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베르그송주의자의 회상-7>

야외용 라디오

by 최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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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베르그송주의자의 회상-7>



야외용 라디오


식구들과 야외에서. 당시 대한민국 두 번째였던 대도시 부산의 우리 집엔 외가 족속(아버지 표현에 의하면)들이 엄청 들끓었는데(?), 고등학교 다녔던 외삼촌들, 합판공장 다녔던 이모 등이 그들이다. 어머니보다 연배가 어린 분들 중 우리 집을 안 거쳐 간 경우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아마 일개 소대 병력쯤 되었을 것이다. 도시로 진출하려는 외가 친척들이 우리 집을 ‘베이스캠프’로 삼았던 것이다.


휴일이면 ‘야외용 라디오’와 사진기를 메고 놀러 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들끓었는데, 그 첫 번째가 UN묘지에서 만난 청년이었다. 아버지가 사진사로 활동하던 그곳에서 구두 닦던 사람이었는데 잘 곳이 변변치 않다는 소리를 듣고 그냥 데리고 오셨다. 약 3달 동안 우리 집에서 숙식하면서 그는 구두닦이, 우산 팔이 등을 했는데 나중에 어디선가 ‘옴’이 올라와서 모든 집안사람들이 고생하던 중 어쩔 수 없이 내 보냈다고 했다. 내가 중학생 때쯤에 그분을 조방 앞 육교 위에서 만났었는데 그곳에서 카메라를 메고 행인들에게 사진을 찍어 주는 사진사를 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수많은 어머니 집안사람은 우리 집을 거쳐 전국 각지로 흩어졌고, 아버지 아는 사람들도 황당한 이유를 대며 적게는 보름 길게는 3년 가까이 숙식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숫자조차 기억나지 않는 하숙생들까지 우리 집은 마치 게스트하우스 같았다.


그건 아버지의 성향 때문이기도 했다. 늘 외부인으로 들끓었던 상황을 아버지는 즐겁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우리 집만의 특별함이 아니라 당시 우암동 189번지에 살았던 사람들에겐 평범한 일상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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