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차향저격

오늘의 하소연 (1)

우화, 살구빛 솜털

by 차잇점

최근에 차(茶)의 전래와 예절을 담고 있는 '다경'을 읽기 시작했다. 현대 기준에 맞춰 재해석한 차의 백과서이기도 한데 아직은 좀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내가 회사만 가면 육질을 끙끙 앓는 인간이라는 건 잘 알겠어.


* 육질 : 열이 나고 갈증이 나며 답답하고 번민하며 머리가 아프고 눈이 침침하고 팔다리가 움직이기 귀찮고 모든 뼈마디가 아픈 여섯 가지 질병을 의미한다. (육우, 다경 中에서)


천성이 조직 생활을 어려워하고, '왜?'라는 질문을 항시 달고 살아서 유하게 넘어가는 법을 잘 모른다. 이러다 방어 기질만 점점 더 강해지고, 고집 불통의 예민한 어른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그래서 차를 마신다. 어제 좋고 오늘 구리고 내일 모르는 감정을 다스리고 싶을 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이로운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담 환경을 바꾸면 되잖아? 그래 맞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뭐가 아니냐고? 시기상 아닌 거다. 나만 아는 무언의 고집이기도 한데 몇 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너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 해라. 그리고 조금 더 여유로울 때 마음껏 경험하고, 배워라.'라고 말할 것 같아서 적절히 스테이하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우화 살구빛 솜털 차


이날은 우화 브랜드의 살구빛 솜털 차를 마셨다. 이름처럼 살구가 들어간 건 아닌데 쥬시쿨처럼 자두향? 살구향?을 차로 우린 느낌이 났다. 유자, 맨드라미 꽃, 레몬밤이 들어간 블렌딩 차인데, 레몬밤이 들어간 대부분의 차를 마시면 이상하리 만큼 마음이 편안해진다. 수색도 어여쁘고 패키지가 종이 재질이라 봉투를 뜯는 질감이 좋다고 느낀 나는 변태인가 싶네.


고영인 작가 다관, 숙우 (디켄터) / 이예원 작가 청자 찻잔


다경에서 본 바, 차의 성질은 지극히 차갑다. (차나무에서 재배된 6대 다류를 의미한다.) 차를 마시기 가장 알맞은 사람은 행실이 올바르고 검소한 덕망을 갖춘 사람이라 표현된다. 어쩌면 차를 마시는 행위 그 자체가 행실이 올바르고, 검소한 덕망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예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유연하고, 무던해졌으면 좋겠다. 사회가 만든 새카만 얼룩에 물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만의 순수함과 본질이 오히려 확장됐음 좋겠다. 타인의 의도가 눈에 뻔히 보이더라도 상처 주는 뾰족한 말은 아끼고 싶다. 좋은 어른의 표본이자, 행실이 올바르고 검소한 덕망을 갖춘 온화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차를 마셔야겠다. 분주한 마음을 다스림과 동시에 시선을 분산시킬 유일한 매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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