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의 예민함으로부터.

by 차잇점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해당 일정으로 어레인지 하겠습니다.

현재 상황 공유드립니다.


나의 하루는 감정이 소거된 텍스트로 시작해 오직 상대의 편의와 효율을 위해 친절한 듯 정제된 언어로 마무리된다. 때문에 이 문장들은 단순한 업무 수단을 넘어 어느덧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고정된 레퍼토리가 되었다.


누군가의 시간을 촘촘히 설계하고, 돌발 변수를 통제하며, 타인의 무대 뒤편에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일. A부터 Z까지 경계 없는 업무 범위를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나의 시간엔 퇴근 버튼이 없다. 메시지 알림음은 24시간 멈추지 않고, 상시 대기라는 명목하에 신경은 늘 뾰족하게 곤두서 있어 몸의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예민한 직장인이 되어 가는 중이다.




직무 특성상 당연한 일이라며 방치해 두었던 마음의 부채들이 하나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밀린 숙제처럼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아 당장 해결할 수도 없으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때론 부정에 가까운 에너지가 소중한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내재된 열이 머리 꼭대기로 향하니 가만히 있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은 이유 없이 욱신거렸다. 타인의 일정은 분 단위로 체크하면서 정작 내 몸과 마음의 온도가 몇 도인지, 어디에서 체했는지를 살피지 못한 것이다.


별 수 없었다. 더 나은 성과는 더 나은 책임감으로 이어졌고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숙명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배적인 환경 속에서 나의 사고를 달리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을 테니 이제는 변주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명함 너머의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비우고 채워야 할 것인지 알아야만 할 것 같다. 직장 안에서의 내가 아니라 그 이면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내가 궁금하다. 단순 열심을 다한 마음 외에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들을 곁에 두면 자연스레 나도 달라질 것 같았다. 삶의 루틴 즉, 하루하루 나의 몸과 내면의 자원을 마치 재테크 종목처럼 세밀하게 살펴야 일도, 삶도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쯤이면, 일에서 발생된 예민함은 나와 별개의 문제여야만 한다.




나를 위한 감정 재배치가 너무나도 필요한 시점, 스스로에게 정의한 감정 재테크는 아래와 같다.


첫째. 마음의 지수가 바닥을 치더라도 당황해서 손절하지 않는 것.


현재의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비로소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다. 부족하면 채우고, 넘치면 기다리는 연습.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만이 반등의 시작임을 자각하자. 내가 지금 고민하는 형태, 예민의 모양, 벌어지는 모든 변수를 구석에 방치하기보다 세밀하게 기록하며, 개선하는 데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둘째. 감정의 변동성이 커질 때 나만의 감정 안전 자산을 확보할 것.


아마도 해당 에세이를 기록하며, 가장 중점이 될 항목이다. 업무 과부하로 마음이 요동칠 때 부화뇌동하지 않으려면 나만의 루틴과 기준이 꼭 필요하다. 내가 무색무취형이라면 앞으로 채울 가능성에 집중하고, 취향 확고형이라면 그 취향을 생산적으로 활용해 볼 것.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나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시선을 분산시킨 순간, 감정의 리스크는 조금씩 관리될 테니까.


셋째, 타인에게 쏟아붓던 에너지를 회수해 나만의 우량주에 재투자할 것.


타인의 일정을 설계하느라 소진했던 에너지를 이제는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돌려주려 한다. 독립심이 강해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았던 나조차도, 결국 좋은 관계가 삶을 지탱하는 강력한 포트폴리오가 됨을 서서히 느끼고 있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 베푼 마음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를 구원할 배당금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인과응보(因果報應) 결국 내가 행한 만큼 되돌아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이 기록은 나에게 먼저 전하는 메시지이며, 누군가의 아주 작은 위로이길 바란다. 이로운 습관들을 꾸준히 적립해 나간다면 내 삶의 그래프도 결국 우상향 곡선을 그리게 될 것이라 믿으니까. 매일 하루 한 잔, 따뜻한 차를 마시며 감정을 다스릴 이 시간이 나의 가장 가치 있는 투자가 되길 기대하며.



지금, 당신의 감정 포트폴리오는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