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필드 골프는 내 여가로는 꿈꿀 수 없는 것이기에 가끔 있는 골프장 외근은 나름 힐링이다. 사람들이 골프를 치러 오는 게 아니라 자연을 보러 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렇지만 일은 일. 이미 대부분의 내용은 상호 협의가 되었기에 이 촬영장까지 온 것이긴 하지만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날이기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곳에서 나의 일은 명확하다.
"역할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일" 모두. 비즈니스 디벨롭 매니저라는 허울 좋은 직책이 있긴 하지만 이미 디벨롭 된 현장에서 내 역할이 따로 있진 않기 때문이다. 이 촬영의 앞과 뒤가 내 영역이다.
그렇기에 현장에서의 나는 광고주, 제작진, 출연진 모두의 심기를 살펴야 한다. 기획한 대로 100퍼센트 흘러가는 현장은 없다. 조금이라도 기획이 틀어지면 누군가는 기분이 좋지 못할 것이고, 그 묘한 밸런스를 지켜주어야 모두가 행복하게 촬영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한 끼도 먹지 못하면서 내 법카로 다른 이들의 목을 축이고 배를 채운다. 정작 내가 타야 할 서울행 버스는 어드 덧 막차만 남은 시간이지만 모든 이가 자기 차를 안전히 찾아갈 때까지 남아있는다.
누군가 나에게 "역할이 정해져 있지 않은 모든 일"을 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해야 일에 도움이 될 것 같고,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난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가끔은, 내가 언제까지 이 모든 일을 이렇게 대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