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애니메이션과 경험으로 바라보는 필요악

by 차아거

'최선, 최악의 문제가 아닌 차선, 차악의 문제'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순간이 다가오길 마련이다. 하나의 진리이자 그 개념을 깨우치는 일.

크게 거창한 건 없다. 예를 들어 선한 사람을 선이라고 생각을 하였지만 뒤에서는 악행을 저지르며, 그 앞에서 선보였던 행위는 목적을 위한 선한 행동으로 위선이라는 개념을 깨달았을 때. 악한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며 행보를 나아갈 때 알고 보니 약한 자를 보호하며 강한 자만을 괴롭히는 다크 히어로. 정도가 있다.


다른 개념들도 넘치지만 오늘은 이 다크 히어로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 것이다.

주로 사회에 있다 보면 자주 접할 때가 있으며, 창작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클리셰이다.


하지만 다크 히어로라고 한들, 이 부분은 캐릭터에 대한 설명의 폭이 조금 넓어진다.

그래서 오늘은 다크 히어로에서 철학적인 부분을 가져와서 한번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필요악.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회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요구되는 악.

그리하여 이 필요악은 과연 살아가면서 정말 '필요한 악' 인 것인가 아니면 '쓸데없는 악'인 것일까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 보겠다.



1.좋은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

선행(善行). 사전에 의하면 '착하고 어진 행실'이라고 전해진다. '선행을 쌓으면 복이 온다'라는 말 정도 있으며, 이 사회가 선행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굉장히 크다. 반대되는 말에는 '악행'이 있으며 흔히들 생각하는 '나쁜 일' 정도로 받아들이면 쉽다.


선행으로 덕을 쌓아 좋은 결과를 얻는다. 우리가 흔히 사회에서 바라는 목적이다. 그리고 목적으로 사용되는 '좋은 결과'가 우리가 집중을 해야 하는 이 단락의 부분이다.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라는 작품이 하나 있다. 작중 주인공인 '히키가야 하치만'은 당시에 '남자 오타쿠'들의 심금을 울릴 캐릭터이며, 나쁘게 말하면 자기 자신에게 빗대어 '하치만 행동'을 선보이며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나 자기합리화의 성질'을 보였다.


캐릭터의 특징은 대충 이렇다.

'하치만은 친구가 적으며, 오해를 자주 사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상담이라는 수단을 통해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며, 그 과정 속에서 불편한 진실을 말할 때가 있고 자신은 미움을 사는 역할을 자처한다.' 이를 통해 이 인물은 '불편하지만 필요할 때 악이 필요한 법'라는 걸 자처하는 걸 볼 수 있다.


그가 행해지는 행동을 보면 필요악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작중에서의 인물들은 이러한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서 부정적이게 생각하며 '그러니까 마음에 안 들어'라는 식이다.


왜? 굳이?라는 생각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거 아니야? 한마디로 '자신의 세계에 몰입했다'라는 정도로 생각을 한다. 다른 말로는 이걸 안 순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되는 셈이다. 즉, 필요악의 존재에 대해서 '때론 악행을 통해 최선의 결과에 도달한다'가 필자가 생각하는 하치만이라는 인물의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필요악은 사회가 좋은 일로 순환하는 것에서 꼭 필요한 행동이겠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 필요악의 목적의 선행은 과연 사회에서 꼭 필요 한 것인가?


2. 극단적인 필요악

스토리를 설명하자면,

'주인공 야가미 라이토는 평화로운 일상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범죄에 대해 혐오를 느낀다. 어느 날 떨어진 데스노트라고 적힌 한 권의 노트를 우연히 줍게 된다. 그 노트는 이름만 쓰면 적힌 사람이 죽는 노트이며, 라이토는 노트를 사용해 범죄자들을 죽이기 시작하여 범죄가 없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악"을 지워내며 사람을 죽이게 된다.'


조금 주제에 엇나가지만 관련이 있기에, 설명을 들어가 보면

만화, 애니메이션 데스노트는 정확히 '정의란 무엇인가?'에 가까운 주제이다. 그 과정 속에서 야가미 라이토는 필요악을 자처하고 '자신이 정의다'라는 목적과 그것을 달성하는 수단이 있기 때문에 데스노트보다는 '야가미 라이토' 캐릭터에 집중을 해보겠다.


야가미 라이토, 처음 등장을 하였을 때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며 시시하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서지 않고 무시하며 자기 합리화를 통해 '이 세계는 썩었어'라고 생각을 한다.


야가미 라이토: 썩어빠진 녀석은 죽는 편이 나아, 이 세상은 썩었다고.

-만화 데스노트 1권 中-


처음 데스노트를 사용해 사람이 죽은 걸 보았을 때. 그는 당황이 앞섰지만 곧이어 호기심이 더더욱 가속됐다. 그리고 눈앞에서 노트를 사용해 사람이 죽는 걸 보았고, 곧바로 목적을 세우고 '신세계의 신이 되겠다'라고 목적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나는 살인자인 건가?'라는 악행에 대해 돌아보았지만, 곧바로 자신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살인에 대해서 개의치 않게 되었다.


야가미 라이토: 잠깐만, 만에 하나 진짜로 죽기라도 한다면, 난 살인범인가?

-만화 데스노트 1권 中-


야가미 라이토에게 있어서 '범죄가 없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었으며, 그 과정 속에서 악을 직접 처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악을 처리하면 새로운 악이 등장하지 않을 것이며, 그 순간부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필요악이다.

자신이 정의가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건 잘못된 행동이지만 주인공은 악행을 깨닫지 못한다. 주위에서는 악을 처리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욕하지만, 라이토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으며 오히려 어리석다고 평가를 한다.


야가미 라이토: 이건 내게 주어진 사명!

~

야가미 라이토: 말이 안 통하는 바보들 뿐이군...

-애니메이션 데스노트 37화 中-


극단적이라고 볼 수 있다. 확실히 결과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다.

이에 본인은 신세계의 신이 되겠다는 발언을 한다. 즉 자기합리화를 통한 필요악의 행동에 가깝다.


때문에 여기서는 그가 행한 행동이 과연 정의 인가? 아닌가? 그게 좋은 세상인가? 아니면 허울뿐인 좋은 세상인가? 선과 악의 경계가 애매해진다.


그렇기에 야가미 라이토의 캐릭터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좋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수단이다.'라는 결과가 나오며 이를 통해 필요악을 느낀다.



3. 필요악의 필요성.

라이토는 결국 최후를 맞이한다. 처음 그는 '범죄자만 죽이겠다'라는 필요악을 실행했으며, 곧이어 자신을 쫓는 범죄자와 연관이 없는 사람들도 죽이게 된다. 결국 세계는 두려움에 굴복하게 되었고, 이는 자기 독재를 위한 정당화된 거짓말이었다는 결말이 나온다. 라이토의 목적만 두고 보았을 때는 선이 분명했다. 허나 과정은 악행을 선행이라고 포장하여, 결국 순수한 악으로 변하는 법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필요악의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일상과 거리감이 느껴져 와닿지 않는 필요악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하나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자면, 건장한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꼭 거쳐야 하는 과정 중 하나인 '군대'에서도 이러한 행보를 보이는 존재가 있으며, 필자 또한 이걸 자의로 행했던 적이 있다. 즉 필요악이라는 점이다.


후임 관리를 해야 하는 필자와 동기 라인. 11월 군번이었던 필자는 동기 라인 중에 제일 막내였기 때문에 후임 관리를 맡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후임 애들이 말을 잘 들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만약 친절하고 잘 대해주면 만만하게 보거나, 긴장을 풀게 되어 큰 실수를 할지 모르며/ 나쁘고, 강압적이게 대해주면 그만큼 악감정이 쌓여 선임의 말을 오히려 더 안 따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당근과 채찍'이었다. 알려줄 땐 친절하게 알려주되, 작은 실수를 하게 된다면 엄청 깨지는 그런 당근과 채찍. 처음 후임이 들어왔을 땐 잘 먹혀들었다. 후임이 착해서 그런지 곧 말을 잘 들었고 잘 이행해서 크게 나무랄 건 없었기 때문에 좋았다.

(당근:칭찬, 격려/ 채찍: 구타, 가혹행위, 언어폭력을 제외한 다른 혼내는 방식 채택)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다음으로 들어온 후임이 극내향적인 성격에 일머리도 좋지 않아 인풋만 여러 번 해 줘야지 이해를 하는 그런 후임이었다. 처음에는 잘 대해주다가 나중 가서는 채찍의 비중이 많아졌다. '너 지금 이렇게 하면 안 돼', '나중 가서 니 동기들보다 못해지면 너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식으로 가스라이팅을 하였었다. 이게 나만의 채찍이었다.(다들 열심히 잘 하는데 열심히 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식)


그렇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후임 라인도 어느 정도 짬을 찼고 필자 역시 상꺾이 되었을때는 교육에 손을 뗐다. 그러고는 후임이나 동기들이 필자에게 전역 전까지 '그때는 그랬지~'라는 식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게 바로 '필요악'이었다.


행위를 거치며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되는 필요에 의한 악. 즉 교육을 맡는 '악'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었다. 좋게 말하면 부대에 적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교육.이라고 포장이 가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살살 긁으면서 내면의 반성을 증명하고 보여주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상꺾이 되기전에 후임 라인 막바지로 들어온 후임이 한 명 있었다. 필자는 '아직도 내가 교육을 해야 해?'라는 태도였지만 짬 좀 먹은 후임 라인 애들은 같은 동기가 들어온 것이었기 때문에 필자의 방식대로 교육에 필요성을 느끼긴 하였지만 같은 동기가 하기에는 좀 그렇다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기본적인 것들만 후임 라인이 가르쳤고, 이후에 행동에 실수가 있으면 그걸 교육하는 방식을 필자가 잡았었다.


하지만 교육의 성공이 줄을 이어서 '대충 이런 식으로 해도 알아듣겠지..'라는 강도 약한 행동과 소위 말하는 후임의 '폐급행동'에 도가 터진 청개구리 형태가 되어버려 필자의 동기 라인 애들과 마찰이 엄청 심했다. 그렇게 그 후임은 필자의 부대 내에서 제일 엇나가는 최고의 아웃풋이 되어버렸다.


그런 적이 있었다. 전역을 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악의를 품은 그 후임이 댓글을 달았었다. 한창 키배를 뜰 때 이런 댓글도 달았었는데, '전역하고 나서도 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x같다. 무슨 필요악이니 교육을 잘 했다니...' 좀 지난 일이지만 이런 식의 댓글을 달았던 것으로 기억나서 '내가 잘못하긴 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때문에 필요악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좋은 결과를 냈지만, 때로는 좋지 못한 결과를 냈었다. 이는 당시 상황, 환경, 그리고 해당 인물의 특징에 따라 과정은 비슷하지만 결과는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4. 필요악의 오류

일반화의 오류(적은 사례나 증거를 바탕으로 섣불리 판단하여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논리적 오류) 필자가 경험한 건 이 이론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 당시'어차피 애들한테 다 통한 것이니까, 마찬가지로 다른 애들한테 다 통하겠지?'라는 걸 느꼈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이 아닌 필요악에 대한 오류라 하면 바로 모순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내가 애들을 교육하면서 이건 나쁜 행동이라고 느꼈나?'


나는 후임들을 때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모 욕도 하지 않았다. 인격모독?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똑똑하지 않았다. 그저 '너가 그렇게 행동하면 간부들이 뭐라 하니까 그러지 마라'라는 것을 기반을 두고 하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왜? 상꺾이 되기전 마지막 후임은 엇나가게 된 것이었을까. 나를 혐오하며 마찬가지로 다른 동기들과도 마찰을 일으키게 된 것일까?


'내가 행한 건 과연 악행인가? 아니면 악행도 아니고 선행도 아닌 단순한 교육이었을까?'


타인이보면 '가해자 입장에서만 생각해서 피해자 입장은 잘 모르지'라고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다. 가혹하게 다루지 않았고 친근하게 접근했다는 점이라는 것을(...)이렇게 보면 이 또한 자기합리화에 해당되는 필요악일지도 모른다.


그런 적이 한번 있었다. 너무나도 엇나가서 도저히 걷잡을 수 없다는 후임이 신세한탄을 하며 필자에게 부탁을 했었다. 정서에 맞지 않은 행동을 했고 그건 집합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감이 도저히 안 잡히지만, 그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는 잘 알았기에 잘못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너가 잘못했으니까 니 동기도 같이 모인 거다'(연대책임을 통한 책임감 인지)라는 식이었다.


이 방식도 극단적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막무가내였고, 자기 라인이 곧 있으면 최고참라인이 되었기에 그런 식으로 행동을 했던 것 같다.


여기서 모순이란 게 느껴졌다.


'분명 필요로 했으며, 나는 그걸 이행했고, 잘못된 방식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이게 나았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저지른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차차 구슬리면서 더 나은 결과가 나왔을까? 그건 모른다. 이게 최선이었을지도, 아니면 이게 최악이었을지는 그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필요악을 행한 입장에서는 '과연 악행이 잘못되었는가? 결과만 좋으면 다 all right가 아닌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고, 잘못된 생각임을 나중에 알게되었다.


5. 과정, 결과의 중점

히키가야 하치만은 과정이 어떻든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행동을 한다.

야가미 라이토는 과정이 어떻든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행동을 한다.

이 둘의 차이점은 과정 속에서 그것이 잘못되었는가를 알고 모름의 차이이다.


하치만은 자신의 한 행동에 대해 결과를 받아들였다.

라이토는 자신의 한 행동에 대해 결과를 부정하였다.

이 둘의 차이점은 결과 속에서 그것이 잘 되었는지 혹은 잘못되었는지의 차이이다.


과정, 결과에서 그 값의 차이가 있을지 모른다. 한 명은 그저 학교생활에서, 다른 한 명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다르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

그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데스노트의 세계와 비슷하게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해도 좋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고 결과가 뭐가 되었든 간에 과정이 중요시되기 때문에 망가져도 되는가?

이것 또한 아니다. 100명을 살리기 위한 1명의 희생? 공리주의적 사상으로 도덕은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목적으로 한다.


6. 끝마치며

필요악은 꾸준히 논쟁되어오는 우리 사회의 철학 중 하나이다.

네덜란드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자유의지와 관련하여 필요악에 대해 비판하였다. 내용을 가볍게 이야기하자면, '인간이 의지로 악을 선택하게 된다면 그것은 도덕적 책임이 사라지며, 죄와 선행의 의미가 사라진다' 정도의 내용이 있다. '필요악'이 일상생활에 적용이 된다면 '이게 그 정도인가?'싶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쉽게 생각을 해보자면 필자는 인간이 편안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편안해지면 그것에 적응이 되어 편안함에서 못 벗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은 수험생의 기준이다. 수험이 끝나면 편하게 쉬어도 된다(...)


비슷하다. 필요악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익숙해지면 결과와 과정이 어떻든 간에 더 나은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쓸모없는 악행이 들어가진다.


이를 대변하는 것이 바로 데스노트이다.

라이토는 노트에 이름을 작성하며 살인에 대한 갈등을 하게 된다. 허나 노트의 장수, 제한이 없는 죽음에 점점 권력의 맛을 알게 되어 신경 쓰지 않게 된다.



필요악은 책임이 따라야 한다. 이게 지금 필자의 결론이다.

때문에 사회에 있어서 필요악은 필요한 악.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것을 행하고 오는 책임을 자신이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한에서다.



-래퍼런스

https://pratchettjob.wordpress.com/2014/12/12/i-fought-the-law-guards-guards/

https://en.wikipedia.org/wiki/Guards!_Guards!

https://www.epicureancure.com/24/terry-pratchett-guards-guards

(필요악 참고자료)

https://pietistschoolman.com/2013/10/28/erasmus-the-christian-scholars-scholar/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44753915_Sex_Differences_in_Parasocial_Connection_to_Favorite_Anime_Characters_A_Multifactor_Approach

https://ko.wikipedia.org/wiki/%EB%8D%B0%EC%8B%9C%EB%8D%B0%EB%A6%AC%EC%9C%84%EC%8A%A4_%EC%97%90%EB%9D%BC%EC%8A%A4%EB%AE%88%EC%8A%A4

https://ko.wikipedia.org/wiki/%EC%9E%90%EC%9C%A0%EC%9D%98%EC%A7%80

https://plato.stanford.edu/archives/sum2017/entries/erasmus/

https://ctsfw.net/media/pdfs/preuslutheranderasmus.pdf?

(에라스뮈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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