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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 소녀 하이디 Jul 06. 2019

집밥은 자석이다.

토요일 아침을 여는 맛있는 여유

어렸을 적부터 나는 늘 가족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고향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며 집에서 편하게 학교를 다니라는 아빠의 말에 나는 꾸역꾸역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고 서른이 되어 가던 무렵에는 다니던 회사에 계속 다니며 시집가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서울보다도 더 머나먼 스위스에 위치한 MBA school로 유학을 떠났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더 큰 꿈을 이루고자 떠난 다는 것이 내가 말하는 이유였지만 그 안에는 나를 집과 가족 안에 붙잡아 두려는 부모님에 대한 반항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나 아빠는 어렸을 때 나에게 꽤나 엄격했고 (항상 그러셨던 건 아니지만), 늘 첫째로서의 가족에 대한 희생과 의무감을 나에게 늘 말씀하셨다. 희생, 의무감, 책임감... 이런 단어들은 어렸던 나에게 큰 부담이었고, 커서도 나로 하여금 가족을 "짐"처럼 느끼게 하였다. 이 단어들이 주는 무게감이 나를 짓누를수록 용수철처럼 튕겨져 벗어나고 싶었고, 그렇게 나는 서울로 스위스로 가족들을 뒤로한 채 떠나 버렸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나에게 심리적으로 가족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해방감을 느끼게 해 줬다. 그곳에서는 나는 누구누구의 자식도, 누나도 언니도 아니었다. 가뜩이나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토요일까지 계속되는 강도 높은 수업 스케줄을 소화하고 학교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인간관계에 집중하느라 너무나도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고, 졸업 막바지에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해외 취업"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가족들과는 계속 소원하게 지냈다. 그런 나를 가족들은 독한 X이라고, 집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다고 원망했다. 사실 내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마냥 "독해서" 가족을 겉도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었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 집중하고 싶었고, 그러한 노력이 가족에 관심이 없다는 자세로서 폄하되는 것이 싫었다.


졸업 후 천신만고 끝에 스위스에 직장을 찾았고, 유머 감각 있는 보스와 성격 좋은 팀원들을 만나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정말이지 즐겁게 지냈다. 서울의 지옥철을 타고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언제나 제시간에 도착하고 내가 앉을자리가 있는 스위스 기차가 너무 좋았고, 지금의 남편이 된 남자 친구도 만났고, 조금씩이나마 저축도 시작하며 스위스에서 "자리 잡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의 빵도 치즈도 내 입에 척척 잘 맞았다. 한국에는 1년에 한 번 씩 방문하며 가족들에게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을 전하는 것이 다였다.


스위스에서 내가 즐겨 먹던 토요일 아침 집밥 메뉴 - 치즈를 잔뜩 올려 만든 오믈렛


그렇게 지내길 몇 년 정도... 유난히 조용하게 느껴졌던 그해 겨울밤, 나는 내 마음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허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는 찾지 않던 한국 음식도 먹고 싶어 져서, 나는 스위스에 온 지 정말이지 수년만에 로잔에 있는 유일한 한국 음식점을 찾았다. 매운맛이 그리워 시킨 김치찌개 냄새에서 나는 갑자기 엄마의 집밥을 떠올렸다. 추운 겨울날, 나는 느끼한 퐁듀 대신 새파란 풋고추와 두부를 듬뿍 넣은 엄마의 된장찌개를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일 때문에 음식을 하지 못한 날에는 우리 동네 곽부성 (놀라지 마라, 진짜 옛 우리 동네 중국집 이름이다.)의 탕수육과 짜장면의 나와 내 동생들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그날의 집밥이었지. 감자전, 삼겹살과 그 기름에 김치를 넣어 만드는 볶음밥.. 소고기를 넣은 미역국.. 아... 생각하면 할수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엄마의 집밥 메뉴 리스트가 내 머릿속을 마구 휘저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의 집밥 반찬 - 두부 두루치기


레스토랑에서 나오면서 나는 당시 두바이에 살고 있던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ㅇㅇ아~ 우리 이번 크리스마스 휴가 때, 한국 놀러 갈래? 치맥 먹으러 가자~~ 너도 좋아하잖아~~".

원래의 계획을 바꾸어 남자 친구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정말 쉬웠다. 가족과 자주 연락하지 않으며 지내는 나를 걱정하던 그에게 집밥이 먹고 싶어서 한국으로 여행 가자는 나의 말이 뚱딴지처럼 들렸을지도 모르나, 늘 그렇듯 그는 나의 갑작스러운 휴가 계획 변경에 찬성해 줬다.




한국에 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엄마, 밥 줘!"하고 거실에 들어 누웠다. 다녀왔다는 인사말도 없이  밥부터 달라는 것은 오랜만에 보는 딸이 너무나 반가운 엄마에게만 할 수 있는 나만의 무뚝뚝한 인사법이며 그 먼 곳에서 가족들을 이렇게 보러 왔으니 좀 봐달라는 나의 특권이었다. 엄마는 부엌으로 한달음에 달려가셔서 내가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하셨던 음식을 꺼내 오셨다. 내가 좋아하는 멸치 볶음, 오징어무침, 잡채.. 등등 스위스에서 좀처럼 찾기 어렵다지만 한국에서는 그리 특별하다 할 것도 없는 평범한 엄마표 메뉴들. ㅇㅇ은 이번이 나와 함께하는 3번째 우리 집 방문이었다. 그는 엄마가 갓 만들어낸 겉절이를 정말 좋아했다. 치맥은 물론이고, 탕수육과 보쌈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 배달음식을 모두 섭렵했다.


한국 여행 Day 1을 여는 1등 저녁 메뉴 - 삼겹살과 볶은 김치


ㅇㅇ이 우리 집에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엄마 집밥의 메뉴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그가 태어난 프랑스의 유명한 식재료인 치즈는 엄마가 아무리 요리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음식 재료다. 엄마는 (프랑스식) 집밥이 먹고 싶을 그를 위해 슈퍼마켓 표 노란색 치즈를 볶은 김치 위에 솔솔 뿌려 그의 앞에 내놓았다. "엄마~ 이 거 지인~~~~ 짜(진짜) 마 지소(ㅇㅇ만의 "맛있어"의 프랑스식 발음이다.), 김치즈 (kimcheese; ㅇㅇ만의 방식으로 작명한 메뉴 이름이다.)~~".


엄마 나름의 배려로 만들어진 한국식도 아닌 프랑스식도 아닌 엄마표 집 반찬에 ㅇㅇ은 너무 행복해했고, 내가 엄마만큼이나 맛있는 한국 음식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혼을 결심했노라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ㅇㅇ, 미안해, 나는 아직 그 정도 실력이 안 돼!). 엄마의 집밥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ㅇㅇ을 보며 나는 정말 행복했고, 엄마의 집밥과 이제 곧 가족이 될 ㅇㅇ까지 챙기는 엄마의 마음 씀씀이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내가 그토록 밀어내던 나의 가족을 계속 만나러 오게 하고, 생판 남이었던 초록색 눈의 ㅇㅇ을 새로운 우리 가족 멤버로 이끈 엄마의 집밥. 엄마의 집밥은 내가 가족으로 벗어나려 해도 다시금 나를 그 안으로 끌어당기는 자석과 같았다.


남편 ㅇㅇ을 위한 엄마표 아침밥 - 김치를 넣은 치즈 오믈렛과 고추장 소스를 올린 달걀&아보카도 오픈 샌드위


지금 생각해 보면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냉장고를 열어 엄마가 만들어 놓은 주전부리를 꺼내 먹곤 했다. 학교에서 아무리 안 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엄마가 만들어 놓은 맛있는 간식을 먹으면 금세 잊혔다. 일로 바빴던 엄마는 다른 것은 다 제쳐둬도 우리 가족이 먹을 "밥"은 꼭 챙겨 주셨다.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엄마는 어렸을 때 굶는 일이 많았다. 그것이 한이 된 엄마에게 "먹고사는 것"은 가장 큰 문제였고, 나와 내 동생들이 "먹는" 집밥을 만드는 것은 엄마의 이른 새벽을 여는 하루의 중요한 첫 일과였다. 집에서 걸어 15분 거리에서 일하시던 아빠는 점심 때면 종종 집으로 식사를 하러 들르셨고, 엄마는 귀찮다고 투덜거리시면서도 재빠르게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내셨다. 우리 가족의 평범한 하루를 평범하게 만들어준, 그래서 너무나도 평화로웠던 그 기억의 끝에는 우리를 항상 저녁상으로 모이게 한 엄마의 집밥이 있다.




올여름 나는 엄마를 모시고 생-시프리앙 (St - Cyprien)으로 간다. 엄마에게는 우리 결혼식 후 5년 만의 방문이다. 여름휴가 기간 중 ㅇㅇ 부모님 papa & maman은 꼭 하루를 정해 친척들을 초대하여 마당에서 바베큐 파티를 여신다. 엄마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번 바베큐 파티 때도 한국식 음식을 하나 내어 놓고 싶은데 뭘로 하면 좋을까라고. "엄마~  김치즈~ 만들어 주세요~~!!". 영특한 나의 남편 ㅇㅇ이 카카오톡으로 한마디 거든다.


엄마가 한국 밥집에 사용하기 시작한 프랑스 치즈와 소시지


우리는 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나무 아래에 테이블을 준비하고, papa의 텃밭에서 자란 토마토와 가지로 엄마가 만든 간장 양념을 곁들여 샐러드를 만들 것이다. 프랑스에 있는 나의 가족은 엄마 집밥 메뉴를 정말 사랑하며 한국에서 온 나의 가족은 프랑스식 소시지가 한국의 순대와 비슷하다며 한국에서 가져간 초고추장에 찍어 맛을 본다. 엄마의 한국식 집밥은 엄마로부터 레시피를 배운 maman의 손맛에 의해 프랑스식 집밥으로 다시 태어나고, 프랑스 대표 집밥 재료 치즈는 엄마가 만드는 샐러드에 듬뿍 담겨 세종시 우리 가족 밥상에 올려지리라. 한국의 집밥과 프랑스의 집밥은 묘하게 닮았고 그래서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긴다. 나와 나의 남편 ㅇㅇ, 우리 가족과 그의 가족, 이제는 한가족인 우리는 엄마들의 집밥으로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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