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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May 19. 2020

소소한 갑질도 충분히 아프다

큰 갑질만 갑질인가요?

1.

지금은 금요일 저녁 7시 56분. 나는 지금 “노트북을 가지고” 퇴근하는 중이다. 이번 주말에는 부디 이 노트북을 켜는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갑을병정에서 딱 “병”의 위치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2.

일주일이면 끝날 것이라고 해서 억지로 떠맡은 일이 모차렐라 치즈처럼 주욱주욱 늘어지더니 기어이 두 달을 넘기고야 말았다.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추가로 맡은 것인지라 버겁기는 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일주일에 두세 시간 정도 야근을 하고, 주말에 한두 시간 정도 업무를 보는 정도이다. 새벽까지 일을 한 것은 두 달 동안 딱 한 번뿐이었다. 사실 육체적으로는 그다지 힘들지 않다.


오히려 나는
“정신적으로” 괴롭다.


3.

내가 지금 당하는 이것들은 분명 갑질이다, 갑질은 분명한데! 갑질이라기에는 다소 시시한 갑질인 것이 문제다.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해 봤자

“너희 회사 정도면 꽤 괜찮은 편이다”

“우리 회사는 더 하다”

“그런 것도 못 참으면  회사생활 어떻게 하냐”


라며 철없는 취급당할 것만 같은 작은 사이즈의 갑질이다. 사실 맞다. 뉴스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갑질은 아니다.


갑한테 험한 욕설과 음담패설을 들은 것도 아니고

진상 고객 앞에 무릎을 꿇은 것도 아니며

무리한 일정을 맞추느라 야근을 밥먹듯이 한 것도 아니다.


4.

그렇지만 작은 갑질도 내가 당하면 충분히 아프다. 소소한 갑질은 댓돌을 뚫는 낙숫물 같아서 반복되면 사람의 정신을 기어코 파괴하고야 만다.


구태의연한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갑: (금요일 오후 3시에 업무를 던져 주며) 월요일 오전까지 완료해 주세요~ ^^


저 꼴 보기 싫은 물결(~) 표시와 눈웃음(^^)에서는 일말의 미안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이지 이 문장은 주말에 일하라는 말을 세련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5.

아아! 양아치다. 양아치가 분명하다. 나의 성스러운 주말을 망치려는 양아치의, 양아치스러운 행동이다.


나의 주말은 “단일 식물” 같다(단일 식물은 밤이 길어야 꽃을 피울 수 있는 식물을 말한다.) 한밤중에 잠깐 동안이라도 빛이 들어오면, 단일 식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


나의 주말도 그렇다.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탄 음료를 좋아하는 꼰대들은 주말 48시간 중 한두 시간 일하는 것이 뭐가 그리 큰 일이냐며 혀를 찰지 모르나, 모름지기 주말이란 온전히 48시간일 때 의미가 있다. 찰나의 빛에 꽃 피우지 못하는 단일 식물처럼 회사일에 침범당한 나의 주말은 몇 주째 꽃 피우지 못하였다.


6.

이게 다 “좋은 것 is 좋은 것” 즉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순환 논법의 오류에 빠진 으-르신들 때문이다. 으-르신들은 “갑”의 버르장머리를 망쳐 놓았다. 버르장머리 없는 “갑”이 계약 기간이 한참 지나서, 심지어 계약서에도 없는 일을 요구했을 때 들어주지 말았어야 했다. 서비스로 “군만두”대신에 “탕수육”을 달라는 진상고객의 부탁은 애당초 무시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고, 그 권리를 계속 행사하는 것은 곧 관행이 된다. 꽌시는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 회사와 갑 사이에는 언제라도, 어떤 부탁도 들어주는 ‘K-꽌시’가 탄생하였다.


7.

문제는 으-르신들이 아니라 바로 “내”가 저 지랄맞은 갑의 땡깡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갑”과 으-르신들은 이 땡깡이 갑질인 줄 모른다. 계약서에 없던 일을, 계약 기간이 한참 지난 후에 요구하면서도


길어야 반나절 걸리는 일인데
“당연히” 해 주셔야죠.


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 반나절짜리 일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2달 내내 반나절짜리 일이 계속된다면 말이 달라진다. 큰 실탄이 아니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BB탄 총알도 두 달 내내 맞으니 BB탄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묻는다면, 소소한 갑질도 충분히 서럽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야근 몇 시간이 뭐 그리 대수냐고 묻는다면 매우 대수라는 말이다.

그 정도는 웃고 지나칠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부디 “원래” 회사생활이 그런 거라며 적응하라고 하지 말자. 대단한 갑질이 아니라도 갑질은 갑질이니까. 그 정도는 누구나 겪는다며 내 고통을 폄훼하지도 말자. 모름지기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한 법이다. 게다가 염병 걸린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내 고뿔을 치료해 주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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