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스크루에 그물이 감기다

24)

by 최희철

24) 스크루에 그물이 감기다


눈을 떴는데 감각이 좀 이상했다. 배의 떨림이 없었던 것이다. 민어 한 방 떠서 앵커를 놓았나. 진동이 없어져야 진동을 느낄 수 있다고 늘 진동이 있는 상황에서는 진동이 잘 느껴지질 않았다.

방을 나서니 정수기 앞 K808호 휴게실(진짜 휴게실이 아니고 4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걸상이 하나 있을 뿐이다. 그곳에서 교대하는 선원들이 휴식을 취한다) 앞에 선원들이 모여 있다. 그곳으로 가보니 선원들은 모두 뒷문 쪽으로 데끼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곳에선 데끼 전체가 훤하게 보이질 않는다. 3항사 고창준도 그곳에 있었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던 김억준이 말했다.

“스크루 가가감깃다 카네요”

“머가?”

“그그물이요”

3항사 고창준이 입을 열었다.

“우리 좆댔시유”

“그러게 어쩌다가”

갑판원 김기운이 입을 열었다.

“머구리 불러야 되는 것 아니가”

3항사가 웃으면서

“갑판장(마구로 배에서 갑판장이었으니까) 머구리 해 봤어?”

“오데예, 마구로는 저런 거 없심더”

식당으로 가니 주자 박영철도 놀란 표정이다.

“선장님 밥 묵다가 띠 갔어요”

“언제 그랬노?”

“아까 전에요”

일단 식사 시간이 되어 밥을 먹고 브리지로 올라갔다. 역시 브리지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선미 슬립웨이 근처엔 선장을 비롯해서 많은 선원들이 모여 있었다. 3항사는 좀 더 다른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저거 항해사들이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에유”

“몰라 들어가라면 들어가야지 별수 있나”

“난 수영도 못하는디”

“잠수해 본 적 없어?”

“...”

“까라면 까야지”

우리가 선미로 가서 먼저 선장에게 인사를 드렸으나 선장을 인사를 받지도 않았다. 인사 받을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긴급 상황이라 선장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기관장 머구리 해 봤어?”

“예 국내선 탈 때 해 봤심더”

“자신 있어?”

“일단 한 번 들어가 보끼예”

선장은 초사에게 기관장 들어 갈 준비를 하라고 시켰다. 준비라는 것은 선수 창고에 있는 머구리(잠수)장비를 선미로 옮겨 오는 것이다.

“2항사 너는 브리지로 가서 배가 얼마나 밀리는지 알아봐”

결국 초사와 갑판장 그리고 3항사들은 모두 머구리 장비를 가지러 가고 나는 브리지로 올라가 배가 밀리는 것을 파악하였다. 머구리 장비는 혼자서 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에 들어 갈 사람이 입을 잠수복과 잠수복에 연결된 고무호스 그리고 두 사람이 수동으로 저어서 공기를 생성해서 잠수부에게 공기를 주입하는 기구가 있었다. 그리고 큰 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와야 했다. 초사는 평소 때보다는 훨씬 빠른 동작으로 선원들을 지시하고 있었다. 위치를 5분 간격으로 구했는데 배는 육지와 멀어지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기관장 일단 들어가면 어떻게 됐는지 알려줘잉”

교대시간이 되어도 앞 조들을 감히 교대를 하고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밥은 먹어야했는데. 그때 눈치 없이 주자 박영철이 밥 차려 놓았으니 앞 조들은 밥 먹으러 가라고 했다. 선장은 그 순간 기분이 나빴지만 누군가에 의해 그런 말이 나왔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관장 들어가면 공기 주입기 교대로 두 명이서 작동허고 앞 조는 들어가”

하지만 선원들 이외 사관들 심지어 국장까지도 옆에서 대기 하면서 들어가질 않았다. 기관장은 들어 간지 10분 만에 올라왔다.

“완전 엉망인데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풀 수 있겄어?”

“푸는 기 아니고 잘라야겠십미더”

기관장은 아래의 상황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말하기 위해 두 팔로 크게 원을 그렸다. 그리곤 그 특유의 인상을 쓰며

“시커머이 무섭십니더”

“수지나는”

“완전히 다 엉키뿟습니더”

모든 선원들을 기관장을 입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이 곧 진리였다. 먼저 칼을 갖고 엉킨 그물부터 잘라야겠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물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물은 그냥 잘라내면 되는데 문제는 그물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수지나 와이어였다. 그게 스크루에 감겨 버린 것이다. 그리고 감기면서 와이어가 스크루 회전을 멈추게 할 정도였으니 그들의 엉킴이 얼마가 강력했을까. 샤프트에 엉킨 와이어는 찌그러질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이른바 떡이 되어 버렸다는 것인데 와이어가 안 녹은 게 다행이었다. 다행이 스크루 날개는 다치질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으로선 100%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겉으론 멀쩡하게 보여도 엉킨 것들을 다 풀어내고 난 뒤 엔진을 돌려 보아야 알 수 있었다. 만약 풀고 난 뒤에 엔진을 돌렸는데 스크루 날개와 샤프트에 미세한 휨(변형)이 생겨 배에 진동이라도 심하게 된다면 조업은 불가능할 것이다. 기관장이 말하길 잘해야 해지기 전에 끝나고 아니면 내일까지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리 급해도 캄캄한 밤에는 작업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오만 어장의 기상은 호수처럼 좋았다.

기관장을 칼과 연락줄을 매달고 들어갔다. 스크루에 감긴 와이어를 무턱대고 자를 게 아니라 수동으로 스크루를 이리 저리 돌려가면서 일을 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줄을 한 번 당기면 포트 쪽, 두 번이면 스타보드 쪽 그리고 여러 번이면 위험상황 이렇게 약속을 했다. 그러니까 총 3명이 필요했다. 공기주입기를 저어 줄 2명과 연락줄 잡을 1명 그리고 연락 온 걸을 기관실에 알려줘야 스크루를 수동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게 ‘터닝 기어’였다. 기관이 꺼져도 스크루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릴 수 있는 기계였다.

기관장은 물에 들어가면 최소한 1시간은 버티는 것 같았다. 공기주입기를 저어주는 사람은 교대로 정말 빈틈없이 저어야 했다. 만약 기관장 올라와서 작업하는데 갑자기 공기가 부족해 숨이 막히더라고 하면 공기주입기 저었던 사람은 박살나는 것이었다. 기관장은 일단 칼로 그물을 자르기 시작했다. 스크루에 감긴 것은 그물의 몸통이 아니라 끝자루였다. 그래서 자르기가 더 어려웠다. 끝자루는 그물의 굵기도 굵고 촘촘하지만 ‘고또털’이라고 해서 끝자루 밑판을 보호하기 위해 폴리에스텔 털들이 엄청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걸 해저 속에서 본 기관장은 나중에 그게 시커먼 동굴 속에 있는 커다한 괴물처럼 보여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엄청나게 복잡했다. 하지만 기관장은 물속에서 1시간 정도씩 작업을 하면서 동굴의 괴물 같은 그물의 뒤엉킴을 풀어내고 있었다. 먼저 고또털을 잘라내는지 선미로 잘린 털들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털을 제거하고, 끝자루 그물은 큰 크기로 잘라내었다. 일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았다. 가끔씩은

작은 그물 조각은 올라 올 때 들고 올라왔다. 그 작업을 한두 시간이나 했을까. 이제부턴 줄 톱을 챙겨 물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만약 기관장의 머구리 기술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항해사들이 차례로 들어가야 했을 것이다. 라스 경험이 있는 선원들은 라스에서는 이런 사고가 나면 항해사들이 물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경험이 없는 항해사들은 1시간은커녕 10분도 못 버티고 올라오는데 귀에서 피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기관장은 점점 잠수 시간이 늘여가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거의 3시간을 물속에서 견디면서 작업을 했다. 선장이 이러다 사고 날 것 같다고 좀 쉬면서 들어가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기관장은 이제 거의 다 되었다면서 10분도 채 쉬질 않고 줄 톱을 들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모든 작업이 다 끝났다는 말과 함께 물 위로 떠오르면서 쾌재를 불렀다. 그는 오늘의 영웅이었다. 선장도 감동하고 우리 모두도 감동하였다. 기관장은 ‘관세음보살’을 얼마나 많이 불렀을까. 선장의 명령으로 뒤 수습이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을 목욕탕에 따듯한 물을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관장을 그곳으로 모셔가서 떨어진 체온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체력을 보충하는 것이기도 했다.

“기관장 진짜 고생 많았어 고마워”

선장 뿐 아니었다. 초사도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다른 선원들은 인사도 인사지만 초인적인 기관장의 머구리 솜씨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기기 기관장이 없어시모 우우린 우찌 댔겠노”

“그라먼 좆되는 거지, 도크장 끌리 간다.”

“와 기관장님 대단하다 맞제”

뒷정리를 마치고 엔진를 시동해 보았으나 진동 같은 것은 없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저녁이 되었다. 초사와 나 그리고 3항사들은 브리지에 모였다. 범인은 초사였다. 급양망하면서 그물이 파손될까 싶어 엔진을 적게 쓴 모양이다. 선장은 소파에 앉더니 담배를 문다. 초사는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선장은 초사를 향해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항해사들에게 말하는 투로 말했다. 초사에 대한 한바탕 푸닥거리는 이미 했을 것이다.

“느그들 정말 브리지에서 정신 안 차릴래”

초사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어벙하게 다들 정신 안 차리면 나한테 죽을 것이여, 한 번 두고 보더라고”

“죄송합니다.”

“나가 이런 일을 처음이야 처음. 야 이놈들아 기관장 아니었으면 어쩔뻔했냐”

그때 눈치 없는 주자 박영철이 브리지로 올라왔다.

“기관장님 다 씻고 나 오싰는디예”

“음 그래 3항사 식당에 술 한 병 가져와”

그러고는 내게 투망 코스를 말하고는 내려가 버렸다. 초사는 당직시간이 벌써 지났지만 내려 갈 수 없었다. 선장이 내려가고 이제야 긴장이 좀 풀리는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2항사 정말 좆 될 뻔 했어야”
“우찌했기에”

“피치를 너무 낮게 썼나벼”

“3도?”

“아니 제로(0)”

“...”

“배가 뒤로 밀렸나벼”

술 갖다 주러 간 3항사가 올라 왔다. 그도 긴장이 풀리는지 웃고 있었다.

“초사님 식사하러 가유”

“밥 먹을 정신이 있냐, 선장님은?”

“국장 방에 들어갔시유”

초사가 내 옆에 와서 속삭이듯 말한다.

“2항사도 조심혀”

“네, 전 그물 찢어져도 피치 3도 이하는 절대 안씁니더”

“그래 내가 미쳤다벼”

보통 그물이 초에 걸려 급양망 상황이 되면 일단 해저에서 초에 걸린 당겨지는 장력으로 인해 메인와프가 슬라기(풀려 나간다) 된다. 브레이크로 잡아 놓았지만 배가 앞으로 가는 힘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 사태를 발견한 항해사는 일단 트롤윈치 드럼의 브레이크를 먼저 풀어준다. 그러면 메인와프는 잡아 주는 게 없기에 그냥 쭉 풀려 나간다. 그와 동시에 피치 12도, 전속력으로 달리던 배는 피치 0도로 해서 급속하게 배의 속력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얼마 후 슬라기 되는 게 좀 멈추면 클러치를 넣어 트롤위치는 메인와프를 천천히 감는다. 그때 적어도 메인와프 50미터가 톱 롤러에 올라오면 엔진을 피치 0도가 아니라 피치 5도 정도해서 배가 앞으로 천천히 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해저에서 전개판이 거의 직각으로 올라와서 스크루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사건이 일어나면 그 배는 끝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스스로 운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개판이 올라오면 후릿줄이 올라오고 그 다음 그물이 올라오는데 이때도 선미에 있는 갑판장에서 수시로 물어봐서 그물이 수직으로 올라오지 않도록 전진 엔진을 적절하게 사용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엔진을 너무 많이 사용해도 안 된다. 그러면 초에 걸린 어구 특히 그물이 크게 파손될 가능성이 높은 뿐만이 아니라 어구를 지탱하고 있던 와이어가 터져 그물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물이 스크루에 닿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전진 엔진을 써 주어야 하는데 그게 내 기준으론 피치 3~5도다. 그리고 갑판장은 급양망이 아니라 정상적인 양망일 때도 선미에서 모든 어구가 어떤 각도로 올라오는지 살펴야 하고 만약 배 뒤에서 올라오지 않고 올라오는 각도가 직각 혹은 예각(이것은 배 밑에서 올라온다는 것이니까 매우 위험하다)이면 브리지에 수신호를 해 주어야 한다. 그물이야 파손되면 수리하거나 교체하면 되지만 스크루는 아니다. CPP 방식의 엔진은 스크루가 고속으로 회전하고 있기에 더욱 위험하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 후 스크루 사고가 또 한 번 더 일어났고 이번과 똑같이 기관장이 들어가 그물을 잘라내었다. 기관장은 경험을 한 번 한 것 때문인지 훨씬 짧은 시간에 일을 마무리 지었다. 지금 생각하면 K808호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도 초사 당직 시간이었다. 여기서 초사와 선장의 행동에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선장이야 막말로 급양망하면서 그물을 많이 찢어져도 뭐라 말할 사람이 없지만 초사는 그런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 같다. 그물의 손상을 최소화시키면서 어구를 안전하게 배로 올리는 것 말이다. 그것은 성격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아는 게 너무 많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급양망을 하게 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내가 나중에 초사가 되어 깊은 밤중에 급양망할 때가 있었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서 엔진을 비교적 충분하게 사용하는 스타일이었다. 사실 그물이 올라오고 나면 나중에 그물이 얼마나 파손되었는지에 대한 추궁은 별로 없다. 그물이 올라왔느냐 그 과정에서 특별한 사고는 없었느냐가 거론될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엔진을 작게 써서 만에 하나 그물이 스크루를 감는 사고 같은 게 일어나면 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고, 그물을 걷어내지 못하거나 걷어내었다 할지라도 스크루 혹은 샤프트에 이상이 있다면 배는 어장에서 철수해야 한다. 그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다른 배에 끌려 수리조선소로 가야하는데, 그것은 엄청난 후유증을 만들어낸다. 일단 수리조선소의 위치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풀 스피드로 달려도 3일 정도가 걸리는데 다른 배로 끌고 간다고 생각하면 10일 정도가 걸릴 것이다. 그리고 끌고 가는 배의 조업손실도 끌려가는 배가 나중에 정산할 때 보상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스크루를 수리하는 비용 그리고 시간 같은 걸 생각하면 나중에 배는 살릴 수는 있겠지만 선원들의 어로계약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선원들도 심리적으로 동요할 것이고 결국 계약은 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했다. 그물이 스크루를 감는 사건은 보험과도 상관이 없기에 회사, 선장 그리고 선원들에겐 거의 사망선고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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