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쁨이란 발명되는 것
몸의 혁명-3
자신(주체)이 누군가를 예쁘다고 말 할 때 엄밀하게 말하면 그 ‘예쁨’은 자신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신에게 예쁜 것에 대한 ‘기억(기억된 이미지)’이 없었다면 어떤 대상을 예쁘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예쁨)의 기억이 먼저이고 (예쁜) 대상이 나중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동시적(同時的)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적이 아니라면 예쁜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아니 감각이 대상의 예쁨에 닿지 못한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시성은 어떤 면에서 예쁨을 ‘창조’하는 접점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예쁨이 발견되는 게 아니라 ‘발명’되는 것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예쁘게 본다는 것은 참 가슴 벅차고 뿌듯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미운 것’을 볼 때도 적용됩니다. 어떤 대상이 미워 보일 때 사실은 대상이 미운 게 아니라 자신의 기억 속에 ‘미운 털’이 이미 있었던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 털을 뽑아 내지 않는다면 대상이 밉게 보이는 것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예쁘게 보도록 자신의 기억을 잘 갈무리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