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익차, 대익홍 23’
살면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마음의 병. 나는 그것을 애써 우울과 번아웃이라고 칭하기보단 지독한 감기라 부르고 싶다. 예를 들어 거센 비바람이 불고 소나기가 내리던 날, A와 B는 우산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버스 정류장까지 10분 동안 달렸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다음날 A는 감기에 걸렸고, B는 그 어떤 타격조차 받지 않았다. 여기에서 문제! 감기에 걸린 A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드는가?
전혀 아니다. 그저 몸의 면역력이 약해 감기에 걸렸을 뿐. 밥도, 약도 잘 챙겨 먹고 며칠밤 푹 자고 일어나면 다시 괜찮아지는 것처럼 마음의 감기도 내 안에 내재된 어딘가의 면역력이 약해졌다는 신호라는 거. 단지 회복의 기한이 다를 뿐이지,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니 너무 괘념치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실은 괘념치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내가 두어 번의 감기가 걸리고 나서 깨달은 마음이다. 지난 스물아홉 그리고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다. 이 지독한 감기가 내 마음속, 가장 타격감 좋은 놈에게 안착되었고 바이러스처럼 스멀스멀 번져 갔다. 나는 내가 어느 정도 내공이 쌓여 단단해진 상태인 줄 알았는데 아니, 그냥 곪고 있었다. 뿌리부터 진즉 뽑았어야 했는데 대충 빨간약 바르고, 귀여운 반창고 붙이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
두 번의 원인은 모두 같았다. 나를 한없이 약해지게 만드는 말이자, 노력으로도 바꿀 수 없는 형태였다는 거.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닌, 생각의 구조가 달랐을 뿐인데 칼보다 더 날카로운 말을 들었을 때, 그 비수가 얼마나 뾰족해서 깊게 박히던지. 처음부터 단념하거나,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었더라면 냉철했어야 했다.
이후, 두어 달은 얼굴에 표가 안 났을 뿐, 내내 마음의 병을 앓고 지냈다.
나는 감정 없는 로봇처럼 살아가는데,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 진짜 회복력 좋다.'
'역시 멘탈갑!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네.'
.. 겠냐 이것들아.
부정할 수 없는 건 타인이 보기엔 썩 괜찮아 보일 만도 하다. 어디 하나 표가 나야 하는데 나질 않았으니까.
화가 나면 미간부터 찌푸리고 보는 인간이라 날이 선 마음은 저 멀리서 봐도 티가 나지만, 곧 죽어도 힘든 티는 못 내겠다. 정말 슬픈 건 나 스스로에게 조차 그 마음을 숨긴다는 거. 어차피 지나갈 일이라고 애써 위로하며 꿋꿋하게 버텨왔다. 하지만 그런 나도 무너지는 날이 있지.
'야 그래서 곪은 거야. 너는 너인데, 왜 굳이 스스로에게 숨기는 거야. 힘들다고 무너질까봐 그래?'
'응 무너질까봐 그래.'
나만의 독백 대사 속엔 스스로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나를 위한 일이지만 실은, 나를 위한 게 아닌 뭐 그런 거. 이 마음을 깨닫고 나니 괜스레 더 아려왔다. 낯선 감정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나만의 동굴 속에 숨어 지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바깥으로 끄집어 내준 건 다름 아닌 차(茶)였다.
집에 다구를 들인 뒤로, 주말마다 꼭 차를 우려 마셨다. 그 빈도수는 한 번에서 두 번 그리고 주중까지 이어져 세 번으로 이후엔 원하는 만큼 늘기도, 줄기도 한다.
조금은 수고스럽더라도 간편한 티팟보다 개완이나 자사호를 꺼내 원하는 차를 고르고 향을 음미하고 수색을 관찰하고 온전히 맛을 느낀다. 다른 곳에 눈돌릴 틈 없이 온전히 차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속에 묵혀있던 잡념까지 게워낸다.
단순 차를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차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삶에 연결 짓다 보니 몰랐던 내가 보인다. 그래서 차는 나에게 은인 같은 존재이다. 이토록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음과 동시에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니까.
그래서 다짐하게 됐다. 이 풍요로움을 오롯이 나만 알고 싶지 않아서, 함께 공유해야겠다고.
아마도 난 100% 괜찮은 마음이 앞으로도, 당분간도 없을 것이다. 80%만 괜찮아도 좋은 삶 같아서. 그 나머지 20%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약간의 여지라고 하자.
하고 많은 것 중에 이날은 묵직한 보이 숙차가 떠올랐다. 중후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할 보이차에 진정 꿀을 넣었나 싶을 만큼 단향을 머금고 있었으니, 분명 괜찮지 않은 날에 마셨는데 어라 싶었던 것이다.
하물며 차도 이런 반전의 맛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인 낸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