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게임> - 오음
오음 작가의 장편소설 <외계인 게임>을 처음 접한 곳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였다.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수많은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알고리즘이 이끈 플레이리스트 채널 중 하나였다. 책의 주요 문구를 바탕으로 책의 감성에 맞는 노래들로 꾸린 플레이리스트 광고였다. 저작권 때문에 플레이리스트 채널들은 어떻게 수익을 내나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유료광고를 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오랜만에 재밌어 보이는 국문소설인 것 같아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책의 대사, 지문들을 따라갔다.
<외계인 게임>은 파키스탄의 훈자라는 웬만한 여행 고수가 아니라면 알지도 못할 것 같은 곳에서 만난 5명의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행지에서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한 명 한 명의 시점에서 각자의 사연을 읽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듣기만 해도 고생일 것 같은 여행지에 단신으로 떠났다는 것부터 이 여행은 '도망' 혹은 '정리'의 성격을 가진다. 정작 본인들은 어떤 사연과 고민을 가지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떠나왔으면서, 훈자에서의 이야기가 마냥 쾌활한 것이 어쩐지 처음부터 조금 위태로워 보였다. 모두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깊이 숨겨두고, 현재는 있지만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행을 떠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새로운 경험과 재미일 수도 있지만, 단절되기 위한 여행도 있다. 올 초 내가 심리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단절은 직면한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그리고 침착하게 볼 수 있게 해 준다. '나'와 '현재'에 대한 모든 것들이 일시 정지된 것처럼 느끼게 해 주고, 나아가 때때로 잊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까지 준다.
그렇게 각자의 사연과 스스로와의 약속을 가지고 훈자에서 만난 5명은, 다 같이 다른 여행지로 떠나기 전날 밤, 한 명의 제안에 의해 "외계인 게임"을 하게 된다. 돌아가면서 어떤 상황을 제시하고, 제시자를 포함한 5명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정하면 소수가 결정한 행동을 택한 사람(들)이 외계인이 되는 게임이다. 술자리에서 단순하게 진행되는 게임을 표방하지만, 각 사람들이 제시하는 '상황'에는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각자의 사연과 고민이 담겨 있다. 이 다소 즉흥적인 게임은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의 엔딩을 준비하던 5명의 주인공들의 결정을 크게 흔든다.
<외계인 게임>은 첨예한 갈등구조는 없지만 신기하게도 사람 간의 이해와 공감의 부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큰 서사 없이도,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이 각 등장인물들이 느낀 인생의 공허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마치 작가가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온 이 5명을 모두 직접 경험해 본 것처럼.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한없이 쉽게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타인의 이해와 위로는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인생에 한 번쯤 찾아올까 말까 한 진정으로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애타게 기다리는 걸지도 모른다. 일시적일지도 모르지만 평생을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그 순간을.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생애를 바라봐야 할지도 모른다. 벚나무의 꽃만 보듯 사람을 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히 외계인일 것이다." - 본문 중-
아름다운 소설이었으면 했지만, 이야기만으로 위로를 얻던 시간이 떠올라 내버려 두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 또한 이 5명의 외계인의 이야기에서 조금은 더 외계인이 되어도 괜찮겠다는 위안을 얻은, 8월 16일의 대체공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