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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Aug 10. 2019

나에게 반말하지 마세요.

반말이 불편한 사람의 호소

나는 반말이 싫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반말을 쓰는 것도 싫고, 나이 많은 사람이 반말을 쓰는 것도 싫다. 어쩔 때에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나에게 반말하는 것도 싫을 때가 있다.


1.

손님인 나에게 반말하는 게 싫다. 앞에 있는 아저씨한테는 “삼천 원입니다” 했으면서, 나에게는 “응, 삼천 원.” 이렇게 짧게 말하는 가게 아줌마가 싫다. 택시 운전기사님이 “저 앞에 세워드려?”하며 애매한(?) 반말하는 것도 싫다. 귀걸이를 고르는데, 나보다 한참 “언니”인 게 분명한 점원이 “언니, 이거 것도 같이해. 내가 삼천 원 빼줄게” 하는 것도 싫다.


2.

상사가 나에게 반말하는 게 싫다.  “이거 차아로씨 담당이지? 얼마나 진행되었어?”라고 말하는 것이 싫다. 그 상사가 평소에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상사라면 더 어이없다. 회사는 “공적인” 장소이니 상호 존대했으면 좋겠다. 특히 직급이 같으면 똑같이 존대했으면 한다. 직급 하니까 생각났는데,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김대리” 하면서, 나한테는 (어리다는 이유 만으로) “차아로씨” 라고 부르는 것도 싫다. 나도 엄연히 직급이 있는데 “차대리”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 “차아로씨” 뒤에 이어지는 말이 당연히 반말인 것도 싫다.



3.

초면에 반말하는 사람이 싫다. 옛날 드라마에 보면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하는 장면이 있는데 딱 그 심정이다. 내가 더 어리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나보다 어리네? 말 편하게 해 되지?”하는 것도 싫다. 반말을 하겠노라고 당당하게 통보하지 말고, 내 쪽에서 먼저 “말씀 편하게 하세요”라고 먼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4.

나도 안다. 내가 유별난 것을. 처음에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반말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반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특히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이 쓰는 반말은 다들 무리 없이 넘기는 것 같다. 나만 모난 돌처럼 유별나다는 것일 인정하게 되었다.


5.

게다가 나는, 싫은 반말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다. 반말을 하더라도 기분이 안 나쁜 사람이 있고, 똑같은 반말을 하더라도 유독 싫은 사람도 있고 뭐 그렇다. 친구의 ‘친언니’가 초면에 반말 쓰는 건 괜찮은데, 친구의 ‘아는 언니’가 반말 쓰는 건 기분 나쁘기도 하는 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준이 없다고 해도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다. 일단 말을 놓으라고 “먼저” 제안하기 전까지는 존댓말을 쓰는 게 안전할 텐데, 왜 성급하게 반말을 쓸까?


6.

나와 “편한 사이”가 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본인들만 편하지 난 불편하다.


대학원생 때 이런 일이 있었다. M이라는 여자분이 단기계약으로 우리 연구실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들어오자마자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차아로야, 이 프로그램 어떻게 설치해?” 하고 대뜸 이름을 부르며 반말을 했다. 내가 2살 어리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자기 보고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본인들만 편하지 나는 “언니”도 “오빠”도 편하지 않다. “근로계약서”를 쓰고 만난 사이에  일방적인 언니 오빠는 없다고 생각한다.


7.

이건, 그냥 알레르기 같은 거다. 누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땅콩이, 알레르기가 있는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알레르기와 마찬가지로 죽을병은 아니지만 고칠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런 고로, 이제는 이 증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반말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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