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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싱가포르, 메르디안 컵의 기억
1982년 대학 3학년 원양실습, 실습선 ‘새바다’호를 타고 싱가포르에 입항한 적이 있었다. 마침 싱가포르에선 독립을 기념하는 제1회 ‘메리디안 컵’ 축구대회가 개최되었다.
실습선 입항 중 싱가포르 팀과 한국 팀 간 야간경기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실업선발팀’을 급조(?)하여 출전시킨 걸로 알고 있다. 싱가포르 한인회에서는 우리(어업과, 기관과 합하여 약 80명)에게 응원을 요청했고 우리도 흔쾌히 승낙하였다. 당시 통일된 복장이라고 해 봐야 검정바지, 흰색 반팔와이셔츠, 검정넥타이뿐이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붉은 악마’와 비슷했던 것 같다. 우린 절도 있고 단결된 모습으로 열심히 응원했었다. 학생 응원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쌍용건설 현장 노동자 응원단’과 ‘싱가포르 한인 교민회 응원단’이 열심히 응원했었고 한국 팀은 결국 1:0으로 이겼었다.
기억나는 선수는 D고등학교 출신 ‘Y’다. 당시 D고등학교하면 축구부로 유명했는데 졸업 때가 되어도 팀 전력을 위해 선수들을 몇 년씩 유급시켰다. 당시 고등학교 운동선수들에게 유급은 다반사였다. 실력이 좋아 팀 전력에 꼭 필요해도, 불러주는 대학이나 실업팀이 없어도 모두 유급의 대상이었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후 응원석으로 달려와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고 우린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학생들 중 기관과 예비역이 섹스 폰으로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연주했었고, 경기가 끝난 운동장에 섹스 폰 소리가 낮게 울려 퍼지니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찬 감정을 느꼈었다. 나도 그랬다. 당시 70일 정도의 실습기간이라 한국을 떠나온 게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감정이 솟구쳤던 것이다. 현지 여러 언론들은 우리 축구팀 못지않게 학생 응원단의 활약을 다루었다. 특히 스포츠 신문 하나는 우리 응원을 밀착취재 하면서 한국에서 응원단이 한국 대 싱가포르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온 것으로 보도하였던 것이다. 당연히 응원단 사진과 소식은 스포츠 신문 1면에 실렸었고 여러 가지 뒷얘기가 보도되었었다.
우리의 검정바지, 흰색 반팔와이셔츠, 검정넥타이는 싱가포르에서 일약 대한민국을 떠 올리는 상징이 되어 버렸다. 사실 그 옷들은 실습기간 동안의 공식 외출복이었다. 그 보도는 잘못되었다. 우리는 경기 응원을 위해 특별히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언론보도가 얼마나 많은 허구를 담아내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가끔 특정분야의 보도내용은 현장 사람들이 볼 땐 황당한 경우가 많다. 어찌 언론만 그럴까? 학문적 연구 성과도 현장에선 쉽게 알 수 있는 감각과 따로 놀 때가 많다. 감정을 배제하고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보려고 하는 게 ‘기계론’이다. 하지만 그건 감정을 배제하고 보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건 자신의 관점으로 만들어진 ‘유사 감정’을 이입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나 그게 ‘기계론의 이중성’이라고 보는데 그런 것 때문에 기계론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세상에 너무 만연해 있는 것 같다.
다른 나라 운동장에서 응원했던 축구경기의 승리는 감동적이었고 슬픈 외국 민요는 우리의 감정을 흔들어 놓았다. 난 당시 어설픈 ‘국가주의자’였던 것이다.
다음날 실습선에서 싱가포르 대학생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당시 난 높아진 한국 스포츠의 위상에 대해 큰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지난 밤 축구경기에서의 승리는 자긍심을 높이는데 촉매제 역할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물었다.
“너희들은 올림픽에서 메달 딴 적이 있냐?”
“올림픽은 없지만 아시안게임에서 메달 딴 적은 있다”
“우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적도 있고 아시안게임에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오, 그래? 우린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 하나 딴 게 전부인데 부럽다”
나의 자긍심은 더욱 더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축구를 잘 하냐?”
“우린 국가대표선수 차출이 어려워 급조된 실업선발을 보냈을 뿐인데...”
“음 그래? 우린 국가대표였음에도 너희들에게 졌으니....”
“우리 축구는 아시아에서 최고지”
나는 더 높은 하늘을 향해 끝없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마치 ‘이카루스(icaru)’처럼.
“너희 축구팀 실력을 보니 너희 나라 축구 시설은 엄청나겠구나”
“축구장 말이냐?”
“그래 축구장. 너희는 우리보다 땅도 넓은데 엄청나게 많은 잔디 구장이 있을 것 같은데?”
“우린 대표(급) 선수들만 잔디 구장에서 축구할 수 있다. 인민들은 그냥 맨땅에서 축구 한다.”
“엉??”
그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대표의 축구 실력이 자기들보다 월등하기에 우리의 축구 시설이 자기들보다 훨씬 좋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우린 신청만 하면 누구나 잔디 구장에서 축구할 수 있는데...”
“우린 아니다. 왜냐면 잔디 구장이 도시에 하나 정도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데 어떻게 우리보다 축구를 잘 하지?”
“나 어릴 땐 그냥 골목길이나 기찻길 같은 곳에서 고무공으로 축구를 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렵구나, 인민들이 잔디 구장에서 축구를 할 수 없다니...”
우리가 싱가포르보다 더 잘 한다고 생각했던 축구는 ‘인민의 축구’가 아니라 ‘엘리트 축구’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국가대표나 프로스포츠 같은 것 말이다. 우리에게 스포츠란 ‘치킨, 맥주, TV’가 떠오른다. 그리고 밤을 꼴딱 새며 자신이 베팅한 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 등이 떠오르는 것이다.
인민들이 좋은 축구장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 아시안 게임 동메달 1개와 오직 선수들만 좋은 축구장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 아시안 게임의 수많은 금메달과 올림픽 금메달이 비교되어 부끄러웠다.
지금 난 ‘반(反)국가론자’가 되었다. 하여 국가가 하는 말과 사업은 대체로 경계하고 의심하는 편이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데 공동체는 필요하다. 하지만 인민을 위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늘 의심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