽은 지 처음으로 안 뒤, 심청은 오랜만에 운다. 아버지가 자신이 우는 것을 보지 못해, 더 이상 참아가며 울지 않아도된다.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를 사랑했는지 모른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 뿐만 아니라 엄마가 죽을 때 같이 죽어버린 아버지의 인생도 책임져야 했을 뿐이다. 그짐이 너무 무거웠음을 이제서야 알아, 심청은 흐느끼다 통곡한다. 그 커다란 울음소리가 갑판 위를 채우고, 눈에서 떨어진 짠물은 자신의 몸보다 먼저 세상과 작별을 고하는듯 바다로 섞여 들어간다. 뱃사람들은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거둔다. 책임지지 못할 연민은 짐이 될 것을 알아 쳐다보지 않는다. 그들이 다시 심청을 찾을 때, 심청은 그 자리에 없다. 그들은 이내 자신들이 가야 할 곳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떠난 자리에 물거품만이 하얗다. 

 하얀수건에, 심청의 아버지는 목을 맸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내를 저승에서 불러올 수 있다던 여자는 오지 않았다. 자신이 딸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날마다 커져갔고, 아내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은 그에 비례해 줄어들었다. 그는 다시 말을 잃었고, 얼굴은 더욱 검어졌다. 그리고 그가 기대고 있는 삼백 석 탓인지, 그는 더욱 작아 보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저마다 그를 보며 욕을 했다.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침내 귀마저 멀어가는 듯 했다. 가끔씩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의 집에서 쌀을 훔쳐갔다.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그는 자신의 감각을 하나씩 먼저 가 있는 아내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됐을때, 그는 하얀 천에 목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이 언제 검었냐고 묻는 듯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그렇게 며칠을 보냈고, 쌀을 훔치러 온 도둑에게 그 모습이 발견되어 수습됐다. 집 앞에 놓여 있던 삼백 석은 마을 사람들을 배불리 먹였다. 그에게 약속했던 여자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눈을 뜬 심청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파도소리가 들렸고, 바다의 짠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지 않아 울 수도 없었다. 사람이 되어 육지로 나오는대신 시력을 잃어버린 인어공주의 모습과 같은 심청을, 어느 순박한 어부가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갔다. 심청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억척스레 살기 싫었다. 자신의 유일한 불빛은 이미 꺼진 지 오래였다. 그녀는 이제 누군가를 돌보기는커녕, 돌봄 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그래서 심청은 몇 달을 그곳에서 지내다 가난한 어부의 아내가 되었다. 남편은 그녀의 사정을 단 한 번도 캐묻지 않았다. 그녀가 가끔 자신이 쓰러져 있던 곳을 감은 눈으로 바라보면, 안아줄뿐이었다. 가끔, 심청은 아버지의 소식이 궁금했다. 그러나 더 이상 자신이 그의 몫까지 감당하며살 수 없게 되었으므로 확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저 아버지가 엄마와 조우했기를 바라며, 자신의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심청은 남편과 같이 오래 살았다. 바다에 빠진 이후의 삶이 행복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을 녹인 건 결국 얼음이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