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33) 에피소드
㉠ 에어컨 고장 – 잘 돌아가던 에어컨이 고장 났다. 송풍은 되는데 찬바람이 나오질 않았다. 위도 20도 아열대 오만어장에서 에어컨이 고장 나면 거의 죽음이다. 더구나 좁은 공간 내 방은 1평이 채 안 된다. 그곳에서 에어컨이 고장 났으니 선원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기관장을 포함한 기관부원들이 며칠 동안 매달려 보았으나 고칠 수 없었다. 결국 ‘에어컨 부속’ 전부를 발주하기로 했다. 그것들이 일본을 출발하여 오만 그리고 우리 배까지 오려면 최소 한 달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선원들은 3일도 되지 않아 침실에서는 더 이상 잘 수가 없다며 선수 데끼로 나갔다. 그들은 달빛과 해풍을 맞으면 그물 뭉치들 틈에서 잠을 잤다. 물론 방마다 나오는 실온 바람을 견디는 선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현창(舷窓)이 있는 침실에 거주하는 선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일주일이 지나자 피부에는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른바 ‘땀띠’라고 하는 피부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선장은 기관장에게 살인적인 더위를 물리칠 모종의 조치를 취하라고 했을 것이다. 고심 끝에 기관장은 급냉실 중 하나를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먼저 급냉실 중 하나를 폐쇄한 채 계속 냉기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안에 팬(fan, 공업용 선풍기)을 넣어 바람을 일으키고 그것을 흡입할 수 있는 고무호스를 연결한다. 나를 포함한 다른 선원들은 이런 비밀 프로젝트를 전혀 몰랐었다.
어느 날 선장 침실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별 생각 없이 보아도 환풍기 사이로 보임, 나의 방과 선장 방은 붙어 있기에 지나갈 때마다 선장 유무를 확인함) 침대 위에서 검정색 고무호스 하나가 비쭉이 침대 쪽으로 내려와 있는 것 아닌가. 다들 더위에 고생하고 있는데 혼자 시원하겠다는 수작(?)이었다. 그 사실이 배에 퍼졌고 누군가가 냉기를 선장실에만 공급할 것이 아니라 에어컨 룸으로 보내 비록 에어컨이 냉기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송풍기 노릇은 하니까 송풍기를 돌리면 침실들이 시원해 질 수 있지 않느냐 여론이 생겼다. 그렇게 해보니 그렇게 시원하진 않아도 최소한 잠은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급냉실의 암모니아 가스가 만들어내는 찬 냉기는 습기가 많아 자고 일어나면 바람을 맞은 부분 특히, 얼굴이 축축해져 기분이 여간 나쁜 게 아니었다. 정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소문이 있었던 암모니아 가스가 바로 다이렉트로 사람 몸을 때린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불안했던지, 그렇게 한 달 이상을 에어컨 고장으로 고생하다가 에어컨 스페어 파트 전부를 넘겨받아 에어컨을 고쳤다. 나중에 기관장은 에어컨을 자기가 고쳤다고 우쭐했지만 그것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선장도.
㉡ 바퀴벌레 – 어릴 때부터 바퀴벌레를 무서워했다. 초등학교 여름 밤 동네 할아버지(근엄하신 바둑 고수)와 바둑을 두었는데 나의 패배가 거의 확정된 판이었다. 당신은 연세와 실력에 어울리지 않게 승부욕이 매우 강하신 분이었다. 심지어 우리 같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도. 그래서 솔직히 아이들은 당신과 바둑을 두려고 하지 않았다. 승부도 승부지만 당신과 대국을 할 때는 행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품을 하거나 다리를 떨거나 바둑 돌 소리를 내면 혼이 났으니까. 그날 당신은 동네 꼬마를 상대로 거의 승리를 챙길 수 있었던 그 판을 흐뭇한 마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집게손가락 두 마디만한 바퀴벌레가 어디선가 날아와 내 허벅지에 앉았다. 내가 너무 놀라 소리치며 다리를 터는 바람에 바둑판이 흔들려 흑백 돌은 한 쪽으로 쏟아져 버렸다. 놀란 당신의 호통이 날아왔다.
“야이 놈아 남자 노무 짜식이 그기 뭐가 무서다꼬!”
장죽으로 한 대 안 맞은 게 다행이었다.
일본 하꼬다데에선 한 마리도 없던 바퀴벌레가 언제부턴가 너무 많이 생겼다. 아마 더운 무스카트에 입항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곳엔 인도네시아에서 오는 원목선이 엄청나게 입항하기 때문이다. 바퀴의 종류도 다양했다. 큰 놈은 엄지손가락만 한 게 목에 흰 테가 있었다. 이놈이 제일 무서웠다. 그리고 중간 사이즈와 아주 작은 사이즈. 큰 놈에 비하면 아주 작은 사이즈는 귀엽기조차 했다. 큰 놈은 얼마나 강력한지 감기약 캡슐을 갉아먹기도 하고 비닐봉지를 뜯고 사탕을 갉아먹기도 했다. 그리곤 사람도 물었다. 배와 엄지발가락을 주로 물었는데 자다가 물려 잠이 깨기도 했다. 할 수 없이 매 항차마다 거주 구역에 ‘연막’을 터뜨려 잡아내었다. 그때마다 수백 마리(어획물 담는 냉동 팬의 1/3)씩 잡아내지만 그들의 극성은 줄지 않았다.
㉢ 개밥 – 처음에 기지장이 ‘개밥’이라고 해서 우린 ‘캐밥(kebab)’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진짜 ‘멍멍’ 하는 개의 밥이었다. 그 개밥을 30개 정도 만들어 오라기에 오만 사람들이 키우는 개의 먹이쯤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기지장이 말하는 개밥은 K808호가 입항 했을 때 오만 수산청 사람들에게 줄 선물용을 말하는 것이었다.
오만판이나 제품 하지 않는 고기(제품은 두 팬을 담아 상품으로 만들지만 이것은 한 팬씩 담는다)를 카톤 박스에 담아 어창 구석에 보관하였는데 처음엔 한글로 ‘개밥’이라 적거나 영어로 ‘gaebab’이라 적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dog food’라고 안적은 게 천만 다행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개밥’은 오만 수산청 꽤 높은 직원에게 뇌물로 사용되었다. 그들이 직접 받으러 오는 것은 아니었고 주로 아랫사람들이 기지장이 사인한 쪽지를 갖고 본선에서 한 두 박스 받아 갔다. 입항하면 기지장은
“나중에 깜상들이 와서 사인해 준 쪽지 보여주면 개밥 좀 줘”
실제로 받으러 오는 오만인들은 기지장이 준 쪽지를 보여 주면서 우리보고도 ‘개밥’을 소리치며 달라고 했다. 그들도 ‘개밥’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사람에게 주고 또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개밥’이고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기지장의 생각은 어이가 없는 짓이다.
기지 업무의 원활을 위한 뇌물 그게 ‘개밥’이었다. 처음에는 30개 많을 때는 100개도 넘게 만들었다. 점점 ‘개밥’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던 것이다. 수산청의 꽤 높은 직원들부터 그들의 비서, 컨테이너 운반기사, 도선사, 터그보트 선원, 항만청 경비, 경찰, 해외어업 기지 현지 사무원의 친구, 감독관과 그의 친구들, 트레이너 등등 ‘개밥’은 그렇게 널리 퍼졌다. 더불어 ‘개밥’이라는 우리말도 널리 퍼졌다.
처음엔 그들이 키우는 애완견들이 먹는 것 인줄 알았는데, 무스카트에서 ‘개밥’의 의미를 알고 ‘기지장’이라는 사람이 갖고 있었던 이곳 사람들에 대한 관점이 어떤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후안무치한 놈이었던 것이다.
㉣ 대형마트 – 수도 무스카트 대형마트에 가면 수산물코너가 있다. 우리가 어획했던 어종도 팔았다. 우리가 잡는 물고기를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마트에선 고기의 이름이 따로 없었다. 가령 ‘도미’는 ‘D1’이라 적혀 있었고, ‘청돔’은 ‘D3’, ‘갑오징어’는 ‘S’ 이런 식이었다. 어종 코드는 일본 수산회사들이 상품 유통에 편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상품코드일 뿐인데 그걸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랍고 실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