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분석] 나는 행복해져야 한다.

~웹툰 노력의 결과를 감상하며

by 차아거

노력.

노력을 통해 결과를 얻는다.

많은 노력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는다.


행복해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노력을 통해 남들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


얻는다. 아니 얻어야만 한다.



1. 노력.


노력의 결과.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었던 작품입니다. 일상/스릴러의 작품으로 간단하게 작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좋은 성적을 얻어야만 했던 재경. 재경은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점점 성적이 좋지 않았고, 더더욱 아버지에게 지독하게 훈계를 받았다. 재경은 자신을 더더욱 몰아세우게 되었으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 및 심리가 묘사되는 작품'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짧다.

연재 분량 총 31화로 짧고 굵게 가 아닌 그냥 짧았습니다. 굵게 가려던 순간에 이야기가 끝이 난다. 그렇기에 아쉽다고 생각을 할지 몰라도, 저는 연재 당시 이 웹툰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스릴러'의 의미를 잠깐이나마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작중에서 작은 사건이 하나가 일어나면 그 시작지점 혹은 반환점에서 해당 회차가 끝나서 당시 인물들이 '와 이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소름 돋는다. 과연 어떤 식으로 해결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스릴러의 '도망자'와 '추적자'의 이야기로 아슬아슬한 경계를 마치 선을 타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요.


어릴 적부터 공부만 바라보고 살아온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노는 것, 친구를 사귀는 법을 잘 모르는 아이가 등장인물입니다. 제가 말하는 '주인공은 항상 우상향 해야 한다'는 작품에서 주인공이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아닌 '친구를 사귀며, 노는 방법을 터득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최종적으로 '행복하다'라는 걸 느끼게 해 주는 것이죠.


하지만 이 작품의 장르는 일상/스릴러입니다. 그렇기에 앞의 내용을 보고 감상하려는 사람들에겐 사실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2. 결과.


웹툰 속 주인공 '재경'은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95점을 맞아서 아버지가 행복해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온전히 자기 탓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초등학생이 만점을 못 받아서 부모님이 이혼한 것이었다?'라고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만, 재경은 그 정도로 자신을 스스로 몰아세웠다는 걸 나타냅니다.


그렇기에 재경은 행복을 찾기 위한 1조건.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야 하며/ 2조건. 화목한 가정이 있어야 하고/ 3조건. 어머니가 돌아와서 화목한 가정이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점점 하락세로 빠지며 자신을 더더욱 몰아세우고 성적에 집착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가치관 따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성적을 잘 받아서 좋은 결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재경이의 효도이자 큰 목표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죠. 같은 또래의 학생들이 재밌게 노는 걸 보고 부러워하지만, 자신보다 공부를 덜하고 좋은 결과를 내는 학생을 질투하게 되며, 그 학생과 친구가 되었을 때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에 달성했다고 좋아하는 자신을 나무랍니다.


그렇게 재경은 내면의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 갈등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면의 자신은 곧 자신을 갉아먹는 존재이죠. (작중에서는 개미로 묘사가 된다. 이유는 올드보이의 오마쥬) 지속적으로 속삭입니다. 지독하게 말이죠.


때문에 '자신을 개미가 갉아먹는다'가 좋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3. 인간관계


작품의 사건들은 숨이 막힐 정도입니다. 마치 (좋지 않은) 극단적인 예시를 하나하나 주워 담아서 하나의 작품에 몰아세운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에게 행복이 다가오길 응원하게 됩니다.


처음에 아버지는 '전교 1등과 친하게 지내라'라고 재경에게 압박을 합니다.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며 공부법을 터득하고 실속만 챙긴 채로 재경이가 만점을 받고, 전교 1등이 목표였던 것입니다. 아버지에겐 재경의 친구란 그런 존재로 쓰이라고 말을 합니다.


재경은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몰라 쩔쩔맵니다. 그 과정에서 스릴러답게 아찔한 상황도 연출이 되죠. 그러던 중 의도치 않게 다른 친구를 하나 사귀게 됩니다.


처음에 다가온 존재는 자신에게 음흉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접근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거리를 벌리게 됩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재밌어서 노는 걸 보며, 재경은 안심하고 그 친구에게 어깨를 대줄 정도로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성적에 관련해서 처벌을 받으면, 유일하게 도망가서 쉴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전교 1등과도 친구 사이가 됩니다. 많은 과정이 존재하였지만, 끝내 마음을 털어놓고, 서로가 이해하게 되며 친구로 자리매김됩니다. 그리고 재경은 '개미'와 일방적인 소통을 뒤로한 채 '어째서인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라는 희망의 빛을 찾게 됩니다.


그렇기에, 개미는 점점 재경이 모르는 사이에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4. 지독한 노력과 암울한 결과 그 끝.


결말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있습니다.





재경은 끝내 행복해지지 못합니다. 행복했던 것도 정말 잠깐인 순간이었으며, 성적은 점점 하락세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재경은 스스로를 욕하고, 아버지는 재경이가 단순히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며 재경이를 몰아세우게 됩니다. 결국 재경은 자신이 얻지 못했던 행복을 누리지 못한걸 친구를 바라보며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친구들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남겨둔 안식처인 '어머니' 에게 찾아가게 됩니다.


재경이는 어릴 적 어머니가 유일한 안식처였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엄하게 키웠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어머니는 재경이에게 숨을 쉴 공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도 그럴게 어머니는 공부만 하던 재경이에게 '단둘이 있을 때는 어머니 말고 엄마라고 불러도 된단다'라고 말을 들었을 때는 재경이는 행복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이것이 단지 재경이의 시점인 것이 불과했다는 건 금방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를 잠깐 피해 6년 만에 본 어머니는 이미 6살이 된 아이가 있었고, 이는 곧 어릴 적 자신이 부족해서가 아닌 그저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에 재경은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에 부족한 지 새벽에 물 마시러 나온 재경은 양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에서 '낙태 예정이었던 아이'라는 말을 엿듣고 남아 있던 일말의 희망이 완벽하게 부서지게 됩니다.


친구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거리감을 보이며 회피를 하던 재경이.

마음의 안식처도, 믿고 의지 할 만한 친구는 이제 더는 없으며

마지막의 어머니조차도 무너진 재경에게 남아있는 것 이라고는 여태까지 했던 '노력의 결과'만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의 노력이 되었든 간에 결과는 아무에게도 좋은 쪽으로 제시해주지 않았습니다.




5. 끝마치며


작품에서 아버지는 빌런으로 묘사됩니다. 주인공을 몰아세우며 고통을 주고 압박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자신 교육의 문제가 아닌, 주인공의 노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결과.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말이 다 맞아.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교육하는 것이야. 다 내가 부족해서 그래.'라는 생각으로 점점 더 나쁜 쪽으로 일이 흘러갑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굉장히 지독한 모습으로 나오는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작중 내내 아버지는 그림자로 묘사가 되며 주인공을 압박합니다.

하지만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때의 아버지는 온화하고 착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독설을 할 때마다 재경이의 눈에서는 아버지가 다시금 그림자로 바뀝니다.

그래서 심리가 잘 묘사가 된다는 걸 알 수 있죠.


때문에 희망을 보고 걸어 나가는 주인공을 보려는 사람들에겐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암울하고 희망을 주었다가 뺏고 주인공이 행복해지지 않는 걸 원하는 분들에게는 추천을 해주고 싶습니다.


노력이라는 말은 꽤나 좋아합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노력이 부족했다'라고 포장을 할 수 있으니까요. 얼마나 편리합니까. 자신이 놀고, 뒹굴며 하지 않았다는 말을 단순히 '노력'이라는 말로 포장해서 말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잔인한 단어입니다.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자신이 얼마큼 무엇을 하며 어떻게 한지 말을 하지 않아도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 과정이 남을 밑으로 끌어내리고, 자신이 피를 보며, 겪지 않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까지 얻을 수 있는 결과를 좋은 말로 포장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꽤나 극단적인 작품이어서 극단적인 방향으로 한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보이는 것 같군요.


다시금 말하지만 작품의 분량이 짧습니다. 하지만 압축이 되었다고 느껴집니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것 같은데 끝난 느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안 좋은 작품이냐? 만약 제가 주인공이 희망을 보고 쟁취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안 좋은 작품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도저도 아닌 저는 딱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주인공은 단순히 행복해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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