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18) 여러 생각들
3항사 고창준이 처리실 안쪽 급냉실에서 선원들을 모아 놓고 공갈을 치고 있었다. 피시본드에 어획물이 부어지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하는 모양이다. 오른손에 각목이 들려져 있다. 선원들을 때리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은 같고 바깥에서 보니 ‘공포’를 보려 주려는 것 같아 보였다.
트롤어선을 처음 탄 초보선원이라면 몰라도 경험 많은 선원들은 결코 그 정도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다. 3항사는 우리가 오기 전 2달 정도 K202호에서 조업을 했기에 우리보단 경험이 많았다. 항해사들은 처리실과 데끼에서 선원들보다 힘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선원들은 선원들끼리 그리고 사관은 사관들끼리 약간의 자리싸움 같은 게 있었다. 가령 국장은 초사보다 어렸는데 나를 비롯한 3항사들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3항사 강철은 언젠가 한 번 걸리기만 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했다. 통신과 항해는 업무가 다른 부서다. 대개 국장은 선장과 자주 노는 편이다. 그래서 선장 ‘따까리’ 노릇을 하는 국장이 많다. 이번 국장도 그랬다.
항해계기 등이 고장 나면 국장을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 국장은 항해사들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국장은 하는 일이라곤 ‘테스터기’로 부품들의 작동 여부를 점검해 보는 기초적인 것들뿐이었다.
대체로 마구로 배 항해사들은 선원들을 거칠게 다룬다고 들었다. 출항하면 심지어 실항사가 선원들을 데끼에 모아 놓고 군기 잡는다고 ‘빳다’를 쳤다는 얘기도 있었으니까. 3항사 강철은 그런 것들 때문에 선상 반란이 일어난 것을 보았다고 했다. 아무튼 3항사는 둘 다 선원들의 군기를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고 선장도 그것을 나쁘게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자기 손엔 피 안 묻히면서 선내 분위기도 휘어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시쳇말로 ‘성깔이 있다 혹은 대가 쎄다’고 해야 하나, 어선에선 그런 항해사를 능력 있는 항해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간혹 그런 선장의 믿음을 배경삼아 과도한 권력(?)을 휘두르다가 도리어 큰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권력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가. 349톤 작은 트롤어선에서도 그런 게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피시본드에 어획물이 부어지면 맘보맨(어종의 종류와 양 그리고 오물이 무엇인지를 보고하는 사람)은 맘보를 한다. 그 보고로 양망한 코스에서 다시 조업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맘보는 중요하다. 처리를 하다보면 맘보가 틀릴 수 있는데 그때는 정정 맘보를 하고 처리가 끝나면 ‘최종 맘보’를 한다.
첫 항차는 다행히 다른 해역으로 이동하지 않고 ‘마드라카 어장’에서만 조업하였다. 어종은 몽고(S), 마다이(D1, 참돔), 지다이(D2, 혹돔), 지꼬다이(D3, 혹돔), 민어(K2), 노랑민어(K3), 복어, 갈치(W), 병어(R), 삼치(K), 구찌미다이(B, 청돔), 이또요리(금돔), 사꾸라다이(D4, 꽃돔) 등이다. 고급어종은 일본판인데 같은 어종이라도 사이즈가 좋은 것(큰 사이즈)은 일본판 그렇지 못한 것은 한국판이었다. 병어, 삼치, 구찌미다이 등은 모두 오만판이었다.
어획물은 피시본드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처리대로 나온다. 상품이 될 수 없는 어종은 모두 오물로 취급되어 옆구리에 있는 렛고 통으로 버려진다. 처리대에서 종별 그리고 사이즈(씨알)별로 팬에 담는다. 그걸 ‘다대’라고 하며 ‘나열’이라는 의미다. 다대가 끝난 팬은 차례차례 컨베이어를 타고 급냉(급속냉동실)으로 들어가 급냉 플레이트 속으로 들어가고 급냉실이 채워지면 급냉 프레이트를 유압으로 눌러 어획물을 급속 냉동시킨다. 시간은 4시간 정도, K808호는 5대의 급냉실이 있었는데 1개의 급냉실에 100팬이 들어갔다. 급냉된 제품에서 팬과 어획물을 분리하는 작업을 ‘탈팬’이라고 하는데, 탈팬을 위해선 급냉실에서 팬에 담겨 냉동된 어획물을 꺼내고 상온의 물을 끼얹어(해수 샤워기 밑으로 급냉팬이 지나가도록 만든다) 팬과 어획물이 분리하기 쉽도록 만든다. 탈팬이 끝나면 냉동어획물은 같은 종, 같은 사이즈를 두 개씩 한 박스에 담고 밴딩을 한다. 그리곤 박스 겉면에 어종코드와 사이즈를 마킹한다. 그리고 그렇게 박스제품화 된 것은 다시 컨베이어를 타고 –30℃ 어창으로 들어가서 종별로 적재된다. 그렇게 물고기의 일생이 마감하는 것이다. 어획한 어획물을 냉동시키는 작업을 오히려 ‘굽는’다고 하고 한 박스에 들어갈 수 없는 짝이 맞지 않은 종 혹은 사이즈를 ‘합빠’라고 부른다.
어선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대체로 일본어가 많다. 아마도 우리의 어업기술이 일본으로부터 들어왔기 때문일 거다. 일본말은 받침이 없어서 그런지 현장에서 사용하기 참 좋다. 말 그 자체에 현장감이 묻어있고 빠르게 전달되며 왠지 현장만의 암호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말을 많이 알고 있거나 사용을 많이 할수록 ‘질라이(경상도 사투리)’처럼 여겨졌었다. 그런데 가끔 그런 현장의 용어에도 국가주의적 관점을 들이대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사람이면 한국말을 써야지 왜 일본말을 쓰느냐고 항의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일본말이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면 이번에 일본말을 쓰는 것에 대한 반응과는 다른 관점을 보인다. 언어에 대한 사대(事大)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모든 언어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현장에서 태어나 현장에서 죽는다는 말이다. 현장에서 필요하면 일본말이 아니라 영어 혹은 아랍말도 쓸 수 있는 것이다.
처리실이란 게 처음엔 좀 서툴지만 한 항차만 해보면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단순작업이다. 다만 속도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K808호는 어장에서 조업 중에 처리 때문에 선원들이 힘들어 한 적은 없었다. 떼 고기를 잡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의 라운드 처리를 하니까 숙달되면 처리 작업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런 일들이 끝없이 반복되는 게 힘들었던 것이다.
처리원이 아닌 갑판원은 투망 같은 데끼 일이 끝나면 처리실로 내려와 함께 일한다. 간혹 데끼 일이 끝났음에도 처리실로 내려오지 않아 처리원과 갑판원이 다툴 때가 있으나 대부분 갑판원들이 처리원들 보다는 원양어선에선 고참이 많은 편이라 큰 싸움은 나지 않았다. 반대로 데끼에서 그물사고가 나면 처리원도 데끼로 호출 되었다. 그때 처리원들은 갑판원들이 하라는 일만 하는 편이었는데, 가령 수지나 실로 항 치는 일을 하는 정도이거나 갑판원의 보조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반복되다보면 처리원 중에서도 갑판원 못지않게 그물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였다.
살아 있는 몽고는 황홀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빛깔들이 피부에 나타났다.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들이 나이트 조명의 물결처럼 일렁인다. 몽고만 그럴까? 갈치도 그렇고 다른 어종도 다 그렇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너무 아름답지만 피시본드에 부어지는 순간 상품이 된다. 상품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아니 상품이 아름다워 보여서는 안 된다. 상품은 본래 갖고 있던 자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상실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름다워야 할 필요가 없어져 버린다. 모두 똑같은 냉동 팬에 들어가야 하는 사이즈로 잘라지거나 팬에 구겨 담긴다.
가끔 선장들이 보이스(보이스 통신)에서 자신들(인간들)에 의해 가치 없었던 몽고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니, ‘몽고는 자신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지껄이곤 했다. 농담이라기엔 너무 무거운 말이었다. 그런 소리는 제발 깊디깊은 수렁으로 들어가 나오지 말았으면.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무식하고 천박한 인간인지를 스스로 만천하에 드러내는 짓이므로.
‘몽고’는 팬에 담기 전에 먹통(먹물 구멍)을 실로 묶여야 한다. 일본판 ‘갈치’는 드레스(dress)라고 해서 머리와 꼬리를 자른다. 그리고 자를 수 없는 작은 ‘갈치’는 ‘실갈치’라고 해서 한국판인데 ‘라운드(round, 통째)’로 돌돌 말아 팬에 담는다. ‘도미’는 그냥 담지만 ‘혹돔’ 같은 것은 드레스 한다. ‘민어’는 개체가 너무 커 대가리를 자르기도 하지만 필레트(fillet, 살만 뜨는 것)를 뜨기도 한다.
‘가오리’는 모두 제품하지 않고 렛고 시키는데 제품화 되지 않는 것들은 어종 불문하고 모두 렛고 시킨다. 그들은 ‘오물’로 불린다. ‘몽고’ 이외에는 모두 잡어로 불린다. 그래서 조업 시즌도 ‘몽고철’ 과 ‘잡어철’이 있었다. 그래도 ‘도미’는 톤당 1,800불로 고가어종이었으며 일본판 갈치 역시 2,000불 정도였으니 고가어종에 속했다. ‘도미’나 ‘갈치’는 한 번 어획되면 대량으로 어획되는 경우가 많았다.
오만 어장에서 ‘상어’는 거의 올라오지 않는 편이었는데 대신 ‘가오리’와 ‘거북’이 많이 올라왔다. ‘거북’은 한 번 올라오면 하루 종일 동일한 그 ‘거북’이가 올라오는 경우가 있었다. 알고 보니 양망하기 직전에 선미 슬립웨이(slipway, 트롤어구를 배로 쉽게 올리기 위해 트롤어선 선미를 경사지게 해 놓은 곳)에서 방류를 하니 방류된 ‘거북’이 그 자리에서 해저로 가라앉다가 예망 중인 그물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그물에 어획되어 배로 올라왔다가 다시 방류되고 또 다시 어획되고 다시 배로 또다시 그물 속으로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면 결국 그 ‘거북’은 죽게 된다. 하지만 현지 감독관은 그런 것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가오리’ 꼬리를 잘라 지팡이를 만드는 유희에 집착할 뿐이었다. ‘가오리’ 꼬리 침에는 독성이 있어 실수로 밟을 경우 신발이 뚫리고 발바닥에 상처를 입게 되면 오랫동안 큰 고생을 한다. 가오리 꼬리에서 침을 제거하고 말려 니스 칠을 해 지팡이를 만들었던 것이다. 감독관 승선은 그저 명목상인 것 같았다. 그들은 생물학적 자료를 조사하는 것 같았으나 허위로 작성하는 것 같았다. 내가 봐도 이상하고 답답한 사람들이었다. 순수하기만 할 뿐이지 자기들이 우리나라의 원양어선에 올라와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놈들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만 수산청에서도 우리나라 원양어선의 조업 실태를 아는 놈들이 거의 없어 승선하는 감독관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고 대략 5년 후 미국으로부터 경험 있는 강사들이 오만으로 파견되어 오만 감독관을 교육시키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3항사 강철은 마구로 배 3항사로 있을 때 엄청 고생을 했다고 했다. 선장 중 부산수대 출신 선장이 있었는데 완전 한 마리 개였다고 했다. 선장은 조업 중 브리지에서 술을 마시다 취하면 데끼에서 양승 작업하고 있는 어린 3항사를 브리지로 불러 올렸다고 했다. 이유인 즉 오줌 누는 것 때문에 3항사를 불렀다는 것이었다. 3항사가 바지를 내리고 마치 어린아이 오줌 누이듯 깡통을 좆에 갔다대면 그때야 오줌을 누었다고 했다. 오줌을 누고 나서도 좆을 바지 속에 넣고 지퍼를 잡구는 것까지 3항사가 해 주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오줌을 누고 기분이 좋아진 선장이 이번엔 마이크를 주면서 3항사에게 노래를 시켰다고 했다. 그렇게 술을 똥구멍으로 처먹는 사람들 중에서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구로 배에서 술과 관련해서 사고치는 사람은 대체로 선장인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선원들에게 줄 술은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자신들은 거의 통제 없이 개망나니처럼 놀다가 뒈져 버린 것이다. 3항사는 마구로 배에서 그런 좆같은 일을 많이 당했기에 경력 면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트롤선 3항사로 왔다고 했다. 하지만 3항사도 마구로 배에서 배운 거친 면들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마구로 어선에 비하면 트롤어선이 나은 것 같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트롤 어선에서도 폭행과 상급자들의 횡포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좆같은 상황이었고 좆같은 새끼들의 광란이었다.
그런 비인간적인(아니 오히려 인간적인) 폭행들은 특정 어장과 상관없이 일어났던 것 같았다. 동기들 중에 선장들에게 맞은 사람이 많고 아는 선배는 라스에서 마이크(금속으로 만든)나 육분의(sextant, 금속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걸로 사람을 때리면 진짜 흉기임)로 머리를 찍는 선장의 폭행으로 부상을 당해 중간 귀국했었다.
육지에서도 운전대만 잡으면 괴물이 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런 선장이 있다고 했다. 출항하기 전에 마음씨 넓은 사람인 줄 알았으나 출항해서 조업이 시작되면 괴물로 변하는 선장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 어떤 선장은 아는 것도 많고 대화를 해 보니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우리 동기에게 그 사람 괜찮은 사람 같다고 말 했더니, 나보다 앞서 그 선장과 함께 탄 항해사가 그 새끼 완전 ‘또라이’라고 하면서 그 놈에게 엄청 맞았다고 했다.
본래부터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이건 그런 놈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게 아니다. 더불어 시대적 상황이 그래서 그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폭행을 저지른 놈들은 언제나 ‘개새끼’로 명명되어야 하는 게 옳다!
다행이랄까 K808호 곽선장은 폭력을 쓰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내세운 학벌주의 같은 게 오히려 직접적인 폭력을 쓰지 못하도록 자신에게 작동하지 않았나 싶다. 대신 언어폭력과 차별적 폭력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곰 같은 새끼’라고 부르는 것은 예사(전라도 사람들의 관용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급한 상황이 생기면 혼자 흥분해서 악을 쓰며 날 뛰는 경우도 있었다. 오죽하면 선원들이 K808호는 그물을 트롤윈치가 올리는 게 아니라 그물이 선장 고함소리 때문에 올라온다고 했을까. 2항사인 내가 뭘 잘못하면 ‘대학을 똥구멍으로 나왔냐’고 하면서 힐난을 하고 전문학교 출신들이 잘못하면 정면에서 ‘확실히 전문학교 나온 놈은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곽선장은 자신이 K일고, 부산수산대학 어업학과를 나온 걸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학교를 나온 걸 비난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콤플렉스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슬픈 생각이 들어서이다.
곽선장은 실력과 인성은 선장들 중에서 평균값 정도로 여겨진다. 그건 자신이 갖고 있던 콤플렉스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분명 전라도 사람이었는데 이력서 본적에는 서울특별시로 되어 있었다. 전라도 사람들의 역사와 아픔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콤플렉스가 스스로 억압하거나 혹은 타인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그게 오히려 전라도 사람을 경계하고 차별하는 이유로 작동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양면 거울에 낀 얼굴처럼 자기의 못난 얼굴을 무한 복사하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자신이 갖고 있는 억압적인 한(恨)을 이유로 누군가에게 복수하도록 놔 둘 수는 없는 것 같다. 결국 공동체의 힘 즉 공권력으로 그걸 처리해야 할 것인데, 그게 가능하려면 결국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 아닐까 싶다. 나는 아직 안목이 좁아 그것 이외에는 당장 해결할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물론 정치적 해결 방법 말고 고매한 인격이나 종교적 힘을 빌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결국 나중에 권력으로 다시 귀결될 가능성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무리 작은 공동체라도 폭력적 권력은 늘 숨어 있는 법이니까. 어쩌면 그 권력들이 고치의 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미시적인 권력들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것 말이다. 그러므로 우린 모든 공동체를 경계하고 의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좋은 뜻이었든 나쁜 뜻이었든 공동체는 미시권력들이 하나의 송곳처럼 뚝 불거져 나와서 공동체를 찢어 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콤플렉스는 일종의 열등감이고 열등감은 우월감과 더불어 ‘불평등’의 기초가 되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우린 콤플렉스도 경계하고 의심해야만 한다. 나는 주변의 조건만 된다면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주변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간은 늘 부족하다. 공부하고 또 생각하고 실천해도 부족함은 늘 상존한다.
직접적인 폭행은 아니라도 욕이나 비하, 차별 등으로 폭행에 못지않게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고, 폭행하는 사람은 차라리 뒤끝은 없어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나쁘다. 폭행을 하는 사람도 나쁘고 직접적인 폭행은 아니지만 여러 방법으로 괴롭히는 것도 나쁘다. 그러므로 누가 더 나쁜지에 대해 고민하지 말자.
트롤어선으로서 K808호는 이렇게 저렇게 굴러 가고 있었다. 인도양 오만 근해는 끈끈한 아교처럼 고요했다. 마치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투망, 예망, 양망 그리고 처리과정은 무성영화 필름처럼 동일한 궤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일본을 거쳐 싱가포르까지 그 모든 게 지금 이 순간에 고여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어쩌면 시간이 갖고 있는 함정이었을 것이다. 순간 좋은 일도 생각나고 혹은 반대로 나쁜 일도 떠오르는 것 말이다. 뱃놈들의 삶도 그런 것인가 생명이 아니라 기계 속을 겨우 빠져 나오면서 함성에 가까운 신음을 토해내고, 그게 나에게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나쁜 것인지를 다시 감각해야하는 마치 이성의 많은 부분이 잘려나간 정신질환자처럼 우린 지금 오만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시간의 흐름이란 어떨 때는 하루 단위로 또 어떨 때는 몇 초 단위로 계단을 미끄려져 내려가 듯 흐르는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오만 어장에 있는 게 맞나 그래 그 중에서도 마드라카 어장에서 몽고를 잡고 있는 것은 맞나. 나는 K808호 2항사인가 레이더를 통해 구하는 선위(船位)의 공간적인 의미 무엇인가. 우리 그물은 지금 누구를 짓밟고 지나가고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30개월 장기계약이라는 사각의 링에 뿌리를 내린 지울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인가, 잘 모르겠다. 우린 특례보충역으로 군대 대신 여기에 돈을 벌려고 왔으나 그게 자본주의 체계의 큰 톱니바퀴에 찡겨 자신의 몸(육체와 정신)이 짓이겨져 여러 동강이 나는 것은 결코 알 수 없는 마취 상태가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감각은 살아난 게 아니라 오히려 죽어 버린 것이다. 육지에서 키웠던 그 어떤 욕망도 내 나이 24살에 알맞은 욕망도 그 모든 욕망들이 몰려다니다가 드디어 함몰되어 끈적끈적하고도 좆같은 바다 위에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K808호는 구렁이 비늘 같은 물결 위로 미끄러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