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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Dec 17. 2021

딴짓하며 나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팀장님에 관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극명한 온도차

*** 술 마시며 쓴 글입니다. 


판사들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그렇게까지 해서 고등법원 부장판사 까지 승진해야겠냐는 질문에

 

당연하지, 고등법원 부장판사면 차관급이잖아.
차관급이면 기사가 딸린 차가 나온다고.
동창회에 갈 때 자기가 스스로 운전해서 가느냐,
기사가 운전해 주는 차를 운전해서 가느냐 하는 것은 천지차이란 말이다.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용은 대강 저랬다. 


기사딸린 자동차라...


평범한 회사원인 나는 언감생심 기사딸린 차는 바라지도 못한다. 그 정도로 승진할 자신도 없고, 그렇게 아등바등 하고 싶지도 않다. 아니면 그정도로 승진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기사딸린 차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일개미로서의 로망이 있다면 “방”이다.. 문에 내 이름이 쓰여있고, 노크를 해야 나를 알현할 수 있는 나만의 방 말이다. 물론 이 것도 이루기 쉽지 않은 꿈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기사딸린 자동차보다는 훨씬 더 현실성 있는 꿈이다. 


사실 우리 회사처럼 보수적인 곳의 경우에, 자리 배치라는건 인도의 카스트제도 만큼이나 견고하다. 높은 신분일수록 넓고 독립된 공간을 쓰고, 신분이 낮을 수록 오픈된 공간을 사용한다. 신분이 높은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판옵티콘처럼 모든 이들의 모니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최하위 신분의 불가촉 천민들은 혐오시설, 예를 들어 공용 프린터 옆에서 토너 먼지를 마시며 고생하기도 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 팀장급 부터 독방을 쓰는데, 그래서인지 팀장님이 하루 종일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팀장이 맡은 바 일을 잘 하면 상관이 없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그러니까 일을 지지리도 못하는 팀장의 경우는 상관이 매우 있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저 인간은 어떻게 팀장이 되었지, 고스톱 쳐서 팀장땄나?" 하는 생각이 드는 티장의 경우, 저 안에서 하루 종일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심히 궁금해 진다는 말이다. 좀 더 까놓고 말해서 저 방 안에서 문닫고 하루종일 노는거 아냐? 주식투자 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실제로 옆 팀의 팀장님은 업무시간에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와서 걸렸네, 다른 팀장은 밤새 술마시고 업무시간에 문 잠그고 자네 하는 흉흉한 소문도 들린다. 


나는 사생활이 즈언혀 보장되지 않는 책상에서 -회사 모니터에 사생활이라는 것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 영치기 영차 일을 하고 있는데, 저 방안에서 주식투자를 하는 인간이 팀장이라면 부아가 치민다. 족히 너댓번은 보고한 내용을 매번 처음 듣는 표정으로 물어보거나, 팀원들의 업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윗선에서 우리팀 프로젝트가 궁금해 하면 그제서야 부랴부랴 파악하려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 더더더 부아가 치민다. 일 열심히 하라고 독방까지 마련해 줬는데, 하라는 일은 안하고 그 방에서 대관절 무슨 짓을 하는것이냐. 


부이가 치미는 근원적인 이유는 저 인간이 나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팀장이라면 미안해서라도 저렇게 놀지는 못할텐데, 저만큼 월급을 받았다면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해야할 텐데 말이다. 아니다. 월급 받은 만치 일하기를 원하는 것도 사치다. 저 인간이 받는 월급의 반의 반만이라도 좀 일을 했으면 좋을텐데. 


어쩌면 그가 받는 월급은 일한 댓가가 아니라 '책임'의 댓가일 지도 모른다고 정신승리를 하려 노력한 적이 있었다. '팀장님이 비록 지금 일은 안하고, 저 안에서 턱을 괴고 유튜브를 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팀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팀장님이 책임을 질거야. 월급은 그 책임의 무게에 대한 댓가야.'라며 말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겪은일은 절대 아니지만 만약에 말이다. 진짜 문제가 터졌을 때, 팀장님이 말단 계약직 사원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손터는 모습을 본다면 그간 해 왔던 정신승리를 위한 노력도 전부 물거품이 된다. 


나는 오늘 이 부조리한 사실에 대해 엄마에게 하소연하였다. 하는 일이라고는 방 안에서 결재 버튼 클릭하는 것 밖에 없는 팀장이라는 저 인간이 나의 배는 되는 연봉을 받는다. 이 얼마나 부당한 세상이냐!


그런데 엄마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 사람도 젋었을 때에는 열심히 했겠지.
젊었을 때 열심히 한 댓가로
지금은 편하게 일하며 높은 연봉을 받는거야. 

아아! 나는 오늘 깨달음을 얻었다. 


나와 으르신들은 월급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월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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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 "지금" 하고 노동에 대한 댓가
으르신들 생각 : "젊은 날" 회사에 충성했던 댓가


그래서였구나, 그래서였어. 

그들이 하루종일 아이돌 동영상을 보거나, 자녀의 입시 정보를 찾아보거나, 주식방을 정독하고,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일을 안하면서 월급을 축내는 그들이 당당한 이유를 드디어 알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월급"의 정의에 따르면, 그들은 충분히 정당하게 월급을 받고 있는 거였다. 


역시 나는 세상의 이치를 더 배워야 한다. 


나는 오늘 엄마와의 대화에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으하하하



*** 다시 말하지만 술 마시며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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