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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Dec 12. 2019

(월급 말고) 회사가 나에게 주는 것

물론 돈이 제일 크지.


아침에 “평범하게” 눈을 떴다. 그리고 “평범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출근하기 싫다.


다른 사람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회사에 가고 싶었던 날이  하루도 없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금방 체념하고 가는 날이 있고, 너무 가기 싫어서 “휴가 쓸까?”하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다. 어느 날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쉬고 싶은데, 일이 밀려 있어 꾸역꾸역 출근하는 날도 있다. 이런 날은 속으로 아담과 이브에게 욕지거리를 하면서 출근 준비를 한다. 왜 선악과를 따먹고 지랄이야. 덕분이 후손들이 노동의 고통을 받게 되었잖아.


아무튼. 이렇게 가기 싫은 회사를  가냐고 물으신다면 입 아프게 말해 무엇하느냐 돈 때문이다 . 돈을 벌어야 깨끗한 화장실에서 똥을 쌀 수 있고, 돈을 모아야 (집)주인님께 상납금을 드릴 수 있다. 그런 고로 나는 오늘도 일터로 나가서 영치기영차 일을 한다.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열심히 일을 하네 (뚠뚠)  


그렇다 해도 오직 '돈만을 위해!' 회사를 가자니 괴롭다. 돈을 위해 일주일에 5일을 보내는 인생이 너무 서글프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다.


그래서 월급 말고 회사가 어떤 장점이 있는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물론 회사가 주는 장점의 99.99%는 돈(월급)이지만, 나머지 0.01%의 장점도 분명히 존재하니까 말이다. 한 마디로 정신승리라도 해야겠다는 말씀.


*물론, 좋아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라면!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분이라면!
정신승리가 필요 없겠지요.
저는 재미없고 보람도 그다지 없는 일을 하고 있어서요 엉엉


정신승리1 

회사를 “생활관리 트레이너” 혹은 “스터디 모임”이라고 생각해 본다.


백수였을 나는 새벽에 자서 점심에 일어났다. 매일 밤 불닭볶음면이나 꾸이맨 같은 야식을 먹었고 가끔은 술을 진탕 마셨다. 밤은 깊었지만 유튜브 인공지능이 추천해주는 대로 유튜브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금방 새벽이 되었다. 정신적으로는 이때가 진짜 행복했다. 인생  있어, ~ 이곳이 천국이지 하면서 매일 밤 행복하게 잠들었다.


문제는 건강이었다. 소화가 잘 안되기 시작했고, 뭘 먹기만 하면 위가 아팠으며 항상 몸이 뻐근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제때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생활 습관도 “관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한 번 흐트러진 생활 패턴은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마음을 다잡고 고친다고 해도 이내 방탕한 습관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회사가 이 모든 것을 한방에 해결해 주었다. 해 뜨면 일어나서 해지면 자는 생활, 최소한 점심은 제시간에 챙겨 먹는 생활이 나를 (그나마) 건강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 기사를 보았는데 취준생들이 “기상 인증” 스터디라는 것을 한다고 한다. 스터디하는 사람들끼리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났소”하는 것을 사진 찍어 인증하고, 늦게 일어나면 벌금을 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생활관리 트레이너 또는 기상 인증을 해야 하는 스터디 모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내가 프리랜서였다면, 의지가 박약한 나는 결국 “모닝콜 알바”와 “식단관리 알바” 라도 고용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와아....공짜 트레이너다아.... 벌금 없는 스터디다....’





정신승리2 

회사를 ”멘탈 헬스장”이라고 생각한다. (feat. 원효대사 해골물)


한동안 유튜브를 보며 스쿼트를 따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학창 시절에 받았던 “단체 기합”이 생각났다. 어쩌면 요즘 젊은 친구들은 “기합 받다”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학생일 때만 하더라도, 체벌이나 단체기합이 비일비재했다. 아무튼 그 단체기합 중에 "투명의자"라는 기합이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게 바로 스쿼트 아닌가?


내 몸이 힘든 것은 똑같은데, 거기에 “스쿼트”라는 이름을 붙이면 일부러 시간 내서 하는 운동이 되는 거고 “단체기합”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벗어나고 싶은 악몽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 “멘탈 헬스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회사는 나에게 마음의 상처(크든 작든)를 주는 온갖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한마디로 나에게 기합을 주는 곳이랄까? 정신적으로는 단체기합을 받는 것처럼 멘탈붕괴가 올 때가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나를 괴롭히는  개자식인간을 견디는 과정에서 멘탈이 그나마 강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마치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는 것처럼 멘탈 근육을 키워주는 것이다.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 예전의 나라면 상처 받아 힘들어했을 것이다. 지금은 뭐 허허허. 어지간한 인간은 대충 잘 넘긴다. "회사에 있는 그 인간보다는 낫지 뭐"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모옷된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멘탈 헬스장에 왔다. 저 인간은 아령이다.. 저 인간은 진짜 무거운 아령이다... 저 인간을 겪어내면 내 멘탈은 엄청 강해질 것이다...." 



정신승리 3

회사를 “주변머리 학원”이라고 생각한다.


주변머리(표준어로는 “주변”)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주변머리가 있는 사람은 “빠릿빠릿하다”, “눈치가 빠르다 칭송받는다. 물론 주변머리라는 것이 꼭 갖춰야 할 스펙이 아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주변머리= 꼰대들이 하급자에게 부당하게 요구하는 희생 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다수는 꼰대이므로 일종의 자격증처럼 따 놓으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확실히 주변머리가 있으면 욕도 덜 먹고 뒷담화도 덜 까인다. 그러니 꼰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주변머리를 함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주변머리를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회사 “군대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종종 이런 뒷담화를 한다.


걔 눈치가 좀 없지.
”회사생활”도 처음이고 사회경험도 없대.


쟤 “군대” 안 다녀왔어?
군대도 다녀온 놈이 왜 이렇게 개념이 없대?


나는 여자라서 군대를 안 갔으니, 회사에서 주변머리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자격증 학원은 비싸기 마련인데, 공짜로 트레이닝 시켜주니 얼마나 좋아.




정신 승리 결론

난 돈만을 위해서 회사에 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늘도 회사에 간다. 99.99%는 돈 벌려고 가는 거지만, 0.01%는 엄연히 다른 이유 때문에 가는 것이다. 그러니 나 자신을 불쌍하게 보지 않아도 된다. 난 돈만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니까!







+ 에필로그

이렇게 짜내고 짜낸 회사의 장점을, 회사 동료 앞에서 자랑스레 브리핑하였다. 그러고 나서는 ‘어때요 내 말이 맞죠 어서 그렇다고 동의해줘요’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동료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동료는 냉정하게도 이렇게 대답했다.


정말이지, 공감이 1도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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