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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Oct 18. 2019

회사에 껄끄러운 사람이 생겨버렸다.

불편한 이 상황을 정신승리로 해결하는 법ㅋ


회사에 껄끄러운 사람이 생기고야 말았다. 중학교 때에 같은 반 친구(친구라고 부르기에는 좀 그렇지만.)와 싸워서 패거리가 나뉜 이후 처음이니까 근 20년 만에 내 나와바리에 적이 생긴 셈이다. 나와 껄끄러운 관계가 된 사람은 F씨인데, 나와는 아무 문제없이 지내왔었다. 아니, 제법 친하게 지내 왔다는 말이 더 맞겠다. 유부남이었던 F씨는 화장품이라든가, 여자 핸드백 브랜드 같은 것을 여자인 나보다 더 잘 알았고, 그래서인지 대화가 즐거웠다. 입사 시기도 비슷하고 직급도 같아서 비교적 동등한 관계였고, 업무적으로  전혀 얽히지 않아 얼굴을 붉힐 일도 없었다. F씨와 나는 자리도 가까워서, 종종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주고받을 정도로 할 친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M씨의 무책임한 퇴사와 함께 우리 팀의 평화가 깨졌다. M씨가 무책임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팩트”인데,  담당하던 프로젝트의 1퍼센트도 진행하지 않은 채로, 마감 한 달을 남기고 퇴사를 해 버렸기 때문이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진행률이 1퍼센트 미만이었다! ) M씨는 매번 마감이 다가와야 벼락치기로 일을 해치우고는 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에는 마감 대신에 퇴사를 해 버렸다.  자, 이제 누군가는 무책임한 M씨가 하던 일을 떠맡아 나머지 99퍼센트를 완수해야 한다. 그것도 한 달 만에 말이다. 이런 경우 나는 종종 속된 말로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M씨가 싸고 간 똥을 누가 치울까?


평화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한 명이 퇴사를 하면, 한 명이 채워져야 하지만, 그대도 알고 있듯이 회사라는 것이 그렇게 상냥하지는 않다. 예상하시는 대로 퇴사자가 싸질러놓은 똥은 남은 자들의 몫이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나와 F씨가 함께 그 똥을 치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뭐 그다음은 다들 예상하듯이 그렇고 그런 얘기다. 나와 F씨는 업무배분(=누가 똥을 더 많이 치울 것인가)에 관해서 티격태격하게 되었고, 내가 더 바쁘네, 네가 더 바쁘네 하다가 언성이 높아졌고, 결국에는 이렇게 껄끄러운 사이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회사에 껄끄러운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뚝뚝 떨어진다. 말싸움 한 번 했다고 삶의 질 씩이나 언급하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지만 진짜로 그렇다. 이미 충분히 가기 싫은 회사가, 훨씬 더 가기 싫어지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학창 시절처럼 일 년만 지나면 반이 바뀐다는 희망도 없다. 부서이동이나 조직개편 같은 드문 일이 아니면, 꼼짝없이 매일매일 F씨를 봐야 한다. 그렇다고 출근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매일매일 출근이 죽을 맛이다. 나는 특히 예민한 성격이라서, 회사에 가서 F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나도 나 자신에게 놀랄 정도로 이 상황을 빨리 극복했다.!

 

(극복했다는 것이 F씨와 화해를 했다는 것은 아니다. F씨와는 지금까지도 데면데면하고,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섞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다른 사람에 비해서 딱히 F씨가 더 신경 쓰이지도 않고, F씨 때문에 회사가 더 싫지도 않으니, 이 정도면 나에게는 제법 괜찮은 “극복”이다. )


“앞으로 회사 어떻게 다니지”하고 걱정했던 것이 우스워졌다. 사실,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할 수 있게 되는 데에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 나같이 예민한 동지들을 위해 노하우(라고 쓰고 정신승리라고 읽는다)를 공유하고자 한다.



첫째, F와의 문제는 F에서 끝난다.

사실 회사라는 곳에서 진정한 “편”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내정치라든가, 라인이라든가 하는 종류의 편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야망 있으신 높은 분들”이야기일 뿐이다. 라인을 탈만한 위치도 못 되는 나 같은 일개미에게는 니편 내 편이 큰 의미가 없다. 즉, 내가 F와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우습게도 나는

F랑 껄끄러워졌으니
F랑 친한 사람들과도 껄끄러워지겠군

이라며 걱정했었다. 하지만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회사의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이해관계이므로  좋고 싫고가 중요했던 학창 시절과 달리,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내 앞에 있는 이 동료가 언제 나에게 필요한 존재일지 모르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적으로 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F의 절친(a.k.a F의 오피스 와이프)과도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패거리가 나뉘어 서로 최선을 다해 째려보는 감정 소모할 필요 없다는 것, F와의 문제는 F선에서 끝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둘째, 회사는 어른들의 집단이다.

우리 팀 사람들은 나와 F가 싸웠다는 사실 자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렇게 시끄럽게 싸워서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공적인 자리(회식자리도 포함)에서는 누구도 나와 F의 사이가 껄끄럽다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는다. 당연히 나와 F도 내색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회사에 앙숙인 선배 둘이 있는데, 나는 입사한 지 몇 달이 지나야 그 사실을 알았다.

몰랐어? 저 선배 둘 사이 안 좋잖아!!


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러고 보니,....?!” 하고 생각했다.. 서로 삐쳐 있다는 것을 내색하기에 회사는 너무 성숙한 집단이다. 마치 단체로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연극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모르게 싸운 일이 까마득하게 옛날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셋째, 정말 상대방 잘못이라면, 남들도 그것을 다 안다.

F와 싸운 후, 가장 나를 괴롭힌 감정은 “억울함” 과 “불안함”이었다.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F가 잘못한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은 자세한 내막을 모를 것 같아서 너무 억울했다. 특히 F씨는 여기저기 말을 잘 옮기는 편이라서, 내 욕을 하고 다닐까 봐, 그로 인해서 회사에서 나의 평판이 안 좋아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특히 F씨가 내 뒷담화를 M씨(무책임하게 퇴사한, 이 모든 일의 근원인 그분!)에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 억울함은 최고조에 달했다. 어찌나 약이 올랐던지, 당장 M씨에게 전화해서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리고 유치하지만 평소에 “F가 얼마나 당신의 뒷담화를 하는지 아느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마 M씨는 F가 자기 뒷담화를 어마어마하게 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사실은 M씨 뒷담화의 우두머리 격인데. 흥.)

아무튼. 얼마나 억울했냐면 한 명 한 명 붙잡아놓고, F씨가 나에게 얼마나 무례했는지, 내 인생관부터 인성까지 얼마나 건방지게 훈계했는지, 그리고 친하다고 믿고 이야기했던 나의 약점을 얼마나 야비하게 이용했는지 하소연하고 싶었다. (쓰다보니 또 흥분했네.) 그런데 회사 동료들이 지나가는 말로 툭툭 한 마디씩 하는 말에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F씨가 또 상급자 코스프레(행세)했다면서? “

“F씨 성격에 또 난리 쳤겠어요”

“F씨, 말을 좀 함부로 하죠?”


나는 묻지도 않았는데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생각해 회사 사람들도 나와 F를 겪어보았기 때문에 어땠을지 다 짐작하고 있다. 나의 성격이 어떤지, F씨의 성격이 어떤지. 그리고 트러블이 생겼을 때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 말이다.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바보도 아닌데, 매일 만나는 사람쯤은 파악하고도 남는다.



넷째, 소문은 무섭다. 하지만 그게 불륜급이 아니면 잃을 것은 별로 없다. 

물론 소문은 무섭다. 우리 팀 사람들이야 나와 F씨를 겪어 보았지만, 다른 팀에서는 오직 소문에 의해서 나와 F를 평가할 터였다. 하지만, 불륜 정도 되는 소문이 아니면 나에 대한 평판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왜냐하면, 회사원은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회사 내 평판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게 정확한 것도 아니다. 같은 사람에 대한 평가라도 상사가 내렸는지, 부하직원이 내렸는지에 따라 다르고, 같은 팀 사람이 내렸는지, 외부 사람이 내렸는지에 따라서  다르다. 그리고 사람마다 잘 맞는 스타일이 있고 안 맞는 스타일이 있으니, 평판은 만드는 사람 나름이다.

소문이 좀 안 좋더라도, 실제로 일 잘하고, 같이 일해보니 잘 맞으면, “아... 헛소문이었구나” 하고 평판은 금방 수정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일 해 보니 별로인 경우에도, 평판이 좋다고 봐주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F라는 한 사람이 만든 소문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혹 안 좋은 소문이 나더라도 내가 차근차근 바꿔가면 되니까 말이다.



다섯째, 과거로 다시 돌아가도 나는 똑 같이 행동할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하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물론 회사에 껄끄러운 사람이 생겨서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부당하게 일을 떠맡고 싶지도 않고, 무례한 상대방에게 굴복하고 싶지도 않다.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좋게 넘어갔다면, 나는 앞으로도 주인 없는 일을 떠맡을 것이고, F처럼 목소리 큰 사람에게 모욕당할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하여 회사에 껄끄러운 사람이 생겼지만, 내 의견을 정당하게 피력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비록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결정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에필로그>

결론적으로 무책임함 M씨가 싸고 간 똥은 누가 더 많이 치우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나도 F도 치우지 않았다. 회사에서 우리 팀에 경력직 한 명을 채워준 것이다. 그렇다. 회사라는 곳은 말랑말랑한 곳이 아니지만, 이렇게 가끔은 합리적으로 똥 치울 사람을 보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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