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성과 함께, 불완전한, 참여

by 게으른대학원생

Andersen, Lars Bo, et al. "Participation as a matter of concern in participatory design." CoDesign 11.3-4 (2015): 250-261.


이 논문은 참여적 디자인(Participatory Design, PD)에서의 참여(Participation)를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의 관점에서, 브루노 라투르가 제시한 ‘관심의 문제(matter of concern)’ 개념을 통해 분석적으로 접근한다. ‘관심의 문제’란 단일하고 보편적인 사실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사실과 관련하여 출현하는 수많은 인간·비인간 행위자, 공간, 관념, 상상 등의 더 넓은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문제를 의미한다. 저자는 참여 역시 ‘사실의 문제(matter of fact)’가 아니라 ‘관심의 문제(matter of concern)’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이는 참여를 ① 언제나 국소적(partial)이고, ② 타자성(other-taken)에 의해 구성되고 재조정되는(overtaken) 관계적 실천이자 그 효과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참여는 이미 사전에 설계된 제도나 방법론, 또는 기획된 의도에 따라 규정되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에 관여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적 실천 속에서 출현(emerge)하는 관심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덴마크의 Teledialogue 프로젝트를 분석한다. 이 프로젝트는 위탁 보호를 받는 아동들과 사회복지사(social workers)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IT 기술을 디자인한 사례다.

연구 디자인에 참여한 Isabella라는 아동은 물리적으로 프로젝트 현장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National Council for Children(NCC)의 보고서를 매개로 참여자(participant)로 출현한다. 즉, 참여란 특정한 매개물과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는 국소적인 실천이며, 참여자는 참여의 생산적 효과로서 나타난다.

또한 Danish Data Authority(DDA)가 제기한 개인정보보호 문제로 인해, 아동의 참여는 Skype를 활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한된다. 이는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도구가 DDA와의 관계 속에서 재조정(reconfigured)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재배치의 결과가 어떤 새로운 효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으며, 이 논문에서도 그것을 다루지 않는다.

한편, 아이들은 프로젝트의 목표대로 사례관리자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참여하기도 하지만, 일부 아이들은 부모의 반대로 참여하지 못하거나, 대화 자체를 원하지 않거나, 혹은 사례관리자와 사적인 이야기만을 나누길 원하기도 한다. 이는 Teledialogue 내에 다중적인 참여자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단일한 ‘순응적 참여자’로서가 아니라, 거부하거나 우회함으로써 새로운 국소적 참여를 생성하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이 사례에서 아이들은 "어디에나 존재했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다"(257). 아이들은 참여하고, 참여자가 되며, 다른 사람(사회복지사)의 참여를 매개하는 등 참여의 어디에나 존재했지만, 동시에 다양한 상황·행위자·기기와의 연결 속에서 다중적으로 존재했다. 그들의 참여는 언제나 국소적이기 때문에 불완전하며, 타자성과 함께 출현하기 때문에 계속 확장되고 재배치된다.


ANT의 관점에서 참여는 “결코 완전히 실현되지도, 완전히 부재하지도 않다”(257). 즉, 참여는 불완전하지만 관계 속에서 어디에나 출현하는 행위다. 참여는 하나의 관계적 실천이며, 그 자체로 효과(effect)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는 '무엇이 참여인가, 무엇이 참여가 아닌가'를 구분하기보다, '참여가 어떻게 구성되는가, 누가 어떻게 참여자가 되는가, 무엇에 의해 참여가 매개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는 참여자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 사회-물질적 구성체임을, 참여가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언제나 국소적으로 작동하는 실천임을, 그리고 참여를 평가할 수 있는 ‘탁월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함을 드러낼 수 있다(258).


라투르는 사회구성주의자들과 거리를 두며, 사회적 환원주의(sociological reductionism)를 비판했다. ANT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곧 비환원주의(non-reductionism)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즉, ‘사회적인 것’이 어떠한 실재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없듯, ‘참여’ 역시 어떠한 실재를 만들어내는 단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의 참여 담론은 바로 그 위치에 놓여 있다. 격상된 ‘참여’의 지위는 역설적으로 참여의 현존을 격하시킨다. 즉, 지금 여기에서 참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구성되고, 매개되고 있는지를 묻는 대신, ‘참여를 통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참여를 더 성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가 논의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저자는 참여를 단순한 수단이나 도구로 간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참여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과정 중에 있는 실천이다. 따라서 "참여의 불완전성과 모호성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며, 그 위에서 참여를 연구하고, 조직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새로운 접근"이 모색되어야 한다(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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