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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하 Jul 29. 2017

군함도와 덩케르크

역사를 그리는가, 역사를 이용하는가 

 민족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양하다. 그건 누군가에게 처참하게 짓밟힌 과거에 대한 분노과 절망일수도, 자신들이 행한 과오에 대한 후회와 반성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 기억은 스크린으로 옮겨진다. 이 과정에서 철저한 고증은 1순위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대다수가 그 내용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감이 되지 않으면 분노도 반성도 할 수 없다. 대다수가 그 내용을 미리 알고있을 가능성이 큰 현대사의 경우 특히나 그렇다. 저 멀리서 장군님이 날개 달린 말을 타고 달려오면서 검을 휘두르자 하늘이 번쩍 하더니 적군들이 나가떨어졌다는 식의 내용은 이제 어느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다. 


 군함도는 영화에서 치욕의 역사를 끄집어낸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덩케르크와 여러모로 비교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역사라는 소재가 전부이다. 그 외에는 어떤 공통점도 발견할 수 없다. 덩케르크는 우리가 해냈다는 자부심의 역사이고 군함도는 우리가 당했다는 분노와 좌절의 역사이다. 덩케르크가 전쟁터에 서있는 이들이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영화라면 군함도는 생존하려는 이들이 전쟁을 벌이는 영화이다. 덩케르크가 관객에게 냉엄한 과정을 거쳐 심장이 요동치는 결말을 선사한다면 군함도는 관객에게 격렬한 과정을 거쳐 망연자실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이다.  


그렇다면 왜 군함도는 관객에게 실망을 안길 수 밖에 없는 영화였나. 군함도가 기억을 했어야 하는 역사가 우리가 일제에 맞서 빼앗긴 것들을 되찾았다 혹은 살아남았다는 자부심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우리를 착취하고 억압했는지에 대한 분노이다. 명백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어져 있는, 지금도 논란에 휩싸여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에게 알고 보면 가해자도 인간적인 면이 있었고 피해자 안에서도 나쁜 놈들이 있었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더군다나 영화는 일본에 협력해 같은 민족을 배신하거나 억압하는 인물을 그리느라 정작 조선인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일본이 조선인을 어떤 식으로 수탈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서술하지 못한다. 


 이는 배우들이 원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소비된다는 문제와 맞물려 서사를  통째로 망가뜨린다. 황정민이 탄광에서 노역하는 장면은 국제시장에서 더 많이 등장한다. 영화 후반부 송중기가 등장하는 시퀀스들은 누가 봐도 태양의 후예를 더올리게 한다. 소지섭은 시종일관 누군가를 때리거나 누군가에게 맞느라 징용에 끌려왔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영화는 이렇게 여러 장면에서 삐걱거리다가 마지막 전쟁 장면에서 송두리째 무너진다. 전쟁 장면에서는 비춰지는건 드디어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있다는 희망찬 모습이 아니라 무차별적인 살육의 장면 뿐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을 보면서 관객은 생존의 어떤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다.  


  덩케르크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덩케르크 안에서 적군은 단 한 번도 명확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등장 인물들의 배경에 대해서는 국적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언급 되지 않는다. 덩케르크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돌아왔다’는 사실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그 한 점 돌파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것들을 덜어낸다. 그들 안에서 배신자가 있었는가 혹은 누가 그들을 공격했는가는 영화 안에서 하등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에 미덕은 이 부분에 있다. 덩케르크는 영국군의 생존을 강조하기 위해 독일놈들 나쁜놈들이라는 얄팍한 논리에 기대지 않는다. 그 결과로 관객은 영화가 끝나면서 그들의 생존에 안도하게 된다. 이것이 영화가 역사를 소재로 했을 때 사건을 그려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항상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에는 그것이 역사를 이용하는가 혹은 그려내는가에 대한 질문이 따라붙는다. 군함도는 전자에 해당한다. 역사를 모르면 올바른 국민이 아닌 것처럼 홍보하고 막상 영화는 역사를 올바로 그려내지 못하는 건 이제 좀 그만 보고 싶다. 영화 외적인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군함도는 분명 올바른 영화는 아니다. 주관적으로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역사는 객관화될 수 없다. 오히려 어설픈 객관화는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마저 훼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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