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문득 초사가 되다

31)

by 최희철

31) 문득 초사가 되다.


K808호 초사 변규섭씨는 K501호 선장 발령을 받아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 역시 우리와 같이 일본으로 가서 중고선을 인수해서 이곳으로 올 것이다. 나는 졸지에 초사가 된 것이다. 승선한지 14개월 정도 된 것 같았다. 그 전에 해외어업에서 새롭게 인수하는 K508호 초사로 K202호 2항사로 있던 동기가 발령이 나서 한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것 때문에 선장은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같은 동기인데 자신이 데리고 있는 놈은 2항사이고 다른 놈은 초사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 배 초사가 그 사이에 선장 발령이 난 것이다. 그래서 난 얼떨결에 초사가 되었다. 이제 초보 항해사 티를 벗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정말 얼떨떨하였다. 초사가 되면 2항사 때와는 달리 배의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관리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나의 상황이 그렇다보니 선장은 비록 내가 초사지만 안심이 되질 않는지, 2항사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하면서 사실은 나에 대한 감시도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요 어벙한 놈이 혹시 대형 사고라고 치면 어쩌나’

하지만 나의 생각 역시 단 하나 뿐이었다. 큰 사고는 치지 말자. 그것이었다. 모든 것은 안전하고 또 안전하게.

일단 당직시간이 바뀌었다. 2항사 때는 13~01시, 12시간 당직이었는데 이번에 01~13시까지가 당직이었다. 그리고 나의 파트너도 고창준 3항사가 아니라 강철 3항사였다. 참 그들도 이젠 직책이 한 칸씩 올라갔다. 둘 다 2항사가 되었고 처리실을 뛰던 실항사가 이젠 3항사로 브리지 당직을 서게 된 것이다. 초사는 야간 당직이므로 선장이 자는 시간 동안 당직을 서야 한다. 초사마다 다르지만 나 같은 초보 초사는 야간에 어디서 조업을 할지에 대한 대략적인 큰 그림을 선장이 그려주고 내려간다. 가령 이곳에서 해 보고 어획 성적이 좋으면 그곳에서 계속하고 나쁘면 저곳으로 이동하고 그런 식으로 ‘나이트 오더’를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그때는 선장도 일어나 있으니까 한 방 한 방을 선장이 지시하는 편이다.

하지만 심야시간이라 할지라도 사고가 나면 선장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 아니 하는 게 좋다. 왜냐하면 초사가 처리하고 난 뒤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괜찮은데 그게 큰 사고로 악화되거나 몰랐던 것들 중 나쁜 요소가 나중에라도 발견되면 책임 추궁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난 약간 소극적인 사람이라서 시키지 않는 일은 거의 안하는 편이고 대체로 시키는 일만 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작은 사고는 그냥 내가 또 처리하는 편이었다. 그건 그 작은 사고에 자신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작은 사고인데 선장에게 연락해서 큰 사고로 확대하는 게 싫어서. 그러다보니 난 초사를 하면서 심야에 몇 번 급양망을 했었지만 모두 혼자서 처리를 해 버렸다. 그러니까 선장이 아침에 일어나도 어제 밤에 무슨 사고가 일어났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곽선장은 그게 불만이었던 것이다. 초보 초사 주제에 급양망할 때 왜 자기에게 연락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너는 이놈아 급양망을 허면 나헌티 연락을 해야지 혼자 처리하냐”

“...”
“뭣도 모름시롱”

하지만 나 그 이후에도 연락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큰 사고가 나질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어떤 사고를 처리하다가 그게 큰 사고로 확대되었다면 아마 나는 선장에게 얻어맞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잘 해서가 아니고 그냥 내가 처리하는 것보다 선장에게 연락하는 게 더 어렵고 힘든 것 같아서. 어쩌면 그게 아마 나 같이 소극적인 사람의 특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더 적극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절대 아니다.

초사가 되면 야간조업을 담당하게 되지만 선장이 브리지로 올라오지 않으니까 2항사 때와는 달리 보이스 통신 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러다 보면 다른 배 초사들과도 친해질 수 있다. 초사들 중 오로라와 K801호 초사 둘은 서로가 라스 때부터 알았다면서 서로가 매우 친한 척을 했다. 같은 초사라도 나 같은 햇병아리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초사 당직시간에도 난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었다.

라스팔마스는 스페인령이라 그곳에 있다가 온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조금씩 할 수 있었다. 둘은 서로를 호출할 때도 늘 ‘깜비오(cambio)’라고 불렀다. 보이스에서 ‘깜비오, 깜비오’ 하는 걸 곽선장이 한 번 듣더니 저거 무슨 소리냐고 했다. ‘지랄들 한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나도 그들에게 그게 무슨 뜻이냐고 여러 번 물어 보았으나 결코 가르쳐 주질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들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사용한다고 했다. 나중에 안 뜻이지만 ‘변화, 교환’이라는 의미의 명사였다. 그러니까 라스에서 스페인 배들끼리 교신하는 것을 들은 모양이다. 사실은 깜비오의 동사형이 ‘깜비아르(cambiar)’인데 교환하다, 바꾸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그 말을 굳이 의역하자면 보이스에 ‘나오라’라는 뜻 같았다. 자신들이 그곳에서 멋지다고 생각한 것을 뭣도 모르는 나 같은 애송이 앞에서 자랑삼아 한 것이었다. 나도 우리 선장처럼 ‘지랄들 한다’고 여겼다.

오로라 초사는 보이스 통신에서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일반상식 책을 보는지 아는 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종종 그의 말씀을 귀담아 듣기도 했다. 나도 상식적인 면에서는 완전히 먹통은 아닌데도 배울 게 많았다. 그리고 깊은 밤에 무얼 먹는지 ‘쩝쩝’거리는 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물어 보면 초콜릿을 먹고 있다고 하면서 ‘당분’에 대한 예찬론을 펼쳤다. 피곤하거나 잠이 올 때 당분을 먹으면 에너지가 올라간다는 논지였다. ‘당직 설 때 피곤함을 느낄 정도로 오버타임을 많이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접선해서 초콜릿 몇 개를 받아 먹어보기는 했지만 특별히 에너지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진 못했다. 그때 먹던 초콜릿 이름이 ‘맥킨토시(macintosh)’였다.

K801초 초사는 방질을 좀 거칠게 하는 사람이었다. 트롤어선은 배만 피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고기가 좀 난다 싶으면 겁도 없이 배를 옆으로 붙이는 나쁜 습성을 갖고 있었다. 트롤어선 뒤로는 그물이 있고 또 전개판이 펼쳐져 있는 상황이라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조업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같은 코스에서 조업을 하게 되면 늘 위협적으로 배를 붙이곤 했다. 좀 간덩이가 큰 사람이라고나 할까.

우리 배 K808호 곽선장은 내가 초사할 때 해외어업 오만어장 선단장이었고 그때 곽선장 다음으로 서열이 놓은 사람이 K801호 이선장이었는데, 이선장은 곽선장을 깍듯하게 모셨다. 곽선장을 깍듯하게 잘 모셔야 자기도 나중에 다른 선장들로 그런 대우를 받을 테니까 말이다. 약간의 장난 끼도 좀 있었지만 유달리 우리 곽선장을 잘 받들어 모시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곽선장이 오만 어장도 선배, 나이도 선배 그리고 학교도 선배였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 배들끼리 접선을 하면 총알 같이 넘어 와서 인사를 하고 우리 곽선장을 모셔갔다. 9월경 갈치 시즌이 되면 오만 트롤어선들은 주로 주간에만 조업을 하고 야간에는 조업을 하지 않았다. 해가 지면 갈치가 해저에서 다 떠 버린다고 했는데 그건 그냥 하는 소리였고 접선해서 놀기 위한 핑계였었다. 모든 선단 배들이 접선해서 노는데 자기 혼자 독불장군처럼 조업을 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갈치 시즌에는 낮에만 조업해도 어획성적이 좋아 충분할 때가 많았다. 갈치는 조금씩 잡히는 게 아니라 예망 중 기록을 좀 봤다 하면 한 방 크게 뜨기 때문이다. 갈치 한 방 뜰 때 보면 전개판 올라오고 후릿줄을 감다 보면 선미 저 멀리 갈치가 가득 든 끝자루가 둥둥 뜬 게 보인다. 그때 기분이 참 좋았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갈치 시즌엔 초사들도 할랑하다. 아침 해가 떠야 조업을 시작 하니까 밤에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었다. 새벽 00시에 일어나면 배들은 접선한 상태로 선원들 모두가 흥청망청 놀고 있기 때문이다. 선원은 선원들끼리, 준사관은 준사관, 사관은 사관 그리고 선장은 선장들끼리 모여 놀았다. 선장들은 주로 큰 배 1,000톤급 오로라에 모여 놀았는데 물론 곽선장이 대장이었다. 선장들이 모여서 논다는 게 주로 ‘고스톱’을 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곽선장의 고스톱 성적은 좋지 못한 날이 더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아침에 투망하고 나면 다른 선장들이 나에게 ‘곽선장님 기분이 좀 어떻뜨노?’ 물어 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대체로 우리 선장은 돈을 잃는 모양이었다. 실력이 모자라 잃는 것인지 아니면 후배들에게 잃어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자기 배의 선장이 선단장이면 좋은 게 많다. 일단 방질 할 때 다른 배들이 별로 안 건드린다. 사실 오만 어장은 배들이 오직 해외어업 배들뿐이고 척 수도 당시엔 5척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어장에서 선단장 눈 밖에 나는 짓을 할 수가 없었다. 더러워서라도 ‘예예’ 하면서 선단장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K801호 초사가 거칠 게 방질을 하는 편이라고 했는데 결국 아침 시간에 우리 배와 한 번 어구가 걸렸다. 옆으로 지나가면서 걸렸으니 아마 전개판이 걸렸을 것이다. 이렇게 걸리는 것도 트롤어업에서는 대형 사고에 속한다. 이렇게 어구가 걸리게 되면 일단 위계가 높은 선장(선배든 나이든)배에서 먼저 감는다. 그리고 위계가 낮은 선장의 배에서는 속절없이 풀어 주어야 한다. 우리처럼 선단장이 타고 있는 배가 먼저 감아 우리의 어구를 올리고, 상대방 배도 최소한의 피해만 입게끔 자를 것은 잘라낸다. 그래도 그것은 잘라내는 배의 관점일 것이다. 그러고 난 후 뒤에 어구를 감아올리게 되는 배는 자신의 어구를 다 올려 보아야 자신의 어구가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더불어 자신의 어구를 자른 상대방이 얼마나 자신의 어구를 생각해 주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즉 상대의 성의를 그때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구의 피해라는 측면에서 보면 피장파장이었다. 먼저 올린다고 해서 어구의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상대적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조금 낮아진다는 것일 뿐 조업 중 어구가 걸리는 것은 모두 위험한 대형 사고다. 뒤에 어구를 올린 배는 나중에 불만이 있더라도 보이스 등과 같은 공개적인 통신에서는 욕을 못하고 배에서 혼자 혹은 자기 항해사들이 있는 곳에서 다른 배 혹은 다른 배 선장에게 욕을 할 것이다. 우리의 곽선장도 예전에 선장단 손선장에게 피해를 입었다 싶으면 보이스를 끄고 많은 욕을 했었다. 하지만 보이스 통신상으론 그저 ‘순한 양’이었다. 사회생활이 다 그런 것인가?

어쨌거나 서로의 어구가 얽히게 되면 곽선장은 일단 우리의 잘못은 없고 상대방의 잘못으로 사건을 몰아가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상대방 배 선장에게 보이스 통신으로 막 퍼 부었다.

“니네 항해사 너무 막나가는 것 아녀?”
“아이고 선배님 죄송합니더 단단히 교육시키겠습니더”

“아니 같이 먹고 살자고 나온 것인디 만장 같이 넓은 곳에서 이게 무슨 짓이여”

“선배님 화 푸시고 나중에 접선하시면 제가 용서 구하겠심더”

“같이 죽자 이거여 뭐여, 어디서 배웠는지 몰 것지만 오만어장은 그런 데가 아녀!”

“...”

대답을 했다간 잔소리가 끝이 없을 것 같아 K801호 선장이 먼저 입을 다물었다.

“앞으로 그딴 식으로 방질을 또 혓다간 나도 가만 안 있을 팅게”

“네네 선배님”

초사인 나는 비록 내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날 ‘간신 밑 보지’로 볼 것인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잘못한 게 없다. 내가 곽선장한 테 고자질 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 코스엔 내가 먼저 들어 온 게 아닌가, 그들은 나중에 들어 왔으며 코스를 우리 쪽으로 먼저 붙인 놈도 K801호 초사였던 것이다.

‘K801호 초사 시팔 새끼’

선장은 이번에 내게 묻는다.

“저 새끼 늘 그러냐?”

“그건 아인데 방질이 좀 거칩미더”

3항사 강철이 한마디 더 한다. 가제는 게 편이라고.

“저 새끼 싸가지가 많이 없어유”

“그랴? 그러면 다음엔 그냥 박아부러!! 쌍놈의 새끼!”

그동안 K801호는 어구를 수습했는지 우리와 멀어진다. 다시는 우리 옆으로 안 올 것이다. 더러워서라도. 선장은 지금 곽선장을 욕하고 있겠지.

‘시팔 선배만 아니라면 그냥 콱 지 박아 불낀데’

난 기분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어정쩡한 상태였다. 다만 내가 봐도 곽선장은 그런 게 조금 심한 편이었다. 다른 배와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우리 항해사 편을 들었다. 상대방은 정말 기분이 나쁠 테지만. 내가 2항사 때 K202호와 사건이 한 번 있었다. 2항사 때여서 난 방질이 좀 서툴렀다. 내가 K202호 앞에서 예망을 하면서 K202호의 침로를 가로 질렀나보다. 트롤어선들은 자기 앞에 가는 배가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로 막거나 자기들이 끌고 가야 할 코스를 앞에 배가 먼저 훑고 지나가는 걸 싫어한다. 자기들이 잡아야할 고기를 앞배가 다 잡아가 버리는 꼴이 되니까 말이다. 앞에 가더라고 뒤에 따라오는 배의 코스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예망을 해야 하는 것이 예의였다. 그 정도쯤은 알고 있는 나였지만 불가항력으로 K202호 앞을 지나게 되었고 또 코스를 변경하면서 뒤에 따라오는 배의 정선수에 서게 되었다. 피하고 싶었지만 코스 양쪽에 암초가 있어서 이리도 저리도 우리 배를 틀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암초만 지나면 피해 줄 예정이었다. 그때 K202호 장선장은 보이스로 우릴 부르더니 좀 피해 달라고 했다. 우리도 알고 있고 있는 상황이고, 또 약간은 미안해하고 있었던 사실인데, 우리보고 ‘그렇게 방질 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였다. 그 말에 나도 기분이 살짝 나빴다. 우리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난 일단 우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지금 피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조금만 참으시면 피해 드리겠다고 했는데 장선장을 혼자 열을 받았는지 피치를 올려 우리 선미 쪽으로 배를 붙이고 있었다. 배가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나도 성질이 나서.

“씨바 엔진 깨지도록 피치 올리는 가베”
뒤 따라 오는 배가 앞배와 너무 가까우면 그 배의 전개판이 우리 그물의 뒤꽁무니를 덮칠 수가 있다. 그래서 내가 보이스로

“선장님 저 피치 좀 나차 주시지예”

장선장은 모른 척

“우리 피치 올린 적 없는디”

“배가 점점 가까워지는데예”

“아녀 우린 그대로 가고 있어”

그때 우리의 어탐기에 우리가 타고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초가 나타났다. 초 때문에 우리의 피치를 낮춰야 했지만 뒤에 K202호가 바짝 붙어오니 그것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지금 배를 외곽으로 튼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우린 할 수 없이 양망을 해야 했다. 양망 하지 않으면 우리 어구가 그 초에 걸릴 판이었다. 양망을 시작하니까 우리와 K202호는 급속히 가까워지게 되었다. 장선장이 놀라서 우릴 불렀다.

“니들 뭐하냐”

“아 우리 양망합니더 참고하이소”

“야, 항해사 그기서 갑자가 양망하면 어쩌냐”

결국 장선장도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틀어서 바로 양망을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K808호 항해사 방질 그렇게 하면 안디여”

그때 양망 트롤윈치 소리에 브리지로 올라오던 곽선장이 장선장의 그 말을 들어 버렸다. 대번에 보이스를 잡더니

“야이 싸가지 없는 놈아 어디따 대고 지랄이여 지랄이”

“...”

장선장은 흥분해서 브리지에 우리 선장이 있는 상황을 생각지 못했나 보다.

“아이고 선장님 죄송해유”

장선장은 우리 선장 밑에서 옛날에 3항사 하였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우리 선장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였던 것이다.
“야이 이 놈아, 그라고 어따대고 반말이여 반말이 우리 항해사지 니 항해사여 엉 이놈 시키가!!”

“...”

“그라고 배가 가까우면 니들이 피하면 될 일이지 왜 남의 배는 불러 샀고 지랄이어 지랄이”

듣는 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나는 일부러 장선장 배 코스를 막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양망을 갑자기 하게 된 것도 장선장 배를 골탕 먹이려고 한 것도 아니라 초가 나와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인데 말이다.

“우리 2항사가 초가 나와서 양망한 것 같은데 넌 이놈 시키야 그렇게 배웠냐?”

장선장은 게다가 우리 선장이 자기 친형의 친구였다. 그러니 우리 선장에게 끽소리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곽선장이 너무 그렇게 몰아 부치니까 그걸 다른 배들이 보이스 통신을 통해 들었을 것이고 어장 전체가 조용해져 버렸다. 아무튼 곽선장은 그런 측면에서 좀 유별난 것 같았다. 평소 배에서와는 달리 초사인 나를 엄청 보호해 주는 것이 그것이다. 자기편에 속한다고 판단된 사람은 자기가 나서서 확실하게 지켜 주는 어떤 본능 같은 게 작동하는 것 같았다. 그게 자기편에겐 나쁠 게 없겠지만 그 상황이 영원할 순 없으니까 어디 정도 부담으로 작동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가끔 접선을 하면 다른 배 선장들이 우리 배 항해사들을 좀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도 억울한 게 있다. 우리가 곽선장한 테 고자질 한 것도 아니고 곽선장의 성질이 원래 그런 것을 어쩌란 말인지.

최악의 경우 이런 일도 있었다. 같은 코스를 우리 배와 장선장의 배가 상행점, 하행점에서 서로 내려오고 올라가고 있었다. 내가 초사 때였다. 장선장 배 초사는 초사로서는 베테랑이 분명했지만 그는 곽선장 밑에서 예전에 실항사부터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 초사는 곽선장한 테 걸리면 장선장보다 더 박살 날 사람이었다.

“K808호 서로 5도씩 틀면 되겠네 그렇게 가유”

역시 그때 우리 선장이 브리지로 올라오다가 이 소리를 들었다.
“K202호 야 이놈들아 니들이 좀 더 틀면 되지 뭐가 그리 복잡허냐?”
“네네..아 알겠어여”

그렇게 K202호는 자기 혼자서 10도 아니 15도를 틀어 아예 코스를 벗어나 버렸다. 심지어 한 척 밖에 조업을 할 수 없는 코스에서는 우리가 여기서 코스 한 번 제대로 타보려고 하니까 다른 배보고 우리 배 안 걸리게 니들이 좀 알아서 비켜 가라고 먼저 공표를 하고 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척이 겨우 조업할 수 있는 코스인데 자기들 보고 우리 배를 피해가라고 하면 다른데 가라는 말과 똑 같은 것 아닌가. 그렇게 선단장인 곽선장은 오만 어장에서 무법자요 독재자였다. 우린 그 무법자요 독재자의 그늘에서 자라는 양귀비 같은 식물들이었다. 그래 동물이 아니라 우린 식물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조업할 땐 그리 욕심을 많아도 말만 그렇지 그렇게 모진 사람은 아니었다. 오만 어장에서 조업하는 선장들은 오히려 선단장은 스스로 그렇게 받들어 모시는 게 오만 어장의 발전을 위해 좋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군웅활거 시대처럼 이놈도 큰소리치고 저놈도 큰소리치면 어장은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거라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렇게 저렇게 살다보면 한 세상이 가고 언젠가는 자기의 세상이 올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인가.

나는 2항사 때도 혹은 초사 때도 그런 이점이 있었던 같다. 그래서 난 다른 선장들에게 약간의 미움을 받는 적도 있었지만 좋은 점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곽선장한 테 고자질을 하거나 어려움을 타개해 달라고 부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곽선장에게 한 번 당한 선장들은 자기 항해사들에게도 절대 K808호와는 문제를 일으킬만한 방질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심지어 접선하면 다른 배 3항사가 내가 선물(중동산 대추야자)을 갖다 주기도 했는데, 자기 선장이 갖다 주라 시켰다고 했다. 바로 K801호 선장인데 반드시 곽선장을 의식해서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에게 읽을 책(중국의 붉은 별)도 주고 만나면 농담도 하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 주신 분이었다.

우리 2항사들은 경험이 별로 없는 초사인 나를 더 잘 보좌해 주었다. 그들은 내가 앞전 초사보다 세심하게 배를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배에서 일어나는 여러 잡다한 일들을 2항사들이 다 알아서 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을 하면 보고는 하지만 스스로 일을 알아서 하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나와는 반대였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약간은 고개를 수그려야 할 이유는 있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그 1년 이상 키만 잡는 3항사 업무에서 2항사 업무를 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2항사인 그들은 레이다로 위치를 내고 어장도에 그어진 코스를 따라 배를 몰고 가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트롤윈치를 잡아야 하는 것 등을 내게서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난 처음 초사가 되어서는 13시 당직이 끝나도 최소한 2시간 정도는 브리지를 내려 갈 수가 없었다. 위치를 내고 코스 타는 것을 2항사 고창준과 같이 해 보라는 선장의 특별지시가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당직을 교대하기 직전 양망 성적이 좋으면 반드시 초사는 브리지에 남아 2항사와 같이 한 두 방 더 봐주고 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트롤윈치 잡는 것도 2항사에게 초사인 내가 책임지고 가르쳐 주라고 명령했다. 사실 강철 2항사는 새벽시간에 나와 함께 당직을 서는 관계로 내가 어장도 위치 내는 것과 트롤윈치 잡는 것을 조금씩 알려 주고 있었다. 지금 2항사 강철은 2항사면서도 키 잡는 일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변규섭 초사가 새로운 배에 선장이 되어 어장으로 오면 우리 배 2항사 고창준은 그 배의 초사로 가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땐 2항사 강철이 바로 낮 당직으로 투입되어 위치도 내고 트롤윈치도 잡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초사로서 아주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항해사 뿐 아니라 선원들에게도 내가 자발적으로 무엇을 하라고 시킨 적은 거의 없었다. 선장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그것을 지시하는 것 말고는 모두 그들이 하는 대로 맡겨 두었다. 투망이나 양망할 때도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모두 그들이 하는 대로 그들의 노동속도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심지어 심야에 급양망 할 때도 난 가급적이면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와이어나 그물이 어디에서 올라 오느냐와 그물의 어디가 나갔냐(파손되었냐)를 묻는 것 빼고는 묻지 않았다. 그물의 수리와 교환 같은 것도 모두 갑판장 혹은 갑판원 심재술(헷또 역할을 하였다)의 판단에 맡겼다. 그리고 특별한 사고가 아닌 이상 선장에게 보고도 하질 않았다. 보고를 하면 더 시끄러워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 사고 없이 내 당직 시간을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단 어장이동이나 코스 이동은 반드시 선장에게 물어 시키는 대로 하였다. 난 그렇게 소극적인 초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난 복잡한 삶이 싫었다. 어쩌면 2항사 때부터 초사 때까지 누적된 삶의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