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통 걸이를 하다

25)

by 최희철

25) 통 걸이를 하다


마드라카 어장, 기상도 좋았고 해면 상태도 좋았다. 오만어장은 ‘몬순(monsoon)’ 시즌만 아니면 날씨는 좋았다. 수심은 30미터 정도였고 노랑민어(K3)를 잡고 있었다. 한 방했는데 맘보가 60개 올라왔기에 선장은 되돌려 놓으라 했다.

배를 돌려 다시 투망하였다. 그물 나가고 후릿줄 나가고 전개판 나가고 메인와프를 150미터 정도 인출한 뒤 트롤윈치 클러치 빼고 브레이크 잠그는데 톱 롤러 근처에서 정말 신기하게도 ‘툭’하면서 메인와프가 실 끊어지듯 터져 버렸다. 지금도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 같다. 강철로 된 32mm 와이어가 그렇게 쉽게 터질 수 아니 끊어질 수 있을까? 마치 실이 끊어진 연처럼 거대한 트롤어구는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선장은 소파에 앉아 기분 좋게 담배를 피우며 어탐기를 쳐다보던 중이었다.

“선장님 와프 터지삤는데예”

“뭣?”

선장은 이놈이 지금 무슨 소리하느냐는 식으로 날 쳐다보았다.

“방금예”

“어떻게”

“그냥 툭 터지삤습미더”

일단 스톱엔진을 했다.

“어디 걸렸나?”

본능적으로 어탐기의 습식기록지를 쭉 빼서 다시 보았다. 그것은 선장이 지금까지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 쳐다보던 것이다. 기록지엔 평평한 해저만 보여 줄뿐 울퉁불퉁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어탐기 기록 중엔 ‘반사파’라는 게 있어서 그게 진하게 나타나면 해저의 생긴 꼴은 평탄해 보여도 저질(低質)이 단단하여 그물이 파손되는 경우가 있었다. 가령 저질이 단단한 바위 같은 것으로 되어 있다면 강한 반사파가 기록지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습식기록지엔 반사파가 거의 없다.

“뭐 통걸이야?”

순식간에 어구 전체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곳의 수심이 낮아서 그렇지 수심이 수천 미터나 되는 해역에서 통걸이 같은 사고를 당하면 어구 전체를 영영 찾을 수 없다. 가령 북양어장 중층트롤 같은 경우가 그것인데 그곳의 수심은 보통 3,000미터가 넘었다. 사실 중층트롤의 경우엔 어구가 해저에 닿는 게 아니라서 그런 이유로 그물 사고나 날 확률은 매우 낮지만, 그래도 다른 배의 어구와 물속에서 출동하거나 전개판 같은 게 엉켜 어구를 연결시켜 주던 후릿줄이나 메인와프 같은 게 끊어 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메인와프가 끊어지는 사건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메인와프는 굵고 강하다. K808호 메인와프도 지름이 무려 32mm였던 것이다. 그게 실 끊어지듯 ‘툭’소리를 내며 끊어져 버린 것이다. 방금 일어난 일이 장난인가 싶어 톱 롤러를 다시 보았지만 그곳엔 분명 메인와프가 없었다.

선장은 평소와 달리 매우 침착하게 갑판장과 용접사를 불렀다. K808호엔 용접사가 있었다. 용접사는 평소엔 기관실에서 일하다가 필요할 때만 갑판으로 올라왔다. 그 중 하나가 전개판 ‘슈(shoe, 전개판의 신발)’를 부착하거나 육성(育成)하는 일이다. 전개판의 밑바닥은 예망 중 해저와 닿은 채로 끌려 다니게 되므로 마찰 때문에 슈가 닳게 된다. 그래서 그곳에 마치 우리 발에 신발을 신기듯 아주 두꺼운 철판을 붙여 주었다. 그걸 ‘전개판 슈’라고 불렀는데 용접사는 그 일을 했던 것이다. 뭐 용접사가 없으면 기관부원 중 누군가 하겠지만 어차피 기관실 일도 해야 하니까 용접사라는 직책으로 사람을 태운 것이다. 이름만 보면 그는 사관인 것 같지만 사관이 아니다. 그래서 선원들은 그를 ‘땜쟁이’라고 불렀다.

일단 선장은 갑판장에게 카고 윈치 후크(hook)를 가져 오라고 해서 그것들의 등짝이 붙게끔 용접하라고 지시했다. 등을 마주보고 접착된 후크 3개는 발이 3개인 갈고리처럼 되었다. 그걸 트롤윈치에 연결 시켰다. 그리곤 나보고 투망 코스로 가서 코스의 옆구리 방향으로 배를 천천히 몰아 보라고 했다.

우린 훅으로 만든 갈고리를 해저까지 내리고 그물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아무 것도 걸리지 않았다. 선장은 긴장을 고조 시켰다.

“2항사 위치를 확실하게 내”

사실 한번 만에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물이 한 번 만에 걸릴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후크에 그물이 걸려야 하는데 몇 번을 해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통걸이에 대한 책임에 나에게 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특정 포인트가 아니라 코스의 옆구리를 가로질러 배를 몰아야 하는 것이니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게 위안이 되었다.

두 번째로 다시 투망한 코스 옆구리 쪽으로 배를 몰고 갔다. 마치 수예를 놓듯 한 땀 한 땀 레이더로 위치를 내면서 어장도에 표시하였다.

‘또 안 되면 어쩌나 걸려야 할 텐데’

기상 좋고 저질 좋고 특별히 문제는 없었다. 그때 선장이 고함쳤다.

“피치 제로!”

트롤윈치 브레이크를 잡지 않았기에 윈치 드럼이 서서히 풀려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해저에 무언가 걸린 분명했다. 윈치 드럼의 슬라기 되는 속도가 약해지자 선장은 클러치를 넣으라고 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감았다. 풀려나가던 메인와프(윈치 드럼에 감겨 있는 부분의 메인와프)에 장력이 걸리는지 팽팽해지고 있었다. 그리곤 천천히 감기 시작했다. 엔진은 피치 5도. 얼마나 지났을까. 선미의 갑판장이 수신호를 한다. 그물이 아니라 후릿줄에 후크가 걸린 모양이다. 우연이지만 가장 좋은 지점에 후크가 걸린 것 같았다. 후크가 그물에 걸리면 어구를 찾을 순 있지만 그물의 손상을 각오해야 하는데 말이다. 후릿줄이 올라오고 선원들은 선미의 카고 윈치를 이용해서 차례로 어구를 배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전개판이 먼저 올라오기에 전개판을 갑판으로 먼저 올려 그곳에 연결된 끊어진 메인와프를 제거하고 전개판은 톱 롤러에 걸었다. 그리고 후릿줄에 이어진 그물을 올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물의 손상은 거의 없었다. 아바(그물 입구) 우와당(그물 윗판, 주로 약한 그물을 사용한다)이 조금 찢어졌을 뿐 다행이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만에 걸리다니. 나중에 메이와프는 100미터 더 잘라내고 구리스로 떡칠했다. 하지만 선장은 메인와프 전체를 교체하진 않았다. 난 통걸이 사건을 보면서 곽선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일 텐데 마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듯 후크의 등들을 용접해서 ‘삼발이 갈고리’를 만들고 그물을 찾거나 올리는 모든 과정이 배울만했다. 문득 나도 선장이 되면 저런 침착성을 갖고 일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아마도 어구 즉 그물이 거의 손상 없이 그것도 두 번 만에 올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인격이나 일처리 같은 것도 사건의 성격이나 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몇 번의 시도에도 그물이 걸리지 않거나 그물이 올라왔는데 그물이 대파 되어 있거나 또 그물은 올렸지만 전개판을 잃어 버렸거나 한다면 숨어 있던 성깔이 올라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좋지 못한 사건이 일어났지만 일이 잘 풀리면 그것에 대처하는 사람의 마음도 보다 부드러워 진다는 말이다. 그건 좋은 게 좋은 것을 부르는 일이 아닐까. 그러니까 무슨 일이든 그게 이미 좋거나 나쁠 순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 봐야 그것에 대처하는 사람의 관점 그리고 능력이 발휘되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그 일로 하여금 새로운 관점이 생겨나는 더 넓은 지평이 생겨날 수도 있는 것 같았다.

30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바다 위에서 더구나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니라 원양어선에 승선하여 물고기 잡는 현장 한 가운데 내가 있다는 것은, 뜻하지 않은 사건이 연속됨을 각오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만,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는 큰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놀라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반드시 바다 위라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래 아니다! 그런 사건들이 육상에 비해 특별한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이해할 수 있는 사건도 아니다! 우리의 삶이 사건들의 연속인 것처럼 원양어선에서의 삶이라는 게 육상의 삶보다 즐거움이나 우울함이라는 관점에서 더 강력하거나 혹은 그와는 반대로 더 늘어질 수는 있긴 하겠지만 그게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원양어선에서의 삶은 육상에서와 같이 같은 삶의 계열일 뿐이다. 우리는 구차하게 구겨진 우리의 삶을 멋지게 펴 보기 위해 이곳 바다로 나왔고 또 원양어선을 타고 있을 뿐 그 이외의 그 어떤 것 가령 영화 속의 어드벤처나 깊은 사유하거나 우리가 육지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거대한 어떤 것들과 대결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별 다른 짓을 하는 게 아니라 시간에 맞춰 밥을 먹고 일하고 그리고 내일을 위해 잠자는 것이다. 그런 쳇바퀴 같은 일상을 30개월 동안 참아 내는 게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일 그러니까 우리의 노동력을 파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력을 판매하는 방식이 있겠지만 우리는 육상에서 보면 특이한 방식으로 우리의 노동력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래 그 노동력이란 우리의 청춘(靑春)이다. 우리의 푸른 시절을 우리는 인도양 오만어장 K808호에서 팔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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