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게 부러울 때
<망상 클럽 8>
중학교 때 우암동에서 초량으로 26번, 34번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등굣길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당시 버스 엔진은 앞쪽, 운전석 바로 옆에 있었다. 둥글넓적한 금속 카버로 덮여있었고, 겨울엔 따뜻하여 위에 앉거나 가방을 놓아두곤 했다. 입추(立錐)의 여지도 없는 상황이라 가방은 그곳에 두고, 몸만 버스 뒤쪽으로 파고 들어갔다가 내릴 때 가방을 찾아가곤 했다.
가방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는데, 나도 한 번 있었다. 두 사람 간에 바뀌고 같은 학교라면 큰 문제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바뀐 사람이 다른 학교 학생이고 또 세 사람과 바뀌는 일도 있었는데, 난 꼬박 3일을 다른 학생 가방으로 학교를 다녔다. 난 서중학교 학생 가방을, 서중 학생은 동아중학교 학생 가방을, 동아중학교 학생은 내 가방을, 이렇게 삼각관계가 된 것인데, 하지만 결국 가방들은 큰 탈 없이 교환되었다.
남의 가방으로 등교하면서 문득 가방을 잃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들의 가방을 들고 다니는 학생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들에겐 평범한 일이지만 내겐 부러운 일로 보였던 것이다. 평범한 일이라도 자신이 궤도에서 이탈되었을 때 부럽거나 대단한 일로 보인다. 자신의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은 너무 평범해서 그게 ‘부러운’ 것인지를 몰랐던 것이다. 가방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평범했던 시간이 부러워지는 것이다.
생각은 오랜 습관 속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습관이 끊어졌을 때 생기는 것이다. 습관 속에 있으면 습관의 관성에 묻혀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