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의 방향
<망상 클럽 15>
영화 ‘리틀 부다’ 초입부에 나오는 얘기. 양(羊)을 죽이려는데 당사자인 양은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웃는다. “곧 죽을 건데 무섭지 않냐?”고 물으니 양은 “이젠 곧 사람으로 태어날 거라”고 답한다.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측은해 하는데 그는 다음에 양으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대화 속엔 양보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묻어 있다. 우리가 보통 윤회와 해탈을 이야기할 때 중생으로 윤회하다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 단계에서 깨달음을 얻어 해탈을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생(衆生)’이란 ‘짐승’의 다른 이름이다. 즉 짐승보다는 인간이 더 높은 단계에 있고 그 단계에서 노력하면 해탈할 수도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윤회에서 해탈로 가는 방향성 말이다. 난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하는데, 해탈은 중생에서 인간으로 가는 방향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즉 인간에서 중생으로 가는 방향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말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온갖 번뇌를 일삼다가 중생 즉 짐승이 되고 드디어 죽어 물질이 되면 그게 해탈이라는 말이다.
더불어 해탈은 우연이나 수련보다는 무한한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존재는 무한의 시간 속에선 무조건 해탈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모두 물질(物質)이 된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큰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 시 한 편을 보자.
<초생/최희철>
아버지는 윤회를 하다 처음 사람으로 나는 것을 초생(初生)이라 하며, 초생은 몸 어딘가에 필시 큰 점이 있는데, 대체로 어리석거나 심지어 바보스럽다 했다. 내가 알고 있는 큰 점 있는 사람이 대체로 그런 것 같아 맞는 말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결혼하고 나서야 내 등에도 큰 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어느 날 초생에 관한 얘기를 내게서 들은 후 마누라가 놀라며 소리쳤다. “당신 등 뒤에도 큰 점이 있어요!” 순간 내가 드러내었던 모든 바보스러움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마누라가 위로랍시고 당신 점은 그리 크지는 않다 했을 때 눈곱처럼 일어나던 생각, 초생이 짐승에서 사람으로 넘어가는 입구가 아니라, 오히려 질기고, 복잡한 인연의 문턱을 넘어 윤회의 끄트머리로 가는 입구가 아닐까. 그건 그렇고 아버지는 왜 말해주지 않았을까. 당신도 초생이라서? 큰 점이 짙은 그늘이 되어 너무 무거울 거라 생각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