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사고들

27)

by 최희철

27) 사고들


원양어선을 타다보면 크고 작은 사고들을 만나게 된다. 기본적으론 노동조건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어느 한 순간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피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조건들을 모두 조사하여 통계를 내어 보면 결국 그게 노동조건이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구체적인 현장에서 만나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모두 통계적인 것의 부분 즉 파편이라곤 할 수 없을 것이다.

㉠ 난 앵커를 놓다가 앵커 체인의 쇳가루가 눈에 들어가 입항하는 다른 배를 타고 무스카트 병원에 간 적이 있다. 눈동자에 꽂혀 있는 것처럼 여겨졌던 것은 미세한 쇠 조각이 아니라 그것에 의한 ‘스크래치’라는 판정을 받았다. 보는 순간 우리의 ‘파독 간호사’가 떠오르게 하는 ‘필리핀 여의사’였다. 배에선 그렇게 아프고 의심스러웠던 ‘쇠 조각’을 의사가 아니라고 판정한 이후론 아프지도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앵커 작업할 땐 가급적이면 보안경을 쓰고 바람도 등 뒤로 받으면서 해야 하는데 그걸 잊었던 것이다. 그런 게 경험이다. 상선에 비하면 어선은 앵커 작업이 없는 편이다. 입항을 자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클랜드 저연승의 경우 1년에 한 번도 앵커 작업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앵커 놓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 몬순 때였다. 우린 급양망을 하고 있었다. 배는 뒤바람, 뒤파도를 받고 있었다. 해저에서 무언가가 어구를 질기게 물고 있는지 전개판만 올렸을 뿐 후릿줄부터는 감기지가 않았다. 배의 외판으로 볼 때 앞부분은 날카롭고 유선형이지만 뒷부분은 뭉툭하고 넓다. 트롤어선은 더 그렇다. 그래서 뒤에서 파도가 치면 그게 방파제 같은 역할을 해서 그곳에 부딪힌 물이 데끼로 엄청 올라올 때가 많다. 그래서 양망 할 때 가능하면 뒤바람, 파도를 삼가는 편이다. 북양어장의 경우 어획물이 가득 든 끝자루가 슬립웨이에 걸쳐지면 배를 돌려 앞바람, 파도로 세운다. 그래야 배도 흔들리지 않고 데끼에 물도 올라오지 않기 때문이다. 해저에 뭣이 걸려 있으니 엔진도 많이 쓸 수가 없었다. 배는 거의 스톱된 상태다. 그리고 선원들은 허리를 숙여 배 아래쪽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그때 엄청난 파도가 K808호의 선미에 부딪혔다. 파도는 선미의 대부분을 덮쳤다. 우리도 선장도 놀랐다. 선원들 뿐 아니라 선미의 데끼 이다가 파도에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 선원들은 급작스런 물이 덮쳐 홍수 바닥이 된 선미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오만 어장에서 그렇게 큰 바닷물이 선미로 올라온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후 물은 순식간에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많은 양의 물은 스립웨이로 빠져나가고 나머지 물들은 선미에 있는 ‘무링라인 구멍(mooring hole)’으로 빠져 나갔다. 선원들은 스타보드에도 포트에도 있었는데 다행히 많은 선원들은 빠져 나가는 물에 휩쓸려 나가지 않기 위해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잡았다. 아무도 물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스타포드 쪽 ‘무링 홀’ 근처에 쓰러져 있었다. 갑판원 박영복이었다.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들어온 물에 붕 떠 있다가 물이 빠지는 힘에 휩쓸려 선미의 비트(beat, 무링라인을 걸거나 묶는 금속기둥)에 가슴을 부딪던 것이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인지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마치 응급실처럼 사용하던 3항사 침실로 옮겨졌고 가슴 통증을 호소하였다. K808호에는 뼈를 검사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료장비는 당연히 없었다. 긴급으로 선단에 사고를 알렸더니 K802호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 했다. 갑판원이었는데 K802호에서도 의사 노릇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기상이 좋지 않았지만 겨우 접선하여 사람을 넘겨받았다. 그는 가슴을 이리저리 만져 보더니 잘은 알 수 없지만 부러진 것은 아니고 금이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래서 카톤 박스를 이용해서 가슴 지지대를 만들고 붕대로 감싸더니 한 달 정도면 괜찮아질 거라는 진단을 내렸다. 실제로 한 달 후 박영복의 몸은 회복 되었다.

K802호에서 온 의사선생(?)은 나중에 알고 보니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이었다. 자기 삼촌이 실제 정형외과 개인병원 의사였는데 그곳에서 오랫동안 일했다고 했다. 의사나 간호사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중엔 동네에서 진찰도 하고 주사도 놓을 정도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요리도 한식, 중식, 양식 못하는 게 없다고 했다. 이발도 할 줄 알고, 양복점에서 일한 적이 있어 간단한 옷은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기관실 ‘우웨스(기관실 기름 따위를 닦는 걸레인데 거의 대부분 옷이다. 그 중에는 그냥 입어도 될 만한 옷들이 제법 많다. 그리고 실제로 선원들은 우웨스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을 골라 작업복으로 사용한다)’에서 그런대로 쓸 만한 옷을 골라 자기가 변형해서 입을 정도라고 했다. 안경점에서도 잠시 일한 적이 있고 바둑도 아마추어 3단이나 되고 고스톱 치는데 상대방이 먹고 내는 패를 보면 상대방이 대략 무슨 패를 갖고 있는지 알 정도로 고수였다. 그쯤 되니 우리가 물어 보기가 무서웠다. 물어 보는 것마다 경험이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춤 특히 사교춤을 잘 춘다고 했고 예전에 사설 학원에서 강사까지 지냈다고 했다. 뱃놈들 이야기를 100% 다 믿을 순 없지만 K808호에 있으면서 그 모든 것을 조금씩은 보여 주었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런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는데 ‘왜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냐’고 하니까 그냥 웃는다.

“이게 어떼서요?”

알고 보니 도박을 했다고 했다. 자기 말로는 빌딩 한 채 말아 먹었다고 했다. 옛날 서울에서 이발사(이발소를 개업한 게 아니라 호텔 이발소에 취업 한 것)하면서 그 호텔 나이트클럽 아가씨를 한 명 알았는데, 그를 알게 되면서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했다. 호텔 월급쟁이 이발사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무슨 빌딩 한 채를 말아 먹을 일이냐고 물었더니.

“영도에 내려와서 하우스 했다 아잉교”

“하우스해가꼬 돈 많이 벌었는가베”

“갈구리로 긁었지예 갈구리로”

그래도 그는 그 모든 게 후회스럽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돈이 떨어지자 떠나 버리고, 그는 다시 식당으로 다시 이발사로 그러다가 결국 조카가 소개해 오만어장으로 왔다고 한다. 알고 보니 K802호 기관사의 외삼촌이었다. 이번에 돈 벌면 돌아가서 작은 식당 하나 할 거라고 했다. 문득 아버지가 ‘팔방미인은 굶어 죽는 놈도 없지만 잘 되는 놈도 없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 오로라는 오만어장에서 해외어업 선단장이 타고 있는 배다. 약 1,000톤으로 다른 배들 보단 훨씬 컸지만 좀 오래된 배였다. 엔진도 CPP 방식이 아니고 연료량을 조절 하는 방식이었다. 그래도 엔진 조작은 브리지에서 했다. 그 배는 ‘자이로 콤파스(gyro compass, 팽이의 원리로 방향을 알려주는 전기식 나침반. 법정 비품)’가 고장난지 오래 되어 ‘자석 나침반(magnetic compass, 자석을 이용한)’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건 오차가 심한데 말이지.

그렇게 낡은 배였다. 급양망 하면서 선미 슬립웨이 난간에서 어구를 살피던 헷또가 메인와프에 맞아 죽는 사고가 생겼다. 메인와프가 터져서 죽은 게 아니라, 스타보드 쪽으로 힘껏 쏠려 있던 메인와프가 톱 롤러에서 빠져 나오면서 난간에 서 있던 헷또를 강타하여 즉사했다는 것이다. 보통의 톱 롤러는 ‘스내치 블록(snatch block, 블럭의 케이스가 개방이 가능하여 와이어를 블럭에 끼우기 쉽도록 만든 블록)’인데 스내치가 열려 그 곳으로 메인와프가 미끄러져 나온 사고였다. 스내치를 개폐하는 곳에 구멍이 있고 그곳에 손가락 굵기 만한 쇠막대를 끼워 스내치가 열리지 않도록 하는데 쇠막대가 낡아 스내치가 열려 버렸고 그곳으로 메인와프가 튀어 나와 사람의 등을 쳐 버린 것이다. 등에 강한 타격을 받은 헷또는 자신의 가슴이 기대고 있던 난간에 부딪쳐 그 충격으로 가슴이 박살나 그 자리에서 사망한 사고였다.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사고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것과 같은 배에서 본 것 그리고 다른 배의 사고를 누구로부터 들은 것은 그 강도가 다 다르다. 그래서 같은 죽음도 어떤 죽음은 매우 무섭거나 슬프고 또 어떤 죽음은 먼 곳의 소식처럼 의아하기만 하다.

가슴뼈를 다친 박영복 사건은 불가항력인 것 같지만 그것 역시 기상이 나쁜 몬순 시즌에 급양망을 할 정도의 초 밭에서 방질을 한 잘못이 있다. 그리고 나는 앵커를 놓을 때 안전한 위치에 서 있질 못한 게 잘못이고, 오로라 사건은 데끼 뿐 아니라 모든 장비의 일상적인 안전점검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전 26화26) 영천 사람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