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28) 조업 에피소드
K808호는 도미(마다이) 조업에선 따라 올 배가 없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그건 아마도 엔진 마력이 높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당시 349톤에 2,700마력은 굉장한 힘이었다. 같은 코스에서 같은 시간을 예망해도 우리는 다른 배들보다 더 긴 구간을 예망할 수 있었다. 당연히 어획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몽고 조업이었다. 왠지 우리의 몽고 어획이 시원찮았다. 먼저 어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어구의 입구였다. 가령 ‘그라운드(ground, 발줄, 트롤어구의 밑판을 해저에 밀착시키기 위한 도구들로 주로 금속 싱커 그리고 고무타이어 둥글 게 자른 것을 그물입구 밑판 와이어에 끼운다)’를 더 무겁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금속 싱커를 더 많이 끼웠다. 하지만 몽고 어획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엔 그라운드에 ‘보빈(bobbin, 철구, 철로 만든 공)’을 처음엔 한 개 나중에는 세 개까지 끼웠다. 어구가 해저에서 덜컥거리지 말고 보빈이 바퀴 역할을 해서 순조롭게 그리고 조용히 잘 굴러 가라고. 하지만 어획 성적은 좋아지지 않았다.
선장은 괜히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배들이 접선하면 그냥 놀지만 말고 다른 배들 어구는 어찌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공부 좀 하라고. 명목은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접선 때마다 다른 배에 넘어가면 데끼에 펼쳐 놓은 남의 어구를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K202호 동기에게도 어구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어구 특성과 조업의 관계가 어떤지를 알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배들은 특별히 어구를 손대는 경우가 없다고만 하였다. 거짓인지 참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직 K808호 혼자 안달이 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가 라스 어장 경험이 많다는 선원들이 우리의 후릿줄이 너무 가볍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우리는 그걸 시도해 보기로 했다. 먼저 트롤 그물은 크게 밑판과 위판이 있고 그 각각에 후릿줄이 붙는다. 그러니까 사각형이 그물에 4개의 후릿줄이 붙는 것이다. 그 중 두 개 즉 밑판에 붙는 후릿줄은 예망 중 해저에 닿아 끌리게 되는데, 그곳에 체인을 달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K808호는 이미 그곳엔 체인이 달려 있었다. 라스 어장에서 일명 ‘다꼬체인(문어체인)’이라 불리는 체인이다. 라스 어장에선 문어의 어획 성적을 높이기 위해 ‘다꼬 체인’을 1개가 아니라 4개까지 부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해저 위를 어구가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고 해저를 후벼 파면서 지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도로는 안 되고 더 무거운 것을 달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이다. 그게 바로 앵커체인이었다. 앵커체인은 현재 부착된 ‘다꼬체인’에 비하면 손가락과 팔뚝의 차이였다. 그런데 앵커체인은 어구가 아니라서 배에 싣고 다니질 않는다. 결국 우리는 선수 앵커체인 룸에 있는 진짜 앵커체인을 1.5미터씩 잘라 후릿줄에 부착하게 되었다. 법정 비품인 앵커체인을 잘라 어구로 사용한 것이다. 문제는 어획 성적이었는데 그래도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 우리 배의 강력한 엔진 마력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몽고 조업할 때는 피치를 낮춰 속도를 줄여 보기로 했다. 보통 피치 12도를 놓고 예망하는데 피치 10도를 놓고 예망하였다. 예망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졌고 심지어는 전개판이 넘어질 정도로까지 예망 속도를 줄여도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30분짜리 부드러운 언덕이 있는 짧은 코스였다. 투망 끝나자 피치를 최대한 낮추었다. 아마 피치 9도쯤 되었을 것이다. 톨 롤러의 메인와프가 출렁출렁하는 게 예망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불안했다. 톱 롤러도 탱탱한 힘이 없었다. 뭔가 좀 이상했다. 그건 정상적 예망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배가 어구를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 약하다 보니 물속에서 전개판이 넘어져 버린 것이다. 트롤 어선에서 전개판이 넘어졌다는 것은 투망 실패다. 왜냐하면 그물이 좌우로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개판이 넘어진 상태로 예망이 되면 전개판이 어디엔가 걸려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양망을 하게 되었다. 투망한지 불과 5분도 안 되어서 말이다. 다행히 어구가 다친 곳은 없었다. 그리고 끝자루도 어획물이 없는지 훌쭉했다. 피시본드에 어획물을 붓고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처리실에서 맘보가 올라온다. 브리지에는 처리실 맘보를 들을 수 있는 앰프가 있었다.
“몽고 80개 되겠습니다!”
구렛나루를 기른 처리장 정인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엉?”
“3항사 한 번 내려가 봐”
3항사는 총알 같이 처리실로 뛰었다. 그리곤 돌아와서 하는 말이
“다른 건 암 것도 없고 몽고 뿐인디요”
3항사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우리는 제대로 방질을 한 게 아닌데 말이다. 그럼 그동안 우리의 어구가 해저에서 붕 떠서 다녔다는 말인가? 이번에 전개판이 넘어져 해저를 제대로 긁은 것인가?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우리가 몽고가 다니는 학교 하나를 제대로 쥐어박은 것인가?’
나는 다시 배를 몰아 투망 지점에서 투망을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전개판은 넘어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피치를 10도로 하여 정확하게 투망하고 코스를 제대로 탔었다. 그리고 양망하였는데 이번엔 몽고가 10개 밖에 되질 않았다. 그 때 선장이 올라왔다. 선장은 뭔가 요란한 브리지의 움직임을 알아차렸는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앞방에 몽고 80개 올라왔는데예”
“뭐 80개?”
“근데 이번엔 10개 맘보하네요”
“코스 잘못 탔냐? 코스를 제대로 탈 줄 알아야지”
“그게 아니라”
“아니면 뭐?”
“앞에 방엔 오타(전개판)가 넘어졌거든요”
“...”
“그게 80개 들었다구요”
“그럼 이번에도 오타 한 번 넘겨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찌 트롤어선에서 전개판을 일부러 넘어지게 해서 예망을 한단 말인가? 우린 그 후 그 코스에서 나름대로 최대한 코스를 정확하게 타 보았으나 몽고는 15개 이상 잡히질 않았다. 만약 전개판이 넘어져 몽고가 80개 들었다면 우리 어구는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코스를 잘 못 탔을 것이다. 전개판이 넘어진 그 방은 정말 재수 좋게 우리 그물이 몽고 학교 하나를 덮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았다.
우리의 몽고 어획이 따져 보면 남보다 그렇게 저조한 것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는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도미 조업에선 1,000톤짜리 오로라도 따라 오지 못할 정도로 어획성적이 좋았다. 몽고와 달리 도미 조업할 때 곽선장은 우리의 맘보 소리를 보이스 통신으로 다른 배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그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다른 사람들이 K808호를 탔을 때 그들 역시 도미 조업에서 성적이 좋고, 몽고 조업에는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