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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그늘 Jul 20. 2017

글을 쓰는 일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거슬로 올라가면 일기를 쓰던 초등학생 때의 내가 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일기라는 게 숙제라고만 생각하던 때였다. 대충 끄적여서 해치워버리면 되는 존재였기에 어제와 오늘의 일기가 크게 다르지 않는 그런 글이었다. 매일 거의 같은 내용으로 3줄 정도만 채우다 보니 한 번은 선생님께서 크게 야단을 치셨다. 얘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3줄 짜리 내 일기를 읽어주시며 이렇게 쓰면 안된다고 했다.

 

그 때의 내가 부끄러웠는지 담담했는 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기억나는 건 그런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일기는 1줄 정도 추가되었을 뿐이라는 거다. 일어나서 학교 갔다가 돌아왔다는 내용에서 그 날 먹은 저녁 반찬에 대한 언급만 늘었을 뿐이다. 그저 일기일 뿐이지만 내게 있어 '글'이라는 건 그랬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큰 비중, 아니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기도 민망한 만큼의 존재감이 없었다.


중학생이 되었다. 나름 나이를 먹었다고 만화책을 즐겨보다 만화방 사장님의 권유로 판타지 소설에 입문했다. 판타지 소설은 만화책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 전까지 '소설'이라 하는 건 보면 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글은 '재미'가 있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하던 때는 좋아하는 소설책을 쌓아놓고 하루종일 읽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몇 번의 시도가 있었다. 이런 아이디어가 좋겠다고 생각해서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그리 오래 가진 못 했다. 항상 아이디어만 있었다. 막상 쓰고 나면 재밌지가 않았다. 재밌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재밌을 것 같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재미가 없었다. 근데, 사실 돌이켜보면 참 게을렀다. 방법도 몰랐고, 알려 줄 사람도 없었고, 그런 사람을 찾거나 찾을 기회도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좋아서라기보다는 이제 컸으니 변해야지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판타지 소설에서 일반 문학으로 아주 조금 관심이 돌아갔다. 순수 문학 소설을 읽어 보기도 하고, 시집을 살짝 들여다보기도 했다. 여전히 어렸던 나에게 '시'는 매력적이었다. 짧았다. 짧은 글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시작되었다.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짧은 글이었다. 그러다 운율을, 함축을, 그러한 것들을 조금씩 고려해서 쓰기도 했다. 무슨 용기였는 지 문학 선생님께 시를 보여드리고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선생님께서는 시의 좋고 나쁨을 떠나 시를 쓰는 내 모습을 칭찬해주셨다. 기분이 좋았다. 단순했다. 그 작은 칭찬은 '어쩌면 나에게도 재능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두 세개 정도 교내 대회에도 시를 출품하였다. 정말 기대하지 않았는데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것도 2개의 대회에서 말이다. 문화상품권이 부상으로 딸려왔다. 인생 최고의 순간들 중 하나였다. 남고이기에 시 쓰는 대회에 참가하는 인원은 고작 해야 10명이 조금 넘을 때의 일이었다.


좋게 말하면 나는 아주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거기서 만족했다. 더 글을 쓰지도 않았고,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자연스레 고삼이 된 나는 수험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다. 어쩌면 있다고 믿었던 그 재능에 대한 희망도 오래 가지 않았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부딪혀보지도 않고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었다. 


그래서 지금은?


대학에 와서도 시를 쓰긴 했다.

게을러지지 않으려고 하루에 한 편씩 쓰자는 생각으로 10분 고민하고 10분을 써서 '시'라는 이름을 달고 SNS에서 올리곤 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시를 쓸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이해할 순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정말 성실히 살고 싶어서일지, 아니면 글 쓰고 싶은 욕구를 푼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시 쓰는 남자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정말 웃긴 것은 그렇게 대충 써서 매일 올리다보면 어쩌다 한 번은 정말 좋은 시가 나오곤 했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긴 했지만 정말 가뭄에 비 나듯 댓글이라도 하나 달리면 참 기분이 좋았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많은 관심이 아니더라도 그 작은 관심 하나가 입꼬리를 올라가게 했다. 초등학생 때 일기로 야단 맞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는 칭찬이 받고 싶었던 거였구나.


어린 아이도 아닌데 칭찬에 목이 마른다.

얼마 되지 않는 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칭찬해주는 사람이 점점 준다. 그리고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은 전혀 작아지질 않았다. 그 가운데서 오는 괴리감이 있다. 너무나 칭찬을 받고 싶은데 어디서 받아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그 만만하지 않다는 세상을 만나보지도 못 했다.


그래서 다시 지금은?


그 어떤 거창한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아직도 있지만, 어차피 그 마음은 달리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다시 글을 쓰려 할 뿐이다. 그 동안 내가 쓴 글을 본 사람들은 사실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특별히 할말이 없구나 정도이다. 그리고 나는 참 그 느낌이 싫다. 결국 아무 감흥도 이끌어내지 못 한다는 말이 아닌가. 하물며 초등학생 때 쓰던 일기조차 선생님에게 답답함이라는 반응을 이끌어냈는데 지금은 그 어떤 반응도 얻지 못 하다니 이쯤이 되면 오기가 생긴다.


어차피 나는 전력 투구할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무언가에 꾸준히 말 그대로 정진할 줄은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이 좋든, 나쁘든, 내게 글에 대한 재능이 있든, 없든 그저 글을 쓸 생각이다. 칭찬을, 인정을 받고 싶으니 그리 될 때까지 글을 쓸 생각이다. 이제 그 만만하지 않다는 세상 얼굴이라도 봤으면 참 좋겠다.


돌이켜 볼 때 창피해서 다시 못 읽을 글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런 글이라도 한 번 마무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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