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무스카트 항

16)

by 최희철

16) 무스카트 항


오만(OMAN)은 북위 16~26도 동경 51~60도, 아라비아 반도 남동단에 위치한 나라다. 당시 술탄(sultan, 왕)이 지배하는 ‘술탄 공화국’으로서 이슬람 국가였다. 무스카트(muscat)항은 수도지만 당시로선 작고 조용한 항구였다.

K808호는 현지 감독관(inspecter)과 훈련생(trainer)을 태우고 주부식, 카톤 박스(어획물 담는), 연료를 받자마자 어장으로 달려야했다. 출항해서 하루 반 정도만 달리면 어장이다. K808호는 북부 어장을 제외한 중부와 남부 어장에서 조업할 수 있었다. 북부 어장은 허가가 있는 어선만 입어할 수 있었는데 주로 오만에서 판매할 어종 즉 ‘오만판’을 어획했다. 한국으로 갈 어종은 ‘한국판’ 그리고 일본은 ‘일본판’이다. 대체로 고급 어종은 ‘일본판’ 나머지는 ‘한국판’ 그리고 ‘오만판’은 톤당 600불 정도하는 어종인데 가격을 떠나 항차마다 일정부분의 할당량을 어획해야만 했었다.

똥배 튀어나온 게 심해 첫 인상이 탱탱한 애드벌룬 같았던 기지장은 그을린 얼굴에 느끼한 웃음을 지었다. 한국 사람이 분명하지만 왠지 한국 사람처럼 보이질 않았는데, 현지에 오래 살아서 그런 가 몸 전체에서 ‘노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거칠면서 유들거렸다.

“깜둥이들 술 좋아 하니까 자주 줘 취해서 자빠져 자도록”

감독관을 그렇게 관리하라는 말이다. 그 소리에 선장은 미소를 짓더니

“산토리 위스키 줘야 쓰것네, 새끼들 위스키 마셔봤을라나?”

“깜둥이들 술이라면 환장을 하지”

말끝마다 깜둥이라고 하는 표현이 내가 들어도 싫었다. 내가 너무 순진한 것인가?

기지장의 요구인지 부탁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장은 그의 승용차에 ‘김치’ 두 캔을 실어 주라고 했다. 승용차 트렁크에 김치를 실어 주고 오던 갑판원 김억준이 씹어 뱉듯.

“씨씨 씨이팔 새끼 선원들이 왔으면 음료수라도 한 박스 처 들고 와야지”

같이 김치 캔을 실으러 갔던 갑판원 조원성이 맞장구쳤다.

“그걸 알면 사람 다 됐구로, 앞으로 마이 갑갑하겠네...”

기지장은 입항한 K808호에 올라오면서도 인사하는 선원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급한 듯 브리지로 올라가 버렸다. 선원들을 위해 음료수 한 박스도 들고 오질 않았던 빈손이 부끄러워서 그랬나? ‘싸가지가 없다’고 선원들이 웅성거렸다. 게다가 우리나라 공관에서 일하는 놈들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당시 그곳에 ‘대한민국 교민’이라고 해 봐야 선원들이 전부였을 텐데 말이다. 그곳에 30개월 있으면서 우리나라 외교관의 낯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괘씸하다. 그런 놈들이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 해외에 나가 있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게 싸가지 없는 기지장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기지장이 선원들을 좆 같이 아니까 공관에서도 선원들을 그렇게 보는 것 아닐까?’ 이게 우리 모두의 마음이었다.

<2021년 트롤어선을 타고 남아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입항한 적이 있다. 선원들은 대략 80명 정도로 인도네시아 선원들과 필리핀 선원들이 60명가량 되었다. 입항하자마자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공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선장에게 자기 나라 선원들과 간담회를 열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그게 허락되자 선원식당에서 간단한 간담회 및 환영회가 열렸고, 즐거운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곤 다음날 공관에서 봉고차로 술, 담배, 음료수, 과자, 빵, 마스크 등을 갖고 와서 선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게 너무 부러웠다. 작은 것이지만 공관에서 자기 나라 선원 즉 인민들을 챙기는 모습 말이다. 우리나라 공관에서는 아무도 오질 않았다. 씨팔 새끼들.>

기지장은 선장에게 ‘몽고(갑오징어, 몽고이까)’ 시즌이니 가격 좋은 몽고 많이 잡으라고 했다. 오만어장에서 몽고는 톤당 3,000불로 고가(高價)어종을 상징하는 대표 어종이었다. 코드명은 ‘S’, 별명은 ‘뼈 없는 놈’으로 불렸다. 하지만 몽고는 몸통 안에 둥글고 넓은 뼈가 있는데 그 뼈의 이름이 ‘갑’이다. 그래서 ‘갑오징어’라고 부른다.

‘라스어장’을 경험한 선원들은 몽고가 귀하신 몸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라스에선 한 방(투망하여 예망하고 양망하는 것)에 몽고가 20팬 이상 잡히면 캔 맥주가 선원들 사이에 돈다고 했다. 당시 라스어장은 기지어업의 표본 같은 어장이었다. 돈을 더 많이 벌기위해 라스어장으로 진출하였고 또 라스어장에서 잔뼈가 굵은 선원들이 세계의 여러 어장으로 흩어졌다. 라스어장은 한 때 꿈이면서 그 꿈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곳이었고, 또 꿈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만나는 치열한 전쟁터였던 곳이다. 그곳을 경험했다는 것만으로 원양어선에서의 짬밥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라스어장은 서서히 지는 해였다. 라스어장에서 돈도 벌지 못하고 배가 깨어져(계약이 깨어져)오는 선원들이 속출했다. 그 틈새를 비집고 새롭게 떠오른 어장이 이곳 오만어장이었던 것이다. 당시 오만어장이 ‘돈 되는 어장’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근거가 ‘몽고’였던 것이다.

‘몽고’는 ‘몽고이까’로서 ‘오징어’의 한 종류다. 그리고 ‘(화)살오징어’라고 부르는 오징어는 ‘야리이까’로 불렸다. ‘야리’는 ‘얇다 혹은 뾰족하다’는 의미다. 살이 많으니 얇고 부드러울 수밖에. ‘야리이까’는 ‘몽고’보다 훨씬 더 비싼 어종(내가 듣기론 톤당 7,000불?)이지만 오만어장에서는 제품화할 정도로 많은 숫자가 어획되지 않았기에 모두 선원들이 먹었다. ‘야리이까’를 말려 집으로 보내기도 하고 귀국할 때까지 말린 것을 모아 ‘시꼬미’를 위해 저장하기도 했다.

말리는 장소가 배엔 여러 곳 있었는데 가장 빠르게 마르는 곳은 기관실 입구 연돌(배의 굴뚝)이 지나가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말리게 되면 훔쳐 가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그렇게 훔친 것으로 오징어를 모으는 경우는 없고, 자기가 먹거나 혹은 동료선원들과 나누어 먹기 위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니까 훔친다는 개념보다는 남이 널어(걸어)놓은 걸 ‘서리’하는 수준이었다. 그것 때문에 싸움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선원들 대부분은 오징어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럴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오징어를 적극적으로 말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배에서 할 일이 별로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가령 국장이나 기관장이었다. 그걸 선장이 시켜서 하는 수도 있고 선장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정성스럽게(?) 말려 입항하면 기지장에게 상납하거나 선장 집에 탁송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아무튼 그렇게 자기가 좆 빠지게 말리고 있는, 누군가가 그걸 훔쳐가서 먹고 있으니 부아가 날만도 했다.

그런 과정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행동의 품격은 어떤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일뿐, 나이하고는 큰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나이가 60살이 다 된 갑판원 김기운은 마구로 배 갑판장 출신이다. 마구로 배 출신이라 끈 작업 같은 것은 누구보다 잘 하였으나 그물에 관해서는 맹탕이었다. 간단한 그물 수리 같은 것도 못한다고 갑판장에서 욕 듣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말린 오징어가 그렇게 좋다면 자기도 데끼나 톱 브리지 등에 말리면 될 것인데 꼭 기관실 입구에 널려 있는 오징어를 훔쳐 먹었다. 그리곤 아이 같은 즐거운 표정을 짓곤 했다. 3항사 강철이 그를 보다가 한심한지 한마디 했다.

“그거 기관장 알면 좆 된다. 다리 하나 줘봐”

김기운은 아이처럼 깔깔거리면서 몇 개 남지 않은 오징어 다리를 입에 다 넣어 버렸다.

“이거 집에서는 비싸서 못 묵는데...”

3항사가 장난치듯

“기운이는 올 해 몇 살?”

“집에 가면 당신만한 아들이 있다 콱!”

3항사는 더 능글맞게

“누가? 우리 기운이가?”

“에라이!”

마구로 배 1항사 출신 강철이 마구로 배 갑판장 출신 김기운에게 톡 쏘듯.

“그러니까 좆판장 소릴 듣지”

마구로 배에선 헷또를 ‘좆또’ 그리고 갑판장을 ‘좆판장’이라 부른다. 그래도 김기운은 기관실 입구에서 말린 오징어 훔쳐 먹는 버릇을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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