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시간의 의미

19)

by 최희철

19) 시간의 의미



시간이 지나면서 브리지 당직은 숙련되는 것 같았다. K808호의 경우 물표를 잡아 위치를 내고 그에 맞춰 투망 코스를 정하고 투망이 완료되면 어장도에 그어진 코스를 따라 배를 몰고 가는 게 브리지 업무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직 트롤어선 전반에 대한 일들은 미숙했다. 브리지에 올라오기 전에 처리실로 내려가 상황을 둘러보고 이틀에 한 번 정도 어창으로 내려가 어획물들이 어디에 얼마나 적재되어 있는지도 살펴봐야했다. 그리고 선원들 즉 선내 분위기도 파악해야 하는 게 항해사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을 잘 하지는 못한 것 같다.

브리지 당직에서 접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보이스 통신’이다. ‘통신’을 통해 다른 어선들의 조업정보 즉 그들이 어디서 조업하며 또 어획성적은 어땠는지를 알아낸다. 하지만 그게 나의 업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2항사 당직시간이란 게 사실은 선장의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배에서 선장은 모든 시간 동안의 최종 책임자다. 하지만 선장이 24시간 당직을 설 수 없기에 주로 ‘낮에 일 한다’는 개념의 ‘데이워크(daywork)’ 차원에서 2항사 당직시간에 주로 브리지로 올라온다. 그리고 야간 당직인 초사 시간에는 선장은 쉰다. 물론 초사가 어디서 어떻게 조업할 것이냐에 대한 명령은 선장이 내리지만 초사 당직시간 중에는 브리지에 잘 올라오질 않는 편이다.

이런 현상은 초사와 선장 사이에서 더 확연하다. 가령 K808호의 경우 초사는 새벽 1시에 브리지로 올라와 다른 3항사와 한 조가 되어 당직을 선다. 즉 선장이 휴식을 취하는 심야에 당직을 서는 것이다. 이때 선장은 교대 시간에 잠시 심야조업에 대한 총괄적인 오더를 내리기 위해 브리지로 올라 올 때도 있지만, 초사 시간에는 가급적이면 브리지에 있질 않는 게 관습처럼 되어 있다. 심지어 2항사가 당직시간이 되어 브리지에 올라올 때까지 절대로 브리지엔 올라오지 않는 선장도 있다. 초사 시간에 브리지로 올라가지 않는 것을 ‘스스로 정한 규칙’이라 생각하는 선장도 있고, 가끔은 브리지로 올라와 조업 현황도 살피고, 초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려가는 선장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늘 잠시일 뿐이다. 대부분의 선장은 초사 시간에 휴식을 취한다. 그래야 당직 서는 초사의 활동도 편하고 자유로울 테니까.

그렇게 2항사 당직시간의 ‘보이스 통신’ 주인공들은 대개 선장들이었다. 트롤어선은 수 십 마일 이내에서 함께 조업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서로의 어구가 걸릴 정도로 밀집조업을 하는 경우도 있기에 빈번하게 교신(交信)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선장들의 교신 내용을 마치 라디오 방송처럼 듣는 경우가 많았다. 입담 좋은 선장들의 교신 내용은 재밌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갖 소재와 주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업 정보가 대다수이긴 하지만 자기 배의 누구를 욕하거나 칭찬하기도 하고, 항구에서의 여자 얘기와 도박 얘기, 또 다른 여자 얘기, 돈 많이 벌었는데 사업하다가 따 까먹은 영화 같은 얘기, 학교 다닐 때 얘기, 정치 얘기, 어디서 떼 고기 잡은 얘기, 연예인, 항구에 가면 뭐하고 놀 것인지에 대한 계획 등등. 그런 단편들은 마치 라디오 방송처럼 교신을 통해 쏟아졌고, 그것들은 다시 항해사들의 입을 통해 가공되어 본선 선원들에게도 전해졌다. 정보를 제조하고 유포하는 일종의 언론 창구였던 것이다.

오만어장에서는 늦은 저녁 시간이면 멀리 남인도양에서 조업하는 마구로 배들의 교신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다. 매일 들렸던 것은 아닌데 들리는 날은 생생하게 들렸다. 주로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게 많았는데 대부분 아니면 말고 식의 얘기였다. 어찌 그리 연예인들의 내밀한 사생활을 잘 아는지 그걸 들으면서 우리 모두는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마구로 선장들이 아니고 주로 국장들의 교신이었다. 마구로 배는 서로가 뚝뚝 떨어져서(보통 몇 백마일 이상) 조업하기에 선장이 보이스 통신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국장이 ‘VHF(단거리용)’가 아니라 ‘2MA(중장거리용)’를 이용해서 교신했기 때문에 오만 근해에 있는 우리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마구로 배 국장들은 통신을 통해 조직을 만들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정기적인 교신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국장들 중에 지식과 정보가 많은 국장은 고정 시간에 지금의 개인방송처럼 자신의 방송을 하는 국장도 있었다. 지금도 태평양에서 조업하는 마구로 배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 하지만 요즈음 인터넷 때문에 통신을 담당하는 국장을 승선시키지 않는 어선들이 많다. 승선하고 있는 국장들도 대체로 나이가 60세 이상이고 심지어 70살이 넘은 사람도 있다. 그래서 가끔 연세가 많아 지병으로 배에서 죽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눈물이 쏟아질 일이다. 아무튼 요즈음은 국장이 통신 쪽으로 할 일이 없어 어황정보보다는 어획실적 등을 취합, 정리하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젊은 국장들은 항해사 면허를 취득하여 항해사로 승선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원양어선에서는 국장(통신장)을 법적으로 승선을 시켜야 하는데 다른 사관들이 통신관련 자격증을 일정 인원이상 취득하면 통신장 승선을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어선의 입장에서만 보면 늙은 통신장을 승선시키는 것보다 자신들의 업무를 분담할 수 있는 항해사나 기관사를 승선시키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요즈음은 국장이 배에서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눈치가 빠른 국장은 스스로 자신의 일을 만들어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태평양 마구로 배에서의 ‘하우스에서 야채 기르기’다. 덕분에 그런 배의 경우 육지에서보다 더 많은 야채 가령 상추 같은 것을 먹을 수 있다.

아무튼 2항사 당직시간은 실질적으로 선장의 시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장이 브리지에서 위치를 내는 것 등의 항해사들이 하는 일은 하지는 않았다. 그 일이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묵계’ 같은 것이다. 2항사를 숙련 시킨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선장이 해야 할 일과 항해사가 해야 할 일은 다르다는 의미도 있다. 업무의 분담이라고나 할까. 모든 선장은 항해사라는 과정을 거쳐 선장이 된다. 선장이 항해사가 위치를 내고 있는데 그 옆에서 자신도 위치를 내고 있다면 유별난 선장을 넘어 항해사들에게 욕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선장은 항해사와 달리 더 넓은 의미에서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브리지로 놀러 오는 느낌도 있었다. 그곳에서 일도 하고 다른 선장하고 교신도 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인적 구성이 이루어진 순서와도 상관이 있다. 가령 같은 배에서 초사가 곱빼기로 한 어기(漁期)를 더 하고, 그 배에 새로운 선장이 왔을 땐 보통 선장은 초사의 독립성을 많이 인정하는 편이다. 그래서 야간 조업도 선장의 오더가 아니라 초사가 자율적으로 하는 배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 즉 선장보다 늦게 혹은 같이 온 초사에게는 선장이 좀 더 많은 간섭을 한다. 그건 트롤어선 뿐 아니라 어디라도 좀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초사 때는 호탕하고 담대했던 사람이 선장이 되어서는 소심해 지는 경우도 있다. 그에겐 비록 선장이지만 초보라는 딱지가 붙어서 그럴 것이다. 선장은 다른 선원들과는 달리 전체 책임자이니 무엇이든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고 주변에서 같이 적극적으로 놀아 주는 사람도 없다. 물론 예외적으로 따까리 역할을 하는 국장이나 기관장이 있을 수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선장은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래서 고기를 많이 잡고 선내에서 여러 가지 문제도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하여 선원들 앞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친 일들도 회사의 압력으로 좌절 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때 선장은 의기소침해지고 연약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초사 당직 시간엔 초사가 ‘보이스 통신’의 주인공이다. 대부분 초사들은 항해사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고, 이제 곧 선장이 될 사람이기도 하므로 나름대로 노련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선장에 버금가는 입담으로 야간 당직을 재밌게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음악을 틀어 주거나 고정적으로 어떤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초사도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야간 당직은 주로 저질이 좋은 ‘안전한 조업’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새벽에 소파에서 가벼운 취침을 취하는 초사도 있다. 그때는 초사와 함께 당직을 서는 3항사가 위치를 내면서 배를 끌고 가기도 한다. 위험하냐고? 거의 위험하지 않다. 위험하지 않는 구간에서만 잠을 살짝 자기 때문이다. 당연히 투망과 양망할 때까지 늘어지게 잠을 자는 초사는 없다. 초사는 낮에 오버타임을 하는 경우가 많기에 자신의 당직 시간 중 새벽이 되면 잠이 오는 것이다. 당연히 잠도 오질 않는데 스스로 잠을 청하는 초사도 없다. 잠은 내가 잠에게로 가는 게 아니라 ‘잠이 내게 오는 것’이다. 즉 잠은 식욕, 성욕과 같은 욕망이라는 말이다. 북태평양 어장에서 피항 할 때는 야간 당직 초사는 슬쩍 브리지를 떠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피항 할 때 하급항해사들에게 어떤 기회를 주기 위해, 물론 당직 전체를 비우진 않지만 하급항해사들도 그 기회에 다른 하급항해사들과 교신도 하고 브리지에서 약간의 자유를 맛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장이 눈치 없이 계속 브리지를 지키고 있으면 욕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초사도 그렇다. 초사가 브리지 업무를 살짝 등한시(?)할 때 초사와 당직을 서는 하급항해사는 위치도 내어 보고 통신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잠의 경우 원인이 피곤인지 습관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초사들 중에서 브리지에서 자다가 간혹 선장한텐 걸려 혼이 나는 경우도 있다. 좀 편히 살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이 아닐까? 하루 12시간이 아니라 오버타임까지 해서 15시간 정도 일하면서, 안전한 구간임을 전제로 브리지에서 살짝 잠을 자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나 때는 안 그랬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지금은 당신이 말하는 그 나 때가 아니다. 잠자는 초사를 발견했을 때 혼을 내는 선장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초사가 당직 시간에 브리지에서 자는 걸 선장이 봤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두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땐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맞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초사의 새벽잠이라는 게 초사가 자의적 혹은 의도적으로 불러들인 잠이 아니라, 낮 시간의 일 즉 초사 휴식시간을 빼앗은 오버타임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선장도 많다.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하는 직장생활인 것이다. 초사의 잠자는 모습을 보았을 때 초사를 혼내주지 않을 수도 없지만 너무 심하게 혼내 줄 수도 없는 일종의 ‘이율배반’적 상황이라고나 할까. 조직 생활도 그렇다. 밑에서 해 먹는 줄은 알고 있으나 공개적으로 나서서 관섭할 수는 없는 그렇다고 그걸 봤거나 제보가 들어왔다면 그냥 둘 수도 없는 상황 말이다. 왜 그럴까? 아마 자신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 왔고 또 오늘의 이 자리에 있기 때문일 거다. 그건 아마도 자신의 경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가령 자신은 선장이 되기 전 초사 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견디어 내었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자신은 하루 몇 시간씩 잠도 자질 않고 힘든 일을 했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한심스럽다고 이야기 하는 것 말이다. 그건 비단 선장들에게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당하고 있는 초사도 2항사, 3항사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른이 아이에게 혹은 남자가 여자에게 그 반대로 여자가 남자에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초사는 술을 좋아해 싸롱(조리장 사관담당)에게 간소한 술상을 봐 달라고 해서 조용히 그래 아주 조용히 브리지에서 한 잔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당직을 마치고 내려간 2항사를 살짝 부를 때도 있다. 이것도 선장이 브리지로 확실히 올라오지 않는다는 학습경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최근(2021년) 저연승어선 승선경험에 의하면 어떤 선장은 항해사들에게 당직시간 이외의 오버타임은 하지 말라고 하는 걸 보았다. 그래도 당직시간이 12시간이지만 각각의 부서에 따라 책임을 다하되, 잡무는 모두 자신의 당직 시간에만 하라는 것이다. 그 선장은 선장인 자신이 일정 부분 그런 일을 맡아서 했다. 난 그게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원양어선에서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다. 선장과 항해사의 관계가 상하 관계가 아니라 업무의 분담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선장은 아직도 거의 없다고 보지만 그 선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선장과 항해사의 관계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한국선원들의 인력난이 심하기에 힘들게 일을 시키거나 심하게 뭐라고 하면 하선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 서로가 서로에게 조심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있었다(2020년). 원양 채낚기 어선인데 전재(운반선에 어획물을 넘기는 것)하기 위해 운반선과 접선을 했었다. 그 배 국장이 말하길 선장과 초사는 수고(水高) 동기라고 했다. 그런데 해가 뜰 무렵 잠에서 깬 선장은 술도 취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브리지에서 마이크를 잡더니 전재 속도가 늦었다고 초사에게 욕을 해대었다. 초사는 브리지 앞 어창 입구에서 카고 윈치 수신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욕의 질과 강도 그리고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았다. 개새끼에서 시작해서 씨발놈 등등. 듣고 있는 사람들이 부끄러울 정도의 욕을 거의 20분이나 쉬질 않고 하고 있었다. 선장과 초사의 관계라도 그렇지만 그들은 동기라고 했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국장이 저 선장 본선에서 저것보다 더 한다고 했다. 운반선은 러시아 선박이었는데 러시아 선원들도 일을 하다가 그 광경에 놀라 전부 채낚기 어선 브리지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속으로 그 선장에게 욕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씨발놈아 쪽 팔린다 그만 해라!’

최근(2019년)엔 어장에 따라 아예 책임 당직을 6시간씩 선장과 초사가 양분하는 곳도 많다. 트롤어선도 인력난이 심하긴 마찬가지라서 항해사를 비롯한 사관들은 늘 모자란다.

항해계기가 발달한 요즈음(2021년) 브리지 당직을 서는 항해사들 태도를 보니까 약간 휴게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3,000톤급에는 항해사 3명이 한꺼번에 당직을 서는데 선장까지 있다면 브리지에 총 4명이다. 브리지의 대부분의 일은 항해계기의 자동장치가 맡아서 하고 있고, 낮 당직의 경우 선장은 조업 오더를 내리고(중층 트롤의 경우 그물의 수심을 맞추기 위해 수시로 메인와프를 감거나 풀어줘야 한다.) 1항사(수석 1항사가 아닌)는 브리지 오른쪽 구석에서 창문을 열고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고, 3항사와 2항사는 오토파일럿 조타륜에 기대어 핸드폰을 켜 놓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게 요즈음 브리지 풍경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자신의 관점으로 다른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다른 사람 역시 자신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 눈앞에 색안경이 걸쳐져 있으니까. 그 안경을 절대 벗을 수 없다고 한다. 그 안경이 사실은 우리가 결코 벗을 수 없는 ‘초월적’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넘어선 외부에 있는 초월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초월 즉 ‘내재적 초월’이라는 말이다. 그걸 ‘이성의 형식’이라고 하나? 우린 늘 어떤 형식(틀)을 통해 다른 무엇을 본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자신이 본 것보다 보질 못했던 게 더 많다는 걸 말한다. 다른 사람의 눈엔 뻔히 보이는데도 마치 없는 것처럼 자신은 그냥 지나쳐 버렸다는 것이다. 그걸 알게 될 때가 있지만 이미 늦었다.

트롤도 마구로도 채낚기도 모두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걸 기억 한다면 좀 더 ‘올바른(?)’ 바다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걸 슬기로운 바다생활이라 부를 수 있을까. 즐거운 선상생활 말이다. 얼마나 따뜻하고 쉬운 말인가. 내 눈으로 나의 눈을 볼 수 없듯 색안경을 통해 세상 보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다만 그런 사실만이라도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내가 아닌 남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또 한 편으론 참 쉬운 일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이곳 인도양 오만 어장에 왔고 이곳에서 운명 공동체 같은 30개월을 버텨야 한다면 내가 아닌 남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자리이타(自利利他)’가 아닐까. 어찌 우리뿐이랴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바다 그리고 하늘, 태양, 바람 그리고 이 열기가 우리와 함께 시간을 타고 있다는 지울 수 없는 사실을 잊지 말자.

트롤윈치나 금속성 어구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우리의 악다구니 소리가 섞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우릴 감싸 안거나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별들을 한 없이 품고 있는 밤하늘, 지금의 나를 여기에 우뚝 서게 한 자연의 법칙들 그리고 선원들, 그리고 지금은 멀리 있는 기억 속의 식구들이 하나의 ‘눈(目)’이 되어 별처럼 하늘에 박혀 있는 것 같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진짜 그곳에 큰 눈이 있었다. 지금 우리의 온갖 사건을 지켜보는 하나의 눈, 마치 ‘THE ONE(一者)’처럼 우리를 도도하게 비추는 어떤 힘이 그곳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건 지금 이 시각만 우릴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늘 우리를 비추고 있었던 것인데 우린 깜박했던 것이다. 사느라 바빠서. 밤하늘 속을 나는 새들의 궤적 그리고 바다의 가려움증 같은 파랑의 가녀린 날개들, 그 수 만장의 파랑들이 짓이겨지면서 만들어진 물의 장력(張力)들, 그것들이 우릴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그런 것들을 가르며 나아가는 K808호의 추진력, 난 지금 무엇을 잡고 있는가, 나의 버팀목이 되는 곳은 어디인가, 아니 이곳은 땅인가 바다인가.

깊은 밤 감독관 이스마엘과 나누어 마신 산토리 위스키에 난 점점 익어가고 있었다. 난 이제 자련다. 바다여 이젠 날 덮어라,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어김없이 철걱철걱 소리를 낼 강철 톱니바퀴 같은 시간을 덮어라.

기억해 보면 K808호에서의 2항사 시절이 ‘계륵(鷄肋)’ 같은 시간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 난 늘 계륵처럼 산 것 같다. 계륵 같은 시간, 존재, 사건, 철학, 욕망들이 우글거리는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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