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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그늘 Jul 29. 2017

졸업이라는 목적지

  이 대학이란 곳에 입학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던가.

  세상이라는 게 뭐가 뭔지도 모를 때, 나는 이 사회구조 속에 던져져 ‘학교’라는 존재와 조우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존재는 어린 시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렇게 학교를 통해 세상을 서서히 알아갔다.

  달리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때였다. 목적의식이란 게 있었던가. 그저 어떻게든 즐기려고만 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시간은 날 ‘졸업’이라는 목표 지점에 데려다 주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그제야 나는 처음으로 졸업이 아닌 ‘수능’의 존재를 바라보게 된다.

  ‘아, 저 녀석이 최종보스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수능을 못 보면 인생이 망하고, 대학을 가면 인생이 필거라고 믿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순진한 생각이었지만, 그 때 당시만 해도 참 진지했다. 

  대학교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종보스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은 최종보스가 아니었고, 나는 이 사회에 존재하는 교육 시스템에 이미 잘 훈련된 부류였기에 선택의 자유가 넓어졌음에도 ‘졸업’을 향해 나아갔다. 내 경우엔 유독 좀 멍청했던 것 같다. 다른 방향이라곤 생각해보지도 않고 오로지 한 방향만을 고집했으니 말이다.

  4학년의 절반을 보내고, 다시 졸업을 앞두고 있다.

  군대도 다녀오고, 휴학도 한 번 해보고 나서 그런 지 졸업이라는 것에 아무 감정이 없다. 단지, 이제 저 곳을 통과하면 또 어느 곳을 향해 가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든다. 모두가 대학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을 간 내 입장에서 대학교 졸업은 사회가 마련한 마지막 목표 시스템이다. 취업이라는 목표도 있지만, 그것은 정해진 거라기보다는 내가 정해야 될 문제로 보는 편이다. 그런데 이 취업이라는 목표 때문에 졸업을 바라보는 주변의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 시큰둥하다. 졸업보다는 취업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보니 예전처럼 졸업에 대한 감성을 별로 못 느끼는 것 같다. 오늘날의 대학교 졸업이라 함은 즐거운 시간을 보낸 곳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졸업 후에 취준생과 직장인으로 나뉘어서 한 통계자료의 어느 수치로 존재하게 될 것인가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취업에 대해서 큰 목표 의식이 없다. 

  무언가 평생을 쫓기며 살아서 그런지 지금은 앞보다는 옆을 보며 살고 싶다. 어떤 면에서 보면 취업이라는 것도 분명 사회가 만든 해야만 하는 시스템 중 하나이긴 하다. 단지, 그걸 바라보는 내가 변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정해져 있는 목적지는 대학교 졸업이 마지막이다. 그 이후는 이제 내가 정할 일이다. 그런데, 그 목표라는 게 지금처럼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존재한다. 버킷리스트처럼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나하나 이루며 사는 것이다. 

  흔히 하는 비유처럼 인생을 항해로 비유하자면, 지금까지는 목적지를 향해 돌진만 했다면 이제는 속도는 줄이더라도 천천히 주변도 둘러보고, 바다의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그러면서 가고 싶다. 그런 면에서 졸업이라고 하는 내가 생각하는 마지막 목적지를 앞에 둔 이 시점에서의 내 기분은 어떨까.

  설렘일까. 두려움일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찬 설렘일 수도 있다. 그리고 새롭기에 잘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아마 제일 현명한 답은 둘 다 조금씩 있다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설렘도 두려움도 아니다. 배를 타고 마지막 도착지에 도달한 상황이다. 이제 앞으로는 누가 정해준 목적지 따윈 없다. 그럼에도 출발을 해야만 한다면 내 기분이 어떨까. 솔직히 말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귀찮다.’이다. 목적지가 없으면 없는 대로 막막할 것 같고, 목적지를 정하자니 그 자체로 많은 생각이 들어가니 귀찮고, 정해지면 또 어딜 가야 한다니 귀찮다. 이 모든 게 참으로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우스운 일이다. 그렇게 나름 긴 시간을 거쳐서 졸업을 하려니 귀찮기 짝이 없다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인 것을. 이것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뜻은 아니다. 실상 인생이라 해봐야 목적지에 도착해봐야 영화에서처럼 BGM이 터져 나오면서 다음 날 눈을 떠보니 다른 세상이 되는 그런 일이 없다는 걸 알기에 드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소소함에 더 눈이 간다.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들도 알고 보면 거기서 거기더라. 어차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말은 귀찮다고 해도 결국 나는 하고 싶은 걸 찾을 테고, 그 곳을 향해 또 갈 것이다. 내게 있어 삶은 그것의 반복이고 그런 와중에도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는 그런 삶을 원한다. 

  졸업이라는 단어가 이러저러한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혹은 아무 생각이 없든 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러한 감정들 위에 서있다. 결국 나는 그 길에 끝에 다다르게 될 것이고, 그 곳에서 나는 귀찮다와 같은 감정적인 물음과는 별개로 한 가지를 생각을 할 것이다. 

  ‘앞으로 뭐해먹고 살지?’

  졸업이고 뭐고 간에 직면하게 되는 가장 현실적인 질문에 쓸데없는 잡생각은 다 도망가버리고, 해답을 찾기 위해 매일 같이 집을 나서다 보면 어느 새 나는 또 항해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정신없이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바란다.

  제발 이번에는 좀 더 여유 있고, 즐겁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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