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트롤윈치

20)

by 최희철

20) 트롤윈치



트롤윈치 운전의 숙련은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어느 지점에서 스톱하고 어느 지점에서 천천히 혹은 빨리 감아야 하는지 잘 몰랐다. 트롤 어구의 구성을 확실히 알아야 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곽선장은 가르쳐 주는 것에 좀 인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빠르고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것은 자신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K808호를 위해서도 좋은 일일 텐데 말이다. 사람이 겸손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다 가르쳐 주었는데 내가 몰라서 그런 것인가.

그런데 가르쳐 준다는 게 자신의 지식을 그저 알려만 준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대가 알 때까지 알려 주는 게 진짜 가르쳐 주는 게 아닐까? 그게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가르침을 행함’이다. 우린 대체로 어떤 것의 ‘보통명사’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철학’이 그렇다. ‘철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이 아니다. 진짜 철학은 ‘철학함’이다. 그걸 들뢰즈식으로 말하면 ‘되기’다. 그러니까 나무도 나무가 아니라 ‘나무-되기’인 것이다. 가르침 역시 마찬가지다. 가르침이 상대에게 끝없이 이행되어야 한다. 즉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가르치는 ‘가르침-되기’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되기’의 의미를 잘 안다면 가르치는 것도 철학도 그리고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되기’의 과정이라는 걸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예전(1986년)에 북양어장에 있을 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가령 야간 조업할 때 한국어선의 경우 배의 불빛만 봐도 그 배의 선명(船名)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또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배를 보이스 통신으로 불러서 서로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3항사로 갓 올라온 항해사들은 그걸 아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빠르면 한두 달 심지면 6개월 정도? 그런데 어떤 초사는 그걸 좀 가르쳐 주면 될 건데 안 가르쳐주면서 그걸 갖고 계속해서 3항사에게 배 볼 줄 모른다고 윽박지르는 경우가 있었다. 신입에 대한 선임의 텃세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자신이 3항사 때 당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인가. 아무튼 그렇게 하는 사람은 그런 일뿐 아니라 선박의 다른 업무도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무튼 ‘참 좆같은 풍경’이었다.

그런데 곽선장은 우리가 쉽게 이해하지 못할 습관? 아니 특징이 있었다. 선장으로서 선원 구성을 할 때 자기보다 더 똑똑하다 싶은 사람은 의도적으로 뽑지 않은 것 같았다. 나 말고 모든 직책의 사람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물론 부서별로 예외가 있는 것도 같았지만 대체로 보면 그런 것 같았다. 가령 취업할 때 동기 3명이 함께 해외어업을 방문했고 그 중에서 내가 선택되었기에 3명 중에서 내가 제일 똑똑하게 보여 뽑힌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선장의 그 못난 놈 혹은 어벙한 놈 뽑기에 내가 부합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갑판장, 기관장은 확실히 그런 것 같았다. 그걸 좀 더 확대하면 국장과 주자(조리장)도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장이 뽑은 사람들은 모두가 약간의 허점이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선장은 그들을 향해 ‘야이 곰 같은 새끼야’라는 말을 수시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야 아 그렇게 사람을 뽑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보다 덜 똑똑하다 싶은 놈들을 뽑아야 자기가 마음대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옛날 북양어장의 그 초사도 자기보다 똑똑하다 싶은 하급자들과는 말도 잘 섞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불합리한 말이나 명령을 하면 바로 반론을 제시하니까 말이다. 이런 것이 개인들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고 회사의 인재모집에도 그런 게 있는 것 같았다. 똑똑한 놈 보다는 말 잘 듣는 놈을 선호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렇게 말 잘 듣는 사람이 그 회사에서 성공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그게 좋다 나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반면에 선장을 능가할 정도로 똑똑한 사람을 선호하는 선장도 있다. 가령 K801호 갑판장의 경우는 뱃놈 주제(?)에 조선대를 중퇴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트롤어구 설계도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물론 그것도 종류별로 그리고 자기가 경험하면서 만든 설계도면을 선장에게 제시하기도 하였다. 설계도면은 머릿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아예 도면을 정교하게 인쇄해서 가지고 다녔다. 그물만이 아니다. 어구의 여러 가지 속구들의 특징이나 실험치(가령 비중, 무게, 파단력, 부력 등등)도 모두 정교하게 표를 만들어 다니기도 했고 심지어 대학교 어업학과 ‘어구학’ 교재들도 갖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각종 시스템에 대한 자신의 경험에 기초한 좋은 아이디어를 선장에게 제시하여 선장이 채택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각종 용어 같은 것도 한국어, 영어, 일본어에 도통하여 애지간한 항해사들보다 더 정확하게 구사하였다.

갑판장이 갑판(그 갑판장은 갑판을 절대 데끼라 부르지 않고 deck 혹은 갑판이라고 불렀음은 물론 그렇게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용어들을 갑판원들에게 가르치기까지 하였는데 그에게서 트롤업계의 선지자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에 나타나면 브리지에서는 투, 양망 신호만 보낼 뿐 일체의 다른 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K808호와는 완전히 딴 판이었다. 우리는 데끼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톱 브리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선장의 거친 소리가 온 배를 뒤덮을 정도로 가득 울려 퍼지는데 K801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모든 갑판원들은 갑판장의 신호와 명령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예의 주시할 뿐 브리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갑판장은 갑판에서 자기 말 듣지 않는 놈은 바로 죽여 버릴 거라 말했다고 한다. 예전에 데리끼(derrick, 하역을 위한 카고 윈치 붐)를 세우는데 갑판장이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선장이 데끼로 달려 내려가 모든 선원들이 초긴장 상태가 되어 데리끼를 세운 적이 있다. 그렇게 되면 갑판장이 뭐가 되나, 그러니까 좆또(헷또) 같은 놈이 나이든 갑판장보고 뒷구멍에서 ‘귀에 대말 좆 박안나’ 같은 말을 씨부렁거리는 것 아닌가.

초 밭에서 급양망할 때도 그랬다. 선미로 달려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조타명령을 내리는데 소리가 이상해서 말 귀를 잘 못 알아먹거나 브리지 대답이 좀 늦다싶으면 예의 그 ‘야이 곰 같은 새끼’가 튀어 나왔다. 그 소리에 처음엔 엄청 겁먹었는데 나중에 면역이 되었는지 우리 선장은 원래 좀 저렇지 하면서 나와 3항사는 웃고 말았다. 그리고 흥분해서 완전히 젖은 모습으로 브리지로 올라온 선장님이 반드시 하시는 말씀.

“니들은 무슨 곰 새끼들도 아니고 에이 곰 같은 새끼들”

그런 말을 뱉으면서 우리 선장님은 스스로 스트레스를 푸시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 같은 어벙한 초보 항해사는 늘 선장의 지청구 대상이었다. 사실 3항사가 선장에게 지적당할 일은 별로 없다. 업무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조타륜(키) 잡는 것은 어쩌면 일도 아니고 항해일지 ‘가라(거짓 일지)’로 쓰는 것도 그렇고 한 방 할 때마다 적어도 두 번은 처리실 간다는 핑계로 브리지를 떠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기억해 보니 초반에 나는 선장으로부터 정말 지적을 많이 당한 것 같았다. 4년제 나온 놈이 전문학교 나온 놈들보다 잘 하는 게 뭐냐 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학교 다닐 때 ROTC 교육은 왜 안 받았냐 그러니 네가 비실비실 한 것 아니냐, 결정적으로 너는 왜 그리 대가 약 하냐, 안 알려줘도 네가 알아서 해야 할 것 아니냐, 전문학교 출신들이 너를 따라 잡을 수도 있다 등등. 열등감이 부글부글 끊어 오르고 넘쳐 음지를 찾아 흘러가고 어두운 그림자가 그곳으로 드리워지는 것 같았다. 그건 숫기가 없는 나 같은 놈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선장은 내가 얼마나 교활한(?) 놈인지는 몰랐을 거다. 난 첫 항차부터 선장을 조금 속이는 방법에 익숙해졌다. 투망을 마치고 예망 코스를 결정하는 것도 그랬다. 간혹 투망 위치를 잘못 선정해서 투망 위치가 코스에서 제법 벗어날 때가 있다. 가령 예상외로 서쪽으로 치우쳐 투망이 되었다면 코스보다는 동쪽으로 헤딩(배의 선수 방향)을 더 틀어야 한다. 브리지에 선장이 없다면 문제가 없는데 선장이 있다면 왜 코스보다 동쪽(오른쪽)으로 배를 몰고 가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투망 위치가 잘못되었다고 선장에게 말하지 않고 조류(潮流)나 혹은 그쪽으로 가는 게 조업 성적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때 위치를 직접 내지 않는 선장을 내 말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런 방질로 큰 사고가 나질 않아야 하지만. 그러니까 지청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 같은 사람은 제대로 하는 게 아니라 요령만 늘게 되는 것 같았다. 자신을 뭐하고 하는 게 싫어서 그 사람 앞에서는 예예 하지만 그러는 순간에도 내가 빠져나갈 길만을 생각하는 것 말이다. 그게 나에게 긍정적인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면서 적응은 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부정의에 대한 부정의적 대응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정의에 부응하는 정의를 배워야 하는데 부정의가 난무하니 그걸 이기거나 회피하기 위해서도 부정의를 택하는 것 말이다.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그게 정의로운 것 즉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트롤윈치 조정하는 것은 좀 더뎠다. 이것도 처음부터 어느 정도 익숙해 질까지 옆에 딱 붙어 가르쳐 주었더라면 훨씬 나았을지 모르겠다. 트롤윈치를 운전하는 게 가장 어려운 부분은 클러치가 들어갔는지 빠졌는지, 브리지 윈치 운전대에서 볼 때 사각지대라 잘 안 보였다. 특히 야간엔 그곳이 어두워짐으로서 그게 더 심했다. 하지만 소리 등을 이용해서 쉽게 조작할 수 있었는데도 처음엔 긴장이 많이 되었다. 첫 항차를 마칠 때쯤에는 나도 이젠 트롤윈치를 제법 잘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트롤윈치 조작이 어렵지 않게 되니 트롤윈치가 브리지 안에 있는 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투망, 양망도 그렇고 급양망 할 때도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모든 게 초보 항해사였다.

첫 항차 마지막 날, 밤 양승이었다. 웬만하면 선장이 브리지로 올라오는데 하필이면 그날은 올라오질 않았다. 어두운 밤이었다. 이 양망만 끝나면 현장발(어장에서 항구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트롤윈치 크러치를 넣고 메인와프를 감기 시작했다. 메인와프에 칠한 50미터 표시 흰 페인트 마트가 올라오고 난 트롤윈치의 회전수를 급하게 줄여 부드럽게 전개판을 톨 롤러에 안착시켰다. 그리고 후릿줄을 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부분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후릿줄의 끝단이었을 것이다. 난 브리지의 뒤편만 바라보면서 트롤윈치를 감고 있었다. 그때 갑판원 이상정이 손을 들면서 뛰어 온다. 그리고 갑판원 몇 명이 따라서 뛰어 왔다. 난 급히 트롤윈치를 멈추었다. 그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상정은 스타보드 쪽 트롤윈치 드럼 안쪽으로 들어가서 윈치를 감으라는 수신호를 했다. 수신호는 잘 보이질 않아 내가 뒤꿈치를 들어야 할 정도였다. 어둠 속인데다가 사각의 사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천천히 조심스럽게 감아서 그런지 이상정의 수신호가 더 빨라졌다. 나는 조금 더 빨리 감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 보다. 이상정은 자꾸 더 강한 수신호를 보내왔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때 트롤 윈치를 멈추고 브리지 밖으로 나가 직접 확인했어야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속도의 문제로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수신호 할 때마다 속도를 조금씩 올려서 감았다. 제법 많이 감은 것 같았다. 소매 그물이 당겨져 트롤윈치 바로 밑에까지 왔으니 말이다. 그걸 보니 더 이상 감을 수도 없었다. 그제야 난 마이크를 들고

“더 이상 감을 수 없는데”

뒤에 3항사가

“2항사님 감는 게 아닌 가베유”

“슬라기?”

“그런가 베유”

그랬다. 이상정의 신호는 감으라는 신호가 아니라 슬라기 즉 풀라는 신호였다. 그 신호가 내 눈에는 감으라는 신호로 보여 졌던 것이다. 나는 당황해서 슬라기 하였다. 하지만 윈치 드럼에서 와이어들은 더 꼬여 버렸다. 드럼에 먼저 감긴 와이어의 샤클에 뒤에 감긴 와이어가 걸려 와이어들이 뒤엉켜 버린 것이다. 그걸 계속 감았으니 와이어들이 서로 짓이겨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고 나중엔 슬라기까지 했으니 설상가상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좆 되어버렸네 이거’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선장이 스피커 소리를 듣고 브리지로 올라왔다.

“뭐냐?”

“와이어가 엉켜 버린 것 같습미더”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았었다. 선장은 불같은 성격대로 브리지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곤 문제 해결을 위해 윈치를 감았다 풀었다 하는 작업을 한 30분쯤 한 것 같았다. 선장이 예의 땀을 흘리면서 흥분 상태로 브리지로 올라왔다.

“야이 곰 같은 새끼야, 넌 눈꾸녁을 감고 윈치를 잡았냐?”
“죄송합니다.”

“아 이 곰 같은 새끼 결국 사고를 쳤네, 어쩐지 좀 조용하더라”

“...”

“널 믿고 어찌 나가 브리지를 내려 갈 수 있겠냐?”

자존심이라는 냄비가 찌그러지면서 그 안에서 열등감이 툭툭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선장은 그래도 화가 안 풀리는지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한 대 때리려고 하다가 3항사를 쳐다보더니 손을 내렸다. 미안하기도 하고 성질이 나기도 했다. 이상정의 수신호가 원망스러웠다.

‘저 시팔 새끼 신호 좀 똑바로 하지, 잘못되었으면 고함을 치던지’

조금 후 선장이 마이크를 잡더니

“갑판장, 와프 몇 미터나 잘라야 할 것 같어?”

갑판장이 손바닥을 쭉 펴는 걸로 봐서 50미터인 것 같았다.

좀 자세히 설명하면 후릿줄은 좀 짓이겨져도 쓸 수 있는데 메인와프는 그렇지 않다. 짓이겨진 상태론 쓸 수 없기에 잘라야 했다. 그래서 50미터를 잘랐다. 메인와프는 고가의 어구다. 그런데 K808호 메인와프는 일본에서 인수할 때부터 트롤윈치에 감겨 있던 걸 사용하던 중이었다. 물론 신품 메인와프를 사입하였지만 그것은 나중에 내가 초사 때나 풀어서 사용하였다. 그리고 메인와프의 끝단(바다 속에 자주 들어가는 부분)은 일정기간 사용하면 잘라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부식되어 예망 중 그냥 힘없이 절단되어 통걸이(어구 전체를 잃어버리는)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사고와 상관없이 교체할 때가 되면 잘라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땐 나는 몰랐다. 오직 내가 대형 사고를 쳤다는 걱정뿐이었다.

그날 당직을 마치고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 감독관 이스마엘에게 산토리 위스키 얻어 오게 하여(감독관은 원하면 산토리 위스키를 얻을 수 있었다), 3항사 방에서 이스마엘, 3항사와 함께 2병을 비웠다. 안주도 별로 없이 ‘올리브 조각’ 몇 개로 마시고 있는데 주자 박영철이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도미 회 한 접시를 갖다 준다.

“캡틴이 말했나뷰”

“설마, 3항사는 못 봤어?”

“나도 봤는데 감으라는 것 같았시유”

“그 시팔 새끼 팔목떼기를 확...”

나는 이상정 흉내를 내며 욕하고 있었다.

“헷또 새끼하고 한 번 잡아야해유”

“왜?”

“개새끼들 요 며칠 전에 입에서 술 냄새가 나던디유”

“술을 언제 줬는디?”

나도 전라도 말을 쓰고 있었다.

“접 때 한 번 주긴 줬는디, 그 때 술이 아니예유”

“술 이방(3항사방)으로 올리삐지”

“이 방 너무 좁아유, 글고 술이 너무 많아유”

“씨팔 놈들이 훔쳐 먹나?”

“그런 것 같은디 증거가 없시우”
“일단 그냥 모른 척 하지”

“철(강철)이가 쫓고 있시우”

“키키 3항사에 걸리면 좆 될 건데”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많이 가서 그날 밤 선장에게 편지를 섰다. 미안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서 집으로 보내 달라고, 내가 잘못하는 것은 맞는데 자꾸 뭐라고만 하니 더 안 되는 것 같다고. 좀 가르쳐 주고 기다려 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힘들어서 집에 가야겠다고 가서 군에 끌려가는 일이 있어도 집에 가야겠다고. 손 편지를 선장 방에 밀어 넣었다.

다음 날 선장은 자기 방으로 날 불렀다. 대뜸 하는 말이

“넌 왜 그렇게 대가 약하냐”

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야 곰 같은 놈아 나가 너 미워서 그러냐”

“아뇨”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것이여”

“너무 뭐라 카시니까”

“야 곰 같은 놈아 미워서 그러냐고!”

“아임미더”

“그러고 너 집에 보내 달라혔는디 니가 집에 가면 나가 얼굴이 뭐가 되냐”

“...”

“느그 부모님이 날 뭐라할꺼 같냐 그라고 여기 있는 동문들이 날 보고 뭐라 하건냐?”

나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편지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았다.

“선배가 후배를 델꼬 왔으면 키워줄 의무가 있는 것이여, 의무”

“네”

“알것냐 이제”

“....”

“나가 널 좀 심하게 뭐라 한 것은 맞어, 허나 4년제 나온 놈이 좀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할 것 아니여 야 이놈아”

“네”

“이 놈 시키 한 번만 더 이따구 짓하면 허벌나게 맞을 줄 알어”

그러면서 내가 밀어 넣은 손 편지를 내 눈 앞에서 찢어 버렸다.

“하이튼 곰 같은 새끼가 약해 빠져가지고 츠츠”

“고맙습니다”

“그래 너 이놈 낼부터 잘 허는지 두고 볼 것이여”

그렇게 첫 항차가 끝났다. 선장이 찢어 버린 편지의 내용이 다른 선장에게도 전해졌나 보다. 오직 나와 선장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라 생각하고 난 다른 사람한테 말한 적이 없는데 선장이 말한 모양이다. 가끔 배들끼리 접선할 때가 있었으니까. 나하고 좀 친했던 K801호 선장이 날 보더니 대뜸

“야 너 곽선장한테 편지 보냈다메?”

“...”

“넌 나한테 왔으면 죽었다.”

그렇게 나는 좀 특이한 항해사가 되었다. 그 일이 K801호 뿐 아니라 ‘오로라’ 그리고 무스카트 기지장한테까지 알려져 부끄러웠다. 하지만 선장의 나에 대한 태도는 많이 변한 것 같았다. 그게 나에겐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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