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존재 방식
<망상 클럽 17>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훌륭한 생각을 하거나 일을 하다가 죽는다. 위대한 삶과 죽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이것 역시 영원한 것은 아니다.
졸렬하게 죽는 사람은 어떨까? 뇌물 먹었다는 의심을 받다가 그걸 해명하느라 자신의 에너지를 많이 소진하는 사람 혹은 노름빚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등등.
우린 대체로 죽음에 대해 거창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가령 죽음 이후엔 감각이 없어지니 좋고 나쁜 게 없을 것이라는 둥, 죽음 이후엔 영원한 시간 혹은 공간 속에서 존재할 것이라는 둥.
하지만 삶과 죽음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죽음 역시 삶과 마찬가지로 다른 존재들의 안전성(가령 우주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었다고 해서 시공간적으로 어디론가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다. 죽음은 우리 일상 곁에 있다. 그게 더 무서운가? 우리 일상은 늘 죽음과 함께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그렇다면 그게 죽음 혹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것일까? 그래서 죽음이 무섭지 않다는 말인가? 나도 죽음이 두렵고 싫다. 다만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음의 존재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죽음의 존재방식과 드러나는 ‘상징계’는 다르니까.
귀신이 없다는 사람도 어스름한 밤에 공동묘지를 혼자 지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