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14) 싱가포르- 상륙
K808호는 후발대 선원들을 기다리고 오만어장의 어업허가권이 나올 때까지 싱가포르 외항에 닻(anchor)을 놓고 대기해야 했다. 우리가 묘박(錨泊, 앵커를 놓은)한 곳은 주로 어선 또는 몇 백 톤급 작은 배들이 정박하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한국 국적의 다랑어(참치)연승어선들도 많았다. 이른바 ‘마구로 배’인데 ‘마구로’는 참치의 일본말이다. 인도양에서 조업하는 마구로 배들은 대부분 싱가포르에서 연료, 주부식, 선원을 보급 받고 수리도 한다.
국장(통신장) 배덕한은 수소문하여 아는 마구로 배에서 다랑어를 얻어 왔다. 참치는 ‘tuna’라 불리는데 그게 다랑어다. 크게 보면 다랑어류에는 다랑어류와 새치류가 있다. 다랑어는 참다랑어(bluetuna), 눈다랑어(bigeye), 황다랑어(yellowfin), 날개다랑어(albacore), 가다랑어(skipjack)가 있다. 참다랑어, 눈다랑어, 황다랑어는 횟감용이고 날개다랑어와 가다랑어는 통조림용이다. 새치류는 황새치, 녹새치, 청새치, 단문청새치, 흑새치, 돛새치 등이 있다. 새치는 ‘marlin’이라고 하는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새치가 ‘청새치(striped marlin)’이고 미국프로야구팀 중 ‘플로리다 말린스’라는 팀이 있다. 거기서 많이 잡히고 먹는 모양이다. 새치 중에서 가장 고가의 새치이며 잘 잡히지도 않는다. 사실 자연의 산물이 고가, 저가로 나누어지는 것은 오직 인간의 관점이다. 가령 눈다랑어가 황다랑어보다 고가인데 자연에서 그런 가치는 인정되지 않는다. 오직 인간의 몹쓸 관점인 것이다. 국장 덕분에 귀한 회 맛을 볼 수가 있었는데 냉동 황다랑어를 얇게 썰어 와사비에 찍어먹었다. 당시 난 와사비를 먹을 줄 몰랐다. 하지만 배에 초장이 없기에 와사비로만 먹었고 결국 와사비에 길들여졌다. 그렇게 와사비로 쭉 회를 먹었더니 이젠 회는 거의 와사비로만 먹는다. 우리는 줄 생선이 없어 일본에서 선적한 산토리 위스키를 주었다.
묘박한 배와 부두 사이로 다니는 정기 통선(sampan)이 있었다. 어느 항구에나 통선이 있게 마련이지만 싱가포르는 작은 정크선(junk boat)이었다. 대체로 배들은 노후하였고 기름과 음식 냄새가 심했다. 아마 싱가포르 항이 아니라면 이처럼 노후하고 작은 통선은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산항만 하더라도 기상상태가 나쁜 날이 많아 이런 통선으론 멀리 외항에 있는 배까지 나가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싱가포르 해상 상태는 적도권이라 일 년 내내 고요했다. 통선 선장들은 화교들이고 통선의 크기도 0.2톤에서 0.5톤으로 조각배 수준이지만 그곳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통선들의 허름한 지붕 아래 화교들 특유의 마작(麻雀)소리 같은 끝없는 중국말이 이국적인 항구의 풍경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통선은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선원들을 실어 날랐다. 항구에 통선이 없다고 한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배가 입항하면 가장 먼저 챙기는 것들 중 하나가 통선 스케줄이다. 몇몇 선원들은 어제 저녁 나갔다. 쇼핑과 함께 그리운 향기를 찾으러 나간 것이다. 인간의 욕망 아니 구체적으로 성욕은 지체시킬 수 없는 모양이다. 항구 주변에는 아가씨들이 웅성거린다. 해질 무렵 통선부두에서 통선을 기다리다보면 여러 명이 추파를 던진다. 쳐다보기만 해도 흥정하려고 달려든다. 근처 노천카페에도 많다. 주로 중국 사람이며 태국, 인도 사람도 있었다. 1984년 당시 싱가포르 달러는 미국 달러의 1/2정도 가치가 있었으며, 한국 돈과 미국 달러의 비율이 600원정도 했으니까 싱가포르 달러는 1달러에 300원정도가 되었다.
어선의 경우 입항해도 외출 안하는 초사가 많다. 아주 특별한(혹은 간땡이가 큰) 초사가 아니라면 몰라도. 이유는 차기 대권과 관련이 있다. 다음에 선장 맡을 확률이 높은 초사는 지금의 선장에게 티끌만큼이라도 책잡힐 짓을 안 하고 싶은 것이다. 입항을 해도 마치 한 가정의 어머니처럼 묵묵히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버지격인 선장이 보기에 좋은 태도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간다. 외출을 나가 항구의 밤을 즐기는 모양새다. 곽선장 역시 어제 저녁 외출 나가 아직 안 들어온다. 외박이다. 35살이면 한창 때 아닌가? 선장과 함께 외출하지 않은 선원과 사관들만 남았다. 난 싱가포르 입항 때 초보항해사로서 ‘열라 붕신’이 된 것도 있고 해서 조용히 침실에서 자숙의 시간을 보내려 했다. 그래서 아침 식사 후 방으로 들어가 집에서 가져 온 소설책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린다.
“2항사님 나가유”
“난 조깨 그런데...”
“나가서 바람 좀 쎄야 30개월이에유 30개월”
그때 초사가 나타났다.
“어이 2항사 빨리 나가아!”
“....”
내가 그래도 누워 있자 3항사는
“지금 우들이 가는 데가 일본, 미국이 아니라 오만이에유, 오만! 나가서 놀다 와유”
이번엔 초사가 방 안으로 들어 올 기세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아침 통선을 타기 위해 데끼로 나갔다. 초사가 오더니 미화 100불을 준다. 선장이 항해사들 쓰라고 준 돈이란다. 그 중 50불은 쓰고 나머진 담배와 먹을 것을 사오라고 했다.
싱가포르 경험이 많은 3항사 말에 의하면 화대(花代)는 ‘숏 타임(관계 1회)’ 싱가포르 달러 40불이라고 한다. ‘롱 타임’이 얼마인지는 3항사도 몰랐다. 대개의 선원들은 ‘롱 타임’으론 놀지 않는다. 돈도 비싸지만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부두 근처에서 직접 흥정하면 원하는 가격과 마음에 드는 사람을 직접 보고 고를 수 있는 이점이 있었으나 식사, 술 등을 사주어야하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들고 사기를 당할 수 있다고 했다. 같이 자다가 돈을 들고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주 찾는 항구라면 아예 ‘단골집’이 있었는데 선원들은 그곳을 ‘처갓집’이라 불렀다.
그런 방법 말고 업소로 직접 찾아가면 방도 제공하고 주인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불러준다. 주머니가 가난한 선원들은 그리로 간다. 만약 불러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거부할 수도 있었는데 택시비, 즉 싱가포르 달러 3불을 줘야했다. 하지만 대개 처음 온 사람을 택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객지에서 사람을 무슨 백화점 상품처럼 고른다는 것이 사치스럽고 창피스럽기도 해서. 그들은 확실치는 않지만 한국으로 말하면 ‘보도방’같은 곳에 고용되었거나, 개인 연락망을 통해 주로 전화로만 영업을 하는 것 같았다. 싱가포르 호텔에 투숙해 보면 하루에도 수십 장씩의 명함이 방 앞에 수북하다. 보통 ‘마사지’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사진이나 그림의 분위기를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이국땅 은밀한 호텔 방에서 젊디젊은 사람들이 어찌 마사지만으로 관계를 끝낼 수 있을까. 싱가포르엔 도처에 그런 ‘매춘업’이 많았다.
대개의 한국 사람들은 이른바 ‘기마이(기분)’가 좋아 그들의 주요 목표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 가 한국 사람들이 거쳐 가면 화대가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스스로 ‘한국 놈들이 씹 값 다 올린다’는 자조 섞인 말을 하곤 했었다. 사실이 그랬다. 인도네시아 같은 곳에선 화대가 현지인하고 한국인하고 달랐으니까. 한국인이 정에 약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허풍 때문에 그런 것일까?
우리가 싱가포르에서 접속한 그들은 정말 우리가 욕망하던 사람들이었을까? 아니 우린 그들에게 사람이었을까? 하지만 우린 그들을 경배해야 하지 않을까? 겨우 싱가포르 달러 40불에 그들은 친절을 우리에게 판매했으니 말이다. 아니 개새끼야 친절이 아니고 보지의 포용력을 내 주었으니까. 보지가 뭐 길래? 생명의 기원? 아니 개새끼야 우리의 욕망이 휩쓸려 들어가는 곳. 어쩌면 유토피아의 또 다른 끄트머리. 그것도 하나 제대로 해석 못하는 새끼가 시를 쓴다고? 그러고도 철학을 한다고? 우리는 겨우 30분 정도 우리의 숨 가픈 헐떡임으로 그들을 체험하지만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고 그게 오만에서의 힘든 30개월을 견디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수 십 년이 지나도 우리가 걸어온 역사에 한 획이 되는 그걸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래 그게 바가지 골목이든 하꼬다데든 그리고 싱가포르와 오만어장이든 그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이 쟁기가 되어 나를 긁고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겐 깊은 고랑이 파였다.
간혹 한국선원들은 왜 그렇게 ‘오입(誤入)’을 많이 하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먼저 오입인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매춘하는 것을 오입이라곤 할 수 없을 테니까. 선원들이 항구에서 배 밖으로 나가는 것은 ‘여행’이 아니다. 그래서 여행객과는 행로가 전혀 다르다. 먼저 여행객들은 상대적으로 선원들에 비해 시간 혹은 정신적으로 여유롭다. 그리고 대체로 혼자 오는 게 아니라 식구들 혹은 연인들과 함께 온다. 혼자 올 때와 식구 혹은 연인들과 올 때는 ‘행동거지’가 달라진다. 하지만 선원들은 아주 짧은 시간(쇼 타임) 동안에 배에서 누적되었던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더구나 그 항구에 대한 인문학적 혹은 낭만적인 관점도 없다. 왜냐하면 여행객들 보다 경제적 여유가 없고 무식하기 때문이다. 어쩔래?
그러므로 선원들이 즐기는 방법은 대부분 단말마적이다. 밥 먹고 술 마시고 섹스하고 시꼬미(출항 준비)를 한다.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것도 문제지만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것도 문제다. 선원들은 항구에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다. 언 듯 보기에 그것이 겉으론 섹스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섹스가 아니라 자신들의 힘든 삶을 통째로 숫돌에 가는 과정이라고 보아주면 안 될까? 그런 섹스를 좀 했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통째로 비뚤어지겠는가? 아니면 국가나 우주가 뒤틀어지는가?
북양어장 트롤어선 탈 때 갑고수(헷또 보다 높은 직책으로 갑판창고를 책임진다) 강석구는 당시 40살이 넘었는데 결혼하지 않은 어린(?) 사관들을 모아 놓고 섹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었다. 그는 자기 마누라와의 섹스도 아주 디테일하게 말하곤 했다. 우리가 그렇게 만만했었나?
그때 들은 얘기 중 하나가 ‘소 씹’에 대한 이야기다. 자기 사는 동네(아주 좆만 한 동네라 했다)에 어른 2명이 싸움이 붙었다 했다. 내용은 소의 보지가 얼마나 뜨거우냐에 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촌사람들은 너무 무식해서 이상한 것을 가지고 말다툼할 때가 많았으며, 한 번 붙으면 쉽게 끝나지 않았고 큰 싸움으로 번져 끝을 봐야하는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했다. 지금처럼 ‘네이버’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아무튼 소의 그것에 대한 논쟁은 당시 괴상한 논쟁의 끝판 왕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한 명(소의 보지가 못 참을 정도로 뜨겁지는 않다고 한 사람이겠지)이 실제로 동네 사람들 앞에서 소와 섹스를 해 보이기로 했다. 그것도 그냥 한 게 아니라 지는 사람은 자기 재산 다 내어 놓기로 약속하고. 동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와 섹스를 한 결과 ‘소의 보지’가 뜨겁다는 게 증명되었다고 한다. 소와 섹스를 하던 사람이 소의 그것이 너무 뜨거운지 섹스를 결국 중단했으니까.
그래서 생긴 말이 ‘소는 뜨거워서 못하고, 말은 차가워서 못한다’는 말이 생겼다고 했었다. 그리고 ‘사람은 안 대줘서 못 한다’는 말도 생겼다고 한다. 정말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었다. 우리 인간의 관점이란 오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정말 해괴망측한 게 한 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온갖 편견과 교훈들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소나 말들은 왜 우리와는 다른 섹스를 할까, 아니 그걸 떠나 그런 것들이 인간의 논의 대상이 되는 게 적절한 것인가. 과연 우리는 과연 소와 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사실 소와 말이 갖고 있다는 성질로서의 뜨거움과 차가움은 무얼까? 그것은 아마도 소와 말이 갖고 있는 자연적 지위가 아닐까? 남이 쉽게 열기 어려운 우리는 잘 몰라도 되는 아니 우리가 좆도 모르면 가만있어야 하는 즉 소와 말들의 삶의 방식이라는 말이다. 그게 뜨겁던 차갑던 우리가 간섭해서는 안 될 그 어떤 것이라는 말이다. 과연 뜨거움과 차가움의 경계가 없었다면 그들은 어떻게 여태까지 살아왔을까.
그렇다, 사람은 누군가가 대 주지 않으면 섹스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매춘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여성은 자신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섹스를 활용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아닐까. 반면에 남성은 오직 자신의 헐떡거림을 해소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어떤 여성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거나 우울할 때 심지어 머리가 아프거나 식구들에게 행복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섹스를 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섹스는 ‘삶의 기술’이다. 그들에게 섹스란 아이를 낳아 키우고 혹은 식구들을 보살피는 것들의 연장인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우주로 확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적어도 우린 그들이 펼치는 ‘삶의 기술’을 경배해야 하지 않을까.
하여 그들이 비록 우리 선원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돈을 갖고 튀었다 해도 우린 그들을 그리워하고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오랜 시간 거친 파도에 입은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거룩한 치료의 과정이니 말이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삶이란 어쩌면 ‘위로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뱃놈들에게 항구란 그런 위로의 천사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게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부조(浮彫)처럼 우리의 기억에 새겨져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제의 일처럼 떠오르거나 혹은 우리로 하여금 마치 어제 겪었던 일인 것처럼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뱃놈들은 수십 년 전에 단 한 번 갔다 온 항구의 풍경이라고 할지라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허풍이나 더러운 습관이 아니라 그렇게 새겨 넣고 싶은 본능이었을 것이다. 좆도 아닌 괴로움 삶이 마치 구원의 손길에 의해 하늘 높이 들려진 것처럼.
실제로 어장에서 조업하는 어떤 인간과 항구에서의 그와 똑같은 인간은 완전히 다르게 행동할 때가 있다. 신경질이 많았던 사람이 호탕한 사람으로 변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렇게 변형된 인간이 술을 마시고 여자와 섹스를 하고 카지노에서 하루 종일 베팅을 하는 것이다. 그걸 우리가 뭐라고 욕을 할 것인가. 그들에게 술이나 여자 혹은 카지노가 되어 한 번도 그들에게 기쁨이 되어 주질 못했으면서 말이다. 선원들은 그런 의미에서 정말 어린이와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바다로 인해 순수해져 버렸다고나 할까. 그렇게 항구에서의 시간은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어쩌면 아주 길고 또 실제론 너무 짧아서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아쉽게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항구의 시간을 멈출 수는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