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34) K502호의 침몰
마드라카 어장 남쪽엔 ‘아라 밭’이라 불리는 코스가 있었다. ‘아라’는 일종의 ‘대구’였는데 머리가 커 볼 살을 발굴해 구워 먹으면 맛이 있었다. 이곳은 완전한 초 밭은 아니지만 코스가 그리 다양하지 못하고 거의 남북 방향으로 되어 있는 좁은 코스였다. K808호는 가끔 그곳으로 가서 ‘아라’ 어획으로 재미를 좀 보았다. 전에 한 번은 ‘민어’를 한 방 뜬 적도 있었으니까. 우리는 대어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그곳에 자주 다녔다.
그날 기상은 좋았지만 안개가 너무 많았었다. 자신의 선수가 겨우 보일 정도였으니까. 우린 새벽 4시부터 이곳으로 와서 벌서 몇 방 째 조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K502호가 이쪽으로 온다고 했다. 오만판인 ‘병어’를 좀 잡아야 한다고 했다. K502호는 K501호처럼 예전에 K801호 초사하던 사람이 선장이었다. 보통 선장이 되면 자신과 일했던 항해사들과 배를 옮겨 함께 타는 경우가 많다. 일단 인간적으로 통하는 게 있을 것이고 한 번 일을 해 보았기에 손발도 잘 맞는 것 때문일 것이다. 해가 어렴풋하게 뜰 시간이지만 안개 때문에 사방이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날도 우리의 아라 조업 성적은 꽤 좋았다. K502호가 내려와 잘 부탁한다면서 투망을 했다. 이곳은 코스가 좁아 두 척 정도만 조업하면 공간이 빡빡한 곳이다. K502호 초사는 오만 어장 경험은 별로 없는데 선원 통솔을 잘 한다는 이른바 ‘대가 쎈 항해사’였다. 그러다 보니 K502호 김선장이 좋아했었다. K502호 초사는 우리의 강철 2항사 후배인데 줄을 잘 타서 일찍 초사가 된 케이스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선원 통솔은 잘 하는데 방질은 그리 매끄럽지 못했고 우리 강철 2항사에게 들은 얘기로는 학교 다닐 때도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와 배를 타면서 성격이 변하는 경우도 있고, 또 학교 다닐 때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또 배에서 좋은 점으로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남들이 보기엔 조금은 미숙한 점들이 있었나보다. 그런데 아라 밭으로 내려 온 K502호가 말하길, K801호도 이쪽으로 내려온다고 해서 나는 신경이 좀 쓰였다. 그 배와 우리와는 예전에 어구가 한 번 걸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K801호가 이쪽으로 온다고 하니까 K502호에서 먼저 내려오려고 서두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조금 늦게 내려온 K801호는 남북 코스로 투망하지 않고 동서로 해 보겠다고 했다. 우리는 동서코스를 한 번도 해 본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어장도에도 그런 코스가 없다. 하지만 저질이 좋은 곳을 골라 그렇게 예망을 해도 될 것 같았다. 남북으로는 비집고 들어 올 공간이 없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하지만 두 척이 남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 언젠가는 한 번쯤 걸릴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아라만이 아니라 ‘병어’도 잡혔는데 ‘병어’는 오만판 중에서 오만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어종으로 오만판 필수어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드시 일정 톤수 이상은 오만판을 잡아가야 할 때가 있었는데 특히 K502호가 그랬다. 그런 이유로 K502호가 이 안개 밭으로 내려왔을 거라 짐작이 되었다.
아마 이곳으로 와서 두 배는 한 방도 못 했을 것이다. K801호하고 K502호가 예망하는데 서로의 코스가 문제가 된 것 같았다. 보이스에선 초사들의 조금은 심각한 대화가 오고 갔다. 먼저 K801호 초사가
“귀선이 피치 좀 낮추어 주면 우리가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을 갔은디”
“우리 지금 피치 최대한 낮추었어라”
“그래요? 우리가 그럼 피치 최대로 올려 볼 께라”
“아따 이 좁은디 뭣할라꺼 내려 와갔꼬 이래샀소잉”
“쩌기는 고기가 없어라”
“레이더 좀 보고 올 게라”
그래도 그때까진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코스 전체가 짙은 안개 밭이라 그들은 내 눈에 보이질 않았다. 오직 레이더에만 그 둘이 매우 가까이 보였다.
“저것들 너무 가까운 것 아이가?”
2항사도 레이더를 보더니 놀란 모습으로
“와 저거 마이 가까운 것 같은데요”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다가 두 초사의 고함소리가 보이스에서 오간다. 아마도 레이더가 아니라 서로의 배를 눈으로 확인한 모양이다. 이처럼 짙은 안개 밭에서 서로의 배가 보일 정도라면 거의 근접했다는 말이다.
“트시오!!”
“우린 지금 후진 쓰고 있어라”
K801호 초사의 ‘후진’소리에 난 내 귀를 의심하였다. 예망 중인데 후진이라니! 그리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더니 몇 분 후 두 배의 선장이 보이스에 나왔다. K801호 선장의 목소리였다.
“K502호 우린 지금 양망하고 있어, 느그들 트러바바. 이러다 사고 나 것네”
“아예, 선장님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배가 스타보드로 기우는 것 같네요”
“우리하고 부딪혔나?”
“....”
“시발 놈드리 뭣 한다고 이 안개 밭에서 붙어 지랄들이야”
“선장님 우리 옆구리가 찢어진 것 같습니다.”
“뭐? 니들 그물이?”
“아니요, 외판이요”
“뭐라고??”
“우리 지금 하드 스타보드로 돌리고 있습니다. 배가 자꾸 오른쪽으로 기우는 것 같네요”
우리 선장도 브리지로 올라왔다. 나의 설명을 듣더니
“저 놈들 큰일을 처 부렀네 큰 일!”
그러고 한 10분도 안 돼서 급박한 K502호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침몰할 것 같습니다. 모두 퇴선 합니다, 퇴선입니다. 우리 곁에 좀 와 주세요”
우리는 벌써 양망을 시작하고 있었다. K801호도 양망을 시작해서 끝난 모양이다. K801호 선장 눈에 K502호가 보이는 모양이다. 신기하게도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우리도 양망이 끝나자마자 그곳으로 달렸다. 다행히 해면 상태는 호수와 같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K801호에 의해 K502호 선원들은 모두 구출되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인원 점검을 해 보니 한 사람이 없단다. 그는 처리장이었는데 모두 라이프 자켓(구명동의)을 입고, 그래도 비상상황치고는 제법 여유를 갖고 퇴선 했다는데 그의 라이프 자켓에 이상이 있었던 모양이다. 줄을 잡아당기면 가스가 주입되어 빵빵하게 되는 라이프 자켓이었는데 하필이면 그의 라이프 자켓이 작동하지 않았고 그는 수영을 조금도 할 줄 몰랐던 모양이다. 그냥 바다에 떠 있기만 했었어도 구출이 가능할 정도로 K801호가 가까이 있었고 해면 상태도 좋았었는데 그땐 아직 안개가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상태여서 그를 챙기지 못했던 것 같았다.
배의 침몰 원인은 K801호 선수 부분과 K502호 오른쪽 외판의 충돌이었다. 그냥 부딪친 게 아니라 K801호 선수의 뾰족한 부위가 K502호 외판을 긁어 버린 상황이 되었다. 후진하면서 긁었는지 아니면 배를 돌리면서 혹은 빨리 빠져 나가려고 속도를 높이다가 자신의 외판과 상대방의 선수 부분이 부딪히면서 긁히게 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K801호는 선원들을 모두 구출하고 일단 K502호 근처에서 멀어졌다. 외판이 찢어지면 그곳이 바로 처리실이고, 옆구리가 찢어졌으니 침수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랐던 모양이다. K502호는 얼마 후 배가 수직으로 서 버렸다. 선미에 기관실이 있는데 그곳이 더 무거우니 선수는 위로 그리고 선미는 수면 아래로 들어가서 배가 꼿꼿하게 선 형태가 되었다. 그때쯤엔 안개가 거의 다 걷혀 꼿꼿하게 선 K502호가 확실하게 보였다. 쌍안경으로 그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K502호 처리장은 보이질 않았다. K502호 모든 선원들은 K801호에서 구출한 상태였다. 우리는 그저 주위에서 K502호의 최후를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옆으로 넘어지면서 사라지는데 거의 두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넘어지기 전 K801호 선장이 우리 선장에게
“저거 자빠질까요? 우리가 줄 걸어 당겨버릴까요?”
“...”
곽선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선단장으로 사과에 할 말이 많지만 사람이 죽고 배가 침몰한 상황에서 함부로 입을 열 시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저번 K501호처럼 물에 빠진 사람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저번은 코스를 밭 갈 듯 그물을 넣어 찾는 시도를 해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K502호가 침몰하면 일단 그 근처로는 그물을 넣을 수 없다. 그물이 안전할 수 있는 해역에서만 그물 수색이 가능할 것인데 지금 물에 빠진 사람은 침몰한 K502호 근처에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므로 그런 방식으로 수색할 경우 K502호 근처에 있는 사람을 찾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색작업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우리보다 위에서 조업하던 배들도 이곳으로 다 내려왔다. 혹시 사람이 떠 있을지도 모르니 K502호 주변의 바다를 살펴보기로 했다. K502호는 옆으로 넘어지고 난 뒤에는 빠르게 침몰해 버렸다. 이젠 그 일대를 좀 자유롭게 수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찾을 순 없었다.
그 후 약 5일간 K502호(이젠 침선) 주위에서 그물을 끌고 다니며 수색을 하였으나 물에 빠진 사람을 찾을 순 없었다.
그 후 K801호 초사는 자신의 배에서 더 이상 당직 서기를 거부하고(K801호 선장 말에 의하면) 빨리 귀국 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K502호 선원들은 모두 귀국하고 선장과 초사만 무스카트 호텔에 남아 6개월 정도를 지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보험’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의 욕망은 한바탕 바람 같았다. 바람 소리는 때론 햇빛 속에 때론 안개 속에 있는 것이다. 돈이 무엇이기에 돈으로 변형된 그 모든 것들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인지. 삶은 한 장의 이미지 같은 것인데 지금은 꿈속에서나 보일 것 같은 오래된 사건들. 그 사건들은 이리 저리 과장 되거나 축소되기도 하고 이리저리 잘려 이곳에 붙었다가 저곳에 붙었다 한다. 그래서 때론 위대하게 때론 추악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 그것은 괴물 같다. 우리의 현상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난 그게 광활한 바다에서 일어난 일 같지가 않았다. 넓은 바다 그래 모든 것을 다 품어 줄 것만 같은 바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을까. 하지만 우리의 삶이 한 장의 사진 이미지 같은 것이라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아주 얇은 아니 너무나 얇아서 한 손아귀로도 금방 구겨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어쩌면 연약한 이미지들 말이다. 우린 그곳에서 마치 거미줄에 감긴 듯 목이 졸려 있었다. 이미지들의 약한 힘들이 우리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하여 예망코스에서 악다구니를 쓰고 피치를 올리거나 내리고 그리고 옆구리가 찢어지고 선원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고 그건 모두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의 모래성에서 흘러나오는 비파소리처럼 여겨졌다. 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어김없이 모래성을 향해 파도가 오고 있다. 모래성은 이미 수분을 머금기 시작했다. 이제 곧 허물어질 것이다. 한 때는 단단했던 욕망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