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인도양을 건너다

15)

by 최희철

15) 인도양을 건너다


인도양 밤하늘은 별들이 주인공이었다. 우유를 부어 놓은 것 같다는 ‘은하수(milky way)’가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들이 누군가 쏟아놓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들은 고체인가 액체인가? 액체라기엔 너무 반짝이고 고체라기엔 너무 많았다. 한마디로 별들은 흐르는 강물 같았다. 인도양 위에 떠있는 배의 울렁임과 함께 모든 것은 거대한 시간의 연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하고 멀게만 여겨졌던 우주가 가까이 있다는 생각으로 가슴은 벅차오르고 그 간극 사이로 우주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것은 하나의 숨결이었다. 그렇게 우주의 입김 같은 걸 느낄 수 있음은 오롯이 배를 타고 인도양을 건너는 선원들에게만 주어진 축복이 아니었을까. 달빛이 브리지 깊숙하게 드리워졌다. 나의 그림자가 바다 한가운데로 이끌려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우리는 인도양을 건너 무스카트로 가고 있다는 생생함이 바람처럼 몰려와 내 몸을 휘감았다. 별들 바다 하늘 파도와 바람 달과 K808호 그리고 나는 하나가 된 시간처럼 인도양을 건너가고 있었다.

말라카 해협을 빠져 나온 K808호는 11노트(1노트는 1시간에 1해리 즉 1852미터를 가는 속도)로 달릴 수 있었기에 대략 보름 정도면 목적지 오만의 ‘무스카트’ 항에 도착할 수 있다. 어항에 갇혔던 물고기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형국이랄까, 좁은 해협에서 빠져 나오는 기분은 늘 그렇다. 넓고 큰 바다로 나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간혹 시야에 들어오는 저 멀리 있는 깜박거리는 불은 누가 밝혀 놓은 것일까.

육지가 보이질 않아 레이더 위치는 필요 없었다. 이제부터 ‘NNSS(Navy Navigation Satellite System, 미국 해군이 쏘아올린 인공위성으로부터의 수신된 전파의 도플러 주파수를 관측하여 측정하는 방식)’라는 ‘인공위성항법’으로 대양을 건너야 한다. NNSS 뿐 아니라 선박이나 비행기에서 사용하는 여러 기술과 기기 등은 대부분 군대에서 먼저 개발되고 사용된 것이다. 레이더(radar), 로란(loran), 어탐기(echo sound), 소나(sonar), 방탐(方探) 등등.

당시만 하더라도 충분한 숫자의 인공위성이 쏘아 올려 지지 않아 정확한 위치를 실시간으로 잡아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대양에선 몇 시간은 물론 하루 정도는 정확한 위치가 나오지 않아도 항해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정확한 위치가 나오면 그것을 기점으로 방향과 속도를 감안하여 ‘추정위치’를 생각하면서 항해하기 때문이다. NNSS 의 경우 심하게는 3일 정도 정확한 위치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말라카 해협을 벗어나면 스리랑카 남단을 보고 달리게 되는데 코스가 대략 270도다.

선박에선 ‘360도’식 방위를 사용한다. 북쪽은 000도이고 동쪽은 090도, 남쪽은 180도이며 서쪽은 270도다. ‘동서남북’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만 영어를 주로 사용한다. 노스(N)와 사우스(S) 같은 게 그것이다. 그 사이에 있는 방위는 북과 남을 먼저 부른다. 가령 북동쪽은 ‘노이스’ 즉 ‘NE’로 부른다. 360도식은 편하고 정확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코스 뿐 아니라 다른 선박 혹은 물표도 쉽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물표가 본선에서 270도로 보인다면 그 배의 우리의 서쪽에 있는 것이다. 당시엔 주로 5도 단위로 사용하였지만 ‘내비게이션’이 발달한 요즈음은 1도 단위도 사용한다. 그만큼 미세하게 배를 조정할 수 있다. 미세한 만큼 미세한 성과가 요구된다.

K808호는 선령이 5년 정도 된 ‘선미(船尾)식 트롤어선’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신조(新造, 새롭게 건조한) 선박들도 많아 5년 된 배는 그렇게 생생한 배로 취급되지 않았지만 최근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5년 된 배들은 거의 신조선이나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전에 B상선에서는 25년 된 벌크(bulk)선을 운행하고 있었는데 노후선으로 분류되어 선원들에게 ‘노후선 수당’이라는 걸 지급했었다. 하지만 지금 원양어장에서 뛰고 있는 우리 어선들 중에는 선령이 거의 50년이 된 배도 있으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자본이 생산과정에 ‘기계’를 도입하는 것은 ‘잉여가치’ 그것도 ‘상대적 잉여가치’를 높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노동시간만으로도 충분한 잉여가치가 보장될 때는 자본은 굳이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원양어업에는 값싼 노동력으로서 ‘외국선원’들이 있다. 그리고 한국선원들도 대부분 고령이며 상대적으로 육상 노동자들에 비하면 노동력의 가치는 낮게 취급되는 편이다.

노후선 이야기를 꺼내면 원양어업선사들은 ‘돈이 되질’ 않는다고 아우성친다. 그것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원양어업에서 생산하는 어획물들이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국가 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여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불평등한 게 있다면 개선하고, 원양어업이 공공적 가치가 있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사업 자체에 대한 지원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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