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진짜 우리 동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곳은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행정 구역 상으로 피레네 오리엔탈 (Pyrénées-Orientales 66)에 속한 인구 만여 명이 살고 있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이다. 아무리 구글링 (Googling)을 해 봐도 몇 장의 아름다운 해변과 호텔들이 담긴 사진들 이외에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별로 없다. 위키피디아도 구글도 잘 모르는 이 마을을 놀랍게도 우리는 그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고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한다.
생 시프리앙(St-Cyprien)은 나와 남편 그러니까 우리 가족의 역사가 태어나고 현재도 진행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태어나고 14년 동안 살던 파리를 떠나 부모님과 이사 간 곳이고, 시부모님들의 정든 고향이며, 그를 어린 왕자 (Petit prince)를 대하 듯 세상의 누구보다도 어여삐 여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던, 그리고 지금도 그가 오매불망 보고 싶어 하는 (그는 자주 부모님보다 고양이들이 더 보고 싶다 말한다) 고양이들 - 덩키 (Donkey), 쉬피 (Chipie), 캐러멜 (Caramel), 김치 (Kimchi)가 살고 있는 곳이다. 생-시프리앙(St-Cyprien) 올드타운 한가운데 위치한 노란색 자그마한 2층 집에서 Papa VC가 태어나셨고, 그 건너편에 위치한 현재 Papa VC와 Maman TRS이 살고 계신 집은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 대를 이어 가꿔오시던 텃밭 위에 지여졌다. 여기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있는 시청 근처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옛집이 있다. 5년 전 나와 남편은 이 시청에서 처음 국제결혼을 주례하는 시장님의 특별한 배려로 선곡된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샹송이 아닌 팝송)를 배경 음악 삼아 결혼식을 올렸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집 대문을 나서서 1분 걸으면 나오는 오래된 로마네스크 형식의 성당에서 파파 VC가 세례를 받았다. 성당 옆으로 난 작은 도로를 걸어 올라가면 남편의 할아버지 &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 할머니가 잠드신 묘소도 있다. 우리 가족과 관련된 크고 작은 장소들이 모두 걸어서 불과 몇 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우리는 여행에서 하는 것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소소한 일상을 만든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 우리끼리의 익숙함이 주는 행복을 느낀다. Papa VC와 Maman TRS는 덩치가 크고 얼굴에 수염이 마구 난 남편이 아직도 프티 갸송 (Petit Garçon; 작은 소년)이라 부르고, 나와 남편을 통틀어 레 장팡 (les enfants; 아가들)이라 부른다. 우리는 실제 나이와는 상관없는 그런 타이틀로 불려도 조금의 부끄러움은커녕 오히려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어떤 것을 원해도 거부당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지는 넓은 마음과 포근함을 느낀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아침은 늘 한결같다. 시부모님들의 보살핌에 보은을 하듯 고양이들은 아침에 종종 밤 사냥에서 잡은 작은 쥐, 새, 도마뱀의 몸통을 가져다 놓고, 이를 보고 놀란 maman의 비명에 우리는 잠에서 깬다. 시부모님은 동네 단골 빵집에서 우리가 애정 하는 거대한 빵 오 쇼콜라 (난 얼굴이 크고, 정말이지 내 얼굴만 한 크기를 자랑한다)와, 남편이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루 프린스(Lu Prince) 초콜릿 비스킷을 준비하신다. 우리가 바게트에 버터를 바르고, 요구르트를 준비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고양이들은 자신의 몫도 있는지 어슬렁거리며 잽싸게 채어갈 준비를 한다. 아침을 시작하는 중에도 남편과 papa사이의 남자들의 수다는 그칠 줄 모른다. 수다쟁이 papa는 럭비, 테니스 이야기부터 우리가 없었던 사이 돌았던 동네 가십들까지 우리가 일본에 있으면서 통화할 때마다 모두 얘기해 주신것이 언제였냐는 듯 모두 다시 업데이트해 주신다. 수다가 너무 길어진다 싶으면, 나는 요가 매트를, 남편은 하막에서 읽은 책을 꺼내 들고 정원으로 향한다. 배꼽시계는 늘 정확해서, 배가 고파지는 12시면 우리는 점심을 먹고, 2시에서 4시는 씨에스타 (낮잠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책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정원 한쪽에 자리 잡은 papa의 텃밭에 물을 주러 가기도 한다.)를 즐긴다.
저녁이 되면 모기와 거미가 출현하는 이곳은 나에게 매우 무서운 곳이 되어 버린다. 작은 벌레의 출현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도망 다니는 나는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기꺼이 놀림감인 존재가 되어간다. 생-시프리앙(St-Cyprien)에서만 가능한 우리의 익숙한 일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바쁘고 재미를 느끼는 곳은 세상에서 이곳뿐일 거다. 일본에서의 바쁜 일과로 얻은 몸과 마음의 고단함을 우리는 이곳에서의 일상으로 치유하고 다시 일을 힘차게 시작할 때 쓸 에너지를 얻는다.
생-시프리앙(St-Cyprien) 은 언제나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에게 프랑스 남부의 태양같이 따뜻하고 지중해의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안겨 준 곳이다. 이곳에서 살게되면서, 남편은 드디어 L'Équipe (1903년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프랑스의 스포츠 일간지이다.)의 세계에 입성한다. 이 신문은 남편이 읽기 전부터 할아버지와 papa에 의해 읽혔고, 지금은 남편의 매일 아침을 함께하는,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우리 가족의 특별한 일상의 상징인 셈이다. 일본에서 살면서도 남편은 매일 아침 읽는 이 스포츠 신문을 통해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자주 만나지 못하는 papa와의 강력한 유대감을 느낀다.
남편은 이곳에 이사 오기 전에도 여름방학 때면 생-시프리앙(St-Cyprien)의 할아버지 댁을 찾았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기름때가 잔뜩 묻어있는 거무튀튀한 팬을 사용해 올리브유 반, 계란 반의 토티야와 설탕을 듬뿍 뿌린 토스트를 만들어 놓고 그를 기다리셨다. 할아버지와 럭비 게임을 보러 다니고, 할아버지가 키우시던 개, 클레오와 함께 놀던 추억을 얘기할 때마다 남편은 너무나 행복해 보이고, 그런 그의 눈빛에 반해 나는 그와 결혼을 결심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남편의 행복한 유년 시절 이야기는 완고하고 엄격한 집에서 자란 나의 마음을 덩달아 따뜻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 그의 할아버지는 생-시프리앙(St-Cyprien) 항구로 그를 데려가곤 하셨다. 커다란 배를 보여 주며 그가 가 보지 못했던 여러 다른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이는 후에 남편이 프랑스를 떠나 직장을 찾고 세계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는데 필요한 그의 호기심과 모험심의 원천이 되었다. 덕분에 어떤 일이든 시도해 보려 하고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마음과 여유가 있다.
남편은 이곳에서 받은 사랑을 이제 다른 이에게 나누어 준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액세서리도 곧잘 찾아내어 추천해 주고, 테니스를 좋아하는 papa의 60번째 생신을 축하해 주려 papa를 호주 오픈이 치러지는 멜버른으로 초대했다. 늘 남편을 보고 싶어 하는 maman을 위해서 귀찮다고 불평하면서도 일요일 저녁에는 꼭 전화를 하는 츤데레 매력이 있으며, 어설픈 한국말로 "엄마~보고 싶어~~!"하고 말하며 장모님에게 애교를 부리는 귀여운 첫째 사위이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번 여행을 한다. 고단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평소 관심사를 기준으로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를 정하고 여행을 떠난다. 그러면서 여행이 주는 설렘과 즐거움을 느끼며, 추억을 쌓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이렇게 우리가 아는 보통의 여행과는 다르게, 나에게는 내가 가고 싶어서 정한 것이 아닌, 운명처럼 나에 삶에 들어온, 그래서 나의 소중한 일상이 되어 버린 "삶의 여행지"가 몇 군데 있다. 바로 나와 내 가족이 태어나고, 한 때 머물렀었고, 현재 살고 있는 그런 곳들, 바로 우리 동네들이다.
생-시프리앙(St-Cyprien)에서 일구어내는 소소한 여행의 일상은 이 작은 마을이 나와 남편, 우리의 삶에 뿜어내는 강력한 힘이다. 우리의 마음을 블랙홀보다 더 강력하게 빨아들여 버리는 그런 곳임과 동시에 우리에게 타임머신이 가져다준 듯한 평화로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는 생-시프리앙(St-Cyprien)으로 떠난다. 이곳에 가면 남편의 하얀 머리카락이 조지 클루니의 그것보다 더 멋져 보이고, 고베에 있는 피노키오 피자집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피자집으로 유명해진 것처럼 이곳 생-시프리앙(St-Cyprien)도 작가 XX가 매년 여름을 보낸 곳으로 알려질 거라는 나의 근거 없고 오만 방자한 농담에도 그렇게 될 거라고 용기를 마구 불어넣어 주시는 papa & maman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