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어느 베르그송주의자의 회상-2>
결혼식
부모님 결혼사진, 오른쪽에 부조(扶助)로 들어온 물건이 보이는데 세워 놓은 걸로 봐서 거울로 추측된다. 탐정처럼 사진에서 단서를 포착한다. 거울을 기대어 놓은 벽면에 한 장짜리 달력이 보인다. ‘년력(年曆)’이라고도 하는데 한 장에 일 년 열두 달이 다 표시된 것이다. 당시 국회의원들이 찍어 가가호호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맨 위에 ‘신(辛)’이라는 글자가 보이고 옆에 ‘축(丑)’으로 여겨지는 글자가 보인다. ‘신축년(辛丑年)’에 결혼을 했다는 말이다.
내가 태어난 해가 1961년, 신축년이다. 그렇다면 사진의 어머니 뱃속에 이미 내가 잉태되어 있었다는 추측을 조심스레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부모님은 서로에게 타향이었던 부산에서 외로움에 지친 나머지 동거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격렬한 욕망들이 내겐 불씨 같은 사건이 된 것이다.
결혼식을 끝낸 아버진 처가에 2개월 이상을 머물렀다고 했는데, 하도 돌아갈 생각을 안 하니까 장모께서 걱정되어(사실은 딸 걱정), ‘집엔 안 가도 되냐?’고 해서 겨우 부산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피난 내려온 두 남자(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았던 ‘부산시 남구 우암동 189번’ 집엔 식사 도구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할아버진 사지 긁는(낡은 군복 바지 해체하여 실밥을 제거하는) 일 또는 군화 해체하는 일을 하셨고, 아버진 카메라 하나 매고 유엔묘지 등과 같은 공원에서 사진 찍는 일로 생계를 근근이 이어갔던 것이다. 난 그렇게 지독한 가난 속에서 태어났다.
내가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당신들도 역사의 어떤 상황에 던져진 게 아닌가 싶은 것 말이다. 물론 그런 상황이 ‘문득’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만들어내는 상황들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낯선 곳으로 던져 버리고 또 죽이는지를 나는 안다. 그것은 너무나 억울한 사건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시나브로 든다.
모두는 그렇게 던져진 존재들인가? 던져진 상황 속에서 더 내쳐지지 않으려는 작은 안간힘이 주어지고. 던져짐과 안간힘 중 어느 게 먼저랄 수 없이 연속 되는 게 삶인 것 같다. 그건 마치 파도의 운동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