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1) 싱가포르 입항
K808호는 남지나해(南支那海, 중국의 남쪽바다)를 관통하여 필리핀 북부를 지나 싱가포르(新加波, Singapore)항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타이완을 오른쪽으로 끼고 필리핀 루손 섬의 서쪽 해역을 지나는 것인데, 거대한 섬을 오른쪽으로 끼고 어쩌고 하는 것은 모두 해도(海圖)를 보면서 하는 몽상가 같은 생각이었다. 해도를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큰 바다라도 이쪽저쪽 쉽게 건너 뛸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난 해도실에서 한 뼘 밖에 안 되는 태평양을 쳐다보고 있었다.
타이완 정도만 오더라도 공기의 온도가 심상치 않았다. 숨을 쉴 때마다 콧속으로 더운 김이 훅하고 들어오는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
싱가포르는 부산보다 조금 큰 섬으로 이른바 도시국가이며 열대 숲으로 뒤덮여 있다. 선박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면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곳이다. 중계 무역 뿐만 아니라 가공무역 같은 제조업도 세계적 수준이라 알고 있다. 위치의 특성상 여러 민족들이 섞여 살고 있는데 경제권이나 정치권력은 화교들이 장악하고 다수의 기층 민중들은 말레이족이다. 인도인들도 제법 섞여 있어 방송을 인도어로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국가라기보다 경제공동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1980년 당시 싱가포르의 대학엔 경제와 관련된 학과 밖에 없었다고 들었다. 거칠게 말한다면 ‘장사꾼들의 모임’ 같다는 느낌이랄까.
싱가포르 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협수로(峽水路) 중 하나다. 수많은 선박들, 여러 개의 작은 섬들, 통항분리 방식으로 된 좁은 수로, 잦은 코스(침로) 변경, 잦은 스콜(열대성 폭우)과 빈번한 해적 출몰로도 유명한 곳이다. 수많은 야간 항해물표들이 빛을 발하며 번쩍이고 있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정확하고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위험한 곳이다. 하지만 이런 좁은 수로에선 오히려 사고가 적은 편이다. 왜냐하면 이런 곳에선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당직을 서기 때문이다. 오히려 허허벌판 같은 대양에서 긴장이 풀어져 사고 날 가능성은 더 높다.
당시 그곳을 처음 통과해 보는 우리로서는 해적 출몰에 대한 정보를 잘 몰랐지만, 1990년 경 상선을 타고 그곳을 자주 드나들었던 경험을 말해보면 상선들의 경우 말라카, 싱가포르 해협을 통과하는 대략 8시간동안 항해당직과 함께 ‘해적 당직’이라고 해서 거의 모든 선원들이 총동원된다. 배의 서치라이트를 언제든지 켤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현(舷) 밖으로 강력한 동키호스(해수가 나오는 호스)를 개방해 놓고 불시에 접근하는 작은 배들을 감시하였다. 브리지에서 레이더로 빨리 움직이는 배(주로 작은 스피드 보트)가 포착되면 ‘우리가 지금 너희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다’는 의미로 그들에게 서치라이트를 비춤으로서 경고하였다.
당시 그곳을 통과하는 한국 상선들이 해적의 주요 목표물이 된 이유는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일단 한국 상선들의 스피드가 다른 나라 상선들보다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한국 상선들의 노후화가 심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 상선들의 현금 보유량(선용금)이 다른 나라 상선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었고, 선원들도 대체로 쇼핑을 많이 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본사에서는 그곳을 통과하기 전에 ‘선용금’을 최대한 적게 갖고 있도록 하고 혹시라도 해적들이 본선에 올라오게 되면 절대 대항하지 말고 순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아무튼 초보항해사인 나에겐 싱가포르 해협은 매우 힘든 구역이었다. 능력의 부족함을 느꼈고 선장으로부터 많은 꾸지람을 들었다. 선장은 날 강인한 항해사로 키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싱가포르 해협에 들어서기 직전 하필이면 해가 지고 있었다. 복잡하기로 유명한 싱가포르 협수로 속으로 캄캄한 시간에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나는 거의 먹통이 된 상태로 항해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 채 브리지에서 쩔쩔 매고 있었다. 쌍안경으로 선수의 불빛들을 봐도 선박의 불빛과 육지의 불빛조차 구별하기 힘들었으니까. 레이더 스크린에 무수히 찍히는 점들은 더욱 혼돈스러워 당황스럽기만 하였다. 난 본선의 위치조차 제대로 구할 수가 없었는데 갑갑함과 더불어 더위가 가중되어 온 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버렸다. 계속해서 선장의 질타가 날아오고 한마디로 난 ‘열라 붕신’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이 가열찬 항해서 난 무언가 혹은 나는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꽉 차버렸다.
곽선장도 몹시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래 동안 육상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좁은 수로를 특히 야간에 들어서는 게 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초사와 3항사는 선장의 보조자로서 제대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3항사는 마구로 어선에서 1항사까지 지냈었고 그 배들은 이런 저런 일로 싱가포르 항에 들어올 기회가 많았기에 그는 싱가포르 항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몇 백 톤짜리 배를 유체(流體) 위에서 조선하는 건 자동차 운전과는 많이 다르다. 자동차는 몇 년씩 핸들을 잡지 않다가 다시 잡더라도 금방 몸의 기억을 되살린다. 마치 수영을 할 줄 아는 ‘몸의 기억’처럼. 하지만 자동차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 더 큰 배가 놓여 진 여러 상황(가령 다양한 항구와 해역)은 자동차 운전 환경과는 질적으로 다르기에 ‘몸의 기억’이 쉽게 되살아나질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K808호는 파일럿 스태이션(도선사를 기다리는 해역, pilot station)에 도착하여 닻을 놓고 우리가 도선사를 기다리고 있다는 녹색등을 선수 마스트에 켜야만 했다. 하지만 K808호 마스트에는 녹색등이 없어 녹색 이태리타월로 백색등을 감아 멀리에서 보면 녹색등으로 보이게 했다. 3항사의 아이디어였다. 역시 재치가 뛰어난 우리의 3항사! 선장의 눈에 얼마나 든든해 보였을까? 반면 2항사이면서 후배인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초보자로서 당황하는 모습만을 보여주었기에 선장은 적지 않게 실망한 모습이었다. 내게 싱가포르 해협은 유리벽으로 이루어진 방 같았다. 나는 그 안에 갇혀 발가벗긴 채 웅크리고만 있었다.
몇 년 후 상선을 타고 싱가포르의 좁은 수로를 수 십 번씩 통과하는 경험을 갖게 되었는데 상선들 역시 싱가포르 해협을 어려운 곳으로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당시 5년 정도 어선에서 항해사 경험을 쌓은 뒤 상선을 타게 되었는데, 처음 승선하여 출항하게 된 항구가 바로 싱가포르였다. 아, 운명의 싱가포르 해협. 하필 출항시간도 캄캄한 밤 00시였다! 예전에 초보항해사로서 허둥대었던 기억이 떠올라 긴장이 되었다. 지금은 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싱가포르 해협은 항해하기 힘든 곳이 아니라는 것이 금방 느껴졌다. 항해당직을 서 보니 싱가포르 해협의 모든 것들 즉 선박 위치, 다른 선박들, 각종 물표, 변침 지점 등등 1984년 초보 어선 2항사 시절과는 확연하게 달라 보였다.
싱가포르 해협의 상황은 첫 당직이었음에도 한 눈에 들어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역시 경험과 관련된 침착함 때문이 아닐까싶다. 모든 배와 육지가 확연히 분별되고 물표도 레이다 상으로 잘 나타나, 본선 위치를 20초안에 해도에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고나 할까. 이것은 자만심으로 지껄이는 말이 아니다.
사실 어선의 주 업무는 항해가 아니다. 물론 어선도 배니까 항구에서 어장으로의 항로가 있고 또 어장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어장 이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선은 어장에서의 조업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어선들은 대부분 야간 조업할 때도 브리지 실내등을 환하게 켜 놓고 조업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상황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사실 연승이나 저연승 어선 같은 경우엔 헤딩과 스피드를 수시로 조정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것이다.
또 어장에 따라 한가할 수도 복잡할 수도 있지만 모두 조업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가령 태평양에서 연승어선의 조업지에는 대부분 배가 한 척도 없다. 연승 어구의 특성상 원거리로 뚝뚝 떨어져서 조업을 한다. 심지어 연승어선들은 주변에 100마일 이내에 배가 있으면 가까이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연승어선의 조업 기법 상 원하기만 하면 그 정도의 거리는 하루 만에 쉽게 만날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그렇다. 트롤 어선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트롤어업은 대체로 일정한 수심 대(帶)에서 함께 조업하므로 주변에 다른 트롤어선들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때도 항해와 관련된 어려움은 없다. 항해보다는 조업하면서 어구의 충돌을 피하는 게 그들의 주요 관심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상선은 입항, 출항 그리고 항구 간의 항해가 주 업무다. 그러므로 항로를 선택할 때도 안전함만 보장된다면 반드시 최단거리를 선택해야 한다. 예전엔 회사마다 선박운용 항목에 대한 기준항목(budget)이 있어 같은 항로를 운항할 때 특별한 이유가 없이 늦거나 연료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 사유서를 내어야 했었다. 그와 관련된 일지가 바로 ‘요약일지(abstract logbook, 아브로그)다. 그래서 항차가 끝날 때마다 항해와 기관업무에 관한 ’아브로그‘를 회사에 의무적으로 제출해야만 한다.
참고로 상선에서 3명의 선장을 알게 되었는데 적어도 2명은 돌발적 상황 속에서도 당황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K 선장의 경우, 사우디예멘의 아덴 항에 입항할 때 해안선의 높이와 골곡이 밋밋하여 레이더 물표가 거의 없어 캄캄한 어둠과 안개 속에 부이(부표-buoy)조차 찾지 못해 헤맬 때도 당황하지 않고 특히 항해사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항해사의 적절한 협조를 받으면서 선박을 안전하게 조선하여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던 경험이 있다. 선박의 조선이라는 관점에서 말하면 아름답고 조화로운 조선(操船)이었다.
Y 선장 역시 싱가포르 해협에서 갑자기 게릴라성 스콜을 (거대하고 짙은 구름 속에서 갑자기 퍼붓는 소낙비) 만나 역시 시계가 제로인 상태에서도 침작하고 조심성 있게 배의 안전을 지켜 내는 것을 보았다.
북태평양 트롤어선의 K 선장 역시 거제도 내항으로 피항 갔을 때 험한 날씨와 수많은 배들 사이에서 침착성을 발휘하여 안전하게 배를 조선하였다.
경험을 종합해 보면 선장은 흥분하거나 당황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그러면 항해사들도 함께 흔들릴 수 있기에 결코 안전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나의 싱가포르 해협 첫 경험은 분명 경험 없는 초보항해사로서 실수가 많았고 배움이 많이 필요한 지점이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