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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하 Jul 12. 2016

다시 여름

졸업, 그리고 500일의 썸머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에서 벤자민은 엘레인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앞서 벤자민은 엘레인의 엄마인 로빈슨 부인과 은밀한 관계였지만 끝내는 엘레인의 결혼식장에 난입해 그녀를 택한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탄다. 둘의 첫 일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거한 셈이다. 쨌든 그 둘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그런데, 둘의 얼굴에서 미소가 점점 사라지다 끝내는 무표정으로 변한다. 영화는 더 이상 그들의 모습을 비추지 않는다. 영화가 그렇게 끝나긴 하지만, 나는 그들이 선택을 되돌리지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다만 후회했을 거라 생각한다. 아마 그들은 서로만 있으면 행복할거라 생각하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혀 울며 불며 싸울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은 선택을 책망하다 곧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으며 서로에게 돌아갈 것이다. 어쨌거나 너무 큰 일을 저질러 버려서 선택지 따윈 없다. 그러니까,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나 아빠한테 애걸하면 다 해결되던 유년기에서 '졸업'한 거다. 

 왜 뜬금없이 '졸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이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이 곧 썸머와 톰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맞다. '500일의 썸머'에 등장하는 톰과 썸머, 그리고 썸머와 톰. 톰은 이 영화를 잘못 이해해 '운명의 상대'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리라 믿는다. 한참 뒤 그런 톰과 사귀는 썸머는 이별이 가까워오기 직전 졸업을 보며 운다. 

 썸머가 운 이유는, 벤자민과 엘레인의 표정이 어두워져 간 이유와 비스무리 할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멀리 왔다. 썸머는 톰을 좋아하지만,  그 앞에 거창한 수식어는 붙이지 않는다. 그냥 좋으면 그게 다다. 톰과 진지한 관계가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했지만, 어쩌다보니 그와 같은 침대에 누워있다. 그래도 그 순간이 나쁘지 않아서 관계를 지속해왔다. 그런데 상대는 나를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담스럽다. 톰은 결혼식장에서 뛰쳐나온 직후 둘의 미소와 운명적인 사랑을 기억한다. 썸머가 기억하는 건 사라져가던 둘의 표정과 다가올 현실인데 말이다. 썸머는 자신과 톰이 그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나뉘어짐을 느낀다. 그 간극이 이별로 이어진다. 

 썸머에게 톰은, 엘레인의 벤자민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반대 상황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졸업'에서와 달리, 썸머에게는 관계를 포기하는 선택지가 존재했다. 그 선택지를 택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그를 좋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어 그러니까.....운명 정도의 크기가 아니었을 뿐이다. 톰이 썸머한테 울부짖는 장면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썸머는 톰과 헤어지고 나서야 운명의 상대를 찾았다고 말한다. 다들 한 번씩은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친구든 연인이든 상대가 나를 생각하는 것 만큼 나는 그 혹은 그녀를 생각하지 않는,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은 상황. 그렇게 관계를 이어가지만 끝을 뻔히 볼 수 있는 상황 말이다. 이건 그 뒤에 나타날 사람이 어떨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독립적인 문제다.  

 공교롭게도, 몇백일을 이별의 후유증에 시달려왔던 톰은 그 독립적인 문제 때문에 미칠 노릇이다. 이제 운명 같은건 어디에도 없다고 기껏 스스로를 위로해놨더니, 전 연인이 자신은 운명의 상대를 찾았다고 말한다. 썸머 썅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는 일이라 더 속이 터진다. 이별 뒤에 썸머에게도 톰이 했던 말들이 아른거렸을 것이고, 어느 순간에 그녀는 그걸 믿게 되었다. 그 믿음을 가진 상대가 톰이 아니었을 뿐이다. 좋아'했던' 사람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건 생각보다 큰 자기 수정이 필요한 일임에도 썸머는 그랬다. 톰 입장에서도 결국에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그녀를 운명의 상대를 믿었던 때를 떠올려보면, 아마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고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나대로, 그녀는 그녀대로 바뀐대로 건재하게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아무튼 둘은 가벼움과 무거움을 주고받았다. 썸머는 가벼운 관계들로 가득했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삶을 압도하는 무거움을 만났고, 톰은 무거움만이 자신을 매어둘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썸머(summer)'의 다음 계절인 '아텀(autumn)'을 만난다. 썸머한테 데인만큼, 톰은 아텀에게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배울 것이다. 다만, 나는 톰이 지난 연애에 너무 낙담한 나머지 확 바뀌어서 아텀을 운명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우연일 거라 매도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무엇인가에 상처받고 바뀌면서라도 스스로를 다잡은 사람은, 적어도 똑같은 상처를 남에게 남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톰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대로 잘 사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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