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게 내리는 빗줄기는 세상을 회색으로 물들이고
날갯짓하듯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이는 작디작은 일에 신경이 곤두선다.
습한 기운이 가득한 집은 어딘가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치워도, 씻어도 냄새나는 싱크대는 지나칠 때마다 거슬린다.
막연하게 미뤄놓더라도 결국은 제 일이니 해결할 수밖에
그나마 찬 공기가 감도는 안방을 지나면 꿉꿉한 기운이 감도는 거실
할 일을 생각하고, 움직이 돼 그 무엇도 하고 싶은 게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득한 일거리에 괜히 답답함을 느낀다.
내가 있는 이곳은 자유로운 감옥이 아닐까.
문득 이 자유의 소유가 온전히 나인지 물어본다.
어느 유명한 소설 속 비유처럼 나는 알 속에 갇혀 있을지도.
별일 아닌 일을 앞둔 채 꽤 심각한 철학적 의문을 떠올린다.
이것은 귀찮음의 발로일까. 답답함의 발악일까.
의문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을 지나, 내일도 지나 계속 이어갈 테지
무려 별일 아닌 일 앞에 둔 채 오롯이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미학자가 된다.
그래서 이건 정말 별일이 아닌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