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영(2007), ‘황빠’ 현상 이해하기: 음모의 문화, 책임전가의 정치, 한국사회학, 41(6), 75-111
1. 황빠의 탄생과 집단문화
이 논문은 황우석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운동을 의미하는 ‘황빠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질문하며 시작한다. ‘황빠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한 기존의 논의들은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황빠 현상에 대해 너무 성급하고 인상적인 이해에 그친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황우석을 범죄자로 취급하며 황우석과 연결된 동맹관계들을 비가시화하며 도덕적 이분법을 자행하고, 인지부조화 이론과 유사파시즘은 민족주의와 생명자본주의, 미래주의, 민주주의가 뒤얽힌 황빠 현상에 대한 ‘분석적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 황빠 현상에 대한 보다 체계적, 조직적,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것이다.
이를 비판하며 저자는 황빠현상이 “지배지식동맹(황우석 연구팀, 언론, 정부와 정치세력, 경제계와 의료계, 황우석 지지자 세력)의 급작스러운 붕괴와 신뢰의 위기로 발생한 사회기술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쪽수). 황빠들은 줄기세포가 난치병을 치료해 줄 것이라는 과학기술 낙관주의, 줄기세포 연구가 가져올 경제성장, 황우석이라는 스타 과학자의 탄생으로 높아질 한국의 위상을 전달한 언론과 이를 국가발전의 기회로 삼으며 전폭적으로 지지한 정부와 정치세력들, 즉, 지배지식동맹의 네트워크에 기반해 출현하게 되었다.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미래주의와 스타 과학자를 영웅화하는 민족주의의 연결이 황우석 박사와 그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기대와 희망, 비전을 가진 황빠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집단적으로 세력을 확장한 황빠 집단들을 상당히 이질적이었고, 특히 운동 방식의 민주적 가치를 중심으로 분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민족주의와 미래주의와 함께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긴장하며 공존한 것이다.
황빠들이 공유하는 집단문화는 지배지식동맹이 무너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황빠들은 정부와 언론의 책임회피 문제를 지적했고, 공동연구원들에게도 논문조작의 책임을 물었다. 이 사태의 모든 책임이 오롯이 황우석 박사에게 전가되는 양상을 황빠들은 비판하고 있었다. 이들은 비판의 근거로 음모론을 양산했다. 지배지식동맹에 대한 책임회피를 문제삼았던 것에서 볼 수 있듯, 황빠들은 정부와 언론, 전문지식인들에 대한 신뢰가 상실된 상태였다. 대신 이들은 나름의 합리성들을 직접 찾아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음모론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이익과 권력의 선들을 연결하여 나름의 합리성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2. PUS와 황빠 현상
저자는 구성주의 PUS의 장점을 활용하되 그것의 한계를 지적하고 황빠의 문화와 그들을 둘러싼 구체적이고 세밀한 분석을 통해 보완하려 한다.
구성적 PUS는 대중의 과학이해가 과학적 사실과 정보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정부, 언론과 같은 기관들에 대한 신뢰의 영향을 받는다고 밝혀왔다. 황빠들이 음모론을 형성하게 된 배경에도 지배지식동맹에 대한 신뢰 부족 문제가 있었다. 저자는 ‘통찰 없는 박식함’으로 황빠들의 줄기세포에 대한 이해를 분석하지만, 이해의 문제 너머 신뢰 위기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구성적 PUS가 주장해왔듯, 황빠들의 과학이해는 한국의 사회체제에 대한 신뢰의 문제와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황빠현상을 둘러싼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맥락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며 보여주고 있다. 황빠들이 왜 음모론을 형성하며 그들 나름의 합리성들을 만들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황우석 박사 개인에게 오롯이 전가된 논문조작에 대한 윤리적 책임의 문제, 줄기세포에 대한 미래비전과 민족주의를 연결하여 황우석을 영웅화한 정부와 언론의 책임회피가 황빠들의 음로론 양산에 기여했다. 즉, 황빠들이 황우석 사태에 참여해 줄기세포와 관련 사건에 대해 그들만의 이해와 논리를 만들어 가게 된 배경에는 책임을 둘러썬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이 얽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구성적 PUS가 갖는 한계를 다음의 두 가지 관점에서 극복하고자 시도한다. 먼저, 구성적 PUS가 과학의 민주화를 지지하고 전문가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는 와중에 대중을 낭만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전문가 지식과 시민 지식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황빠들에 대한 집단적 이해를 지배지식동맹과의 얽힘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즉, 그것들을 대척점에 놓지 않는다. 오히려 황빠들의 음모론을 지배지식동맹이 만들어 낸 줄기세포에 대한 사회기술적 상상과 그것의 붕괴라는 연장선에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구성적 PUS에 공동생산적인 분석이 부재했음을 시사한다. 라투르가 구성적 PUS를 사회학적 환원주의라고 비판한 것과 유사하다.
이어서 저자는 구성적 PUS가 대중들의 “정체성이 역동적이며 이질적임을 잘 보여주었으나”, 특정 과학기술을 둘러싼 “대중의 집단적 감성과 욕망”에 대해서는 간과한다고 지적한다. 이 비판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구성적 PUS가 사례연구를 통해 다양한 맥락 속에서 구성되는 대중의 다중성을 포착하지만, 특정 과학기술(줄기세포)를 둘러싼 대중의 집단적 이해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이는 구성적 PUS가 대표적으로 윈의 목양농 사례연구처럼 구체적인 과학기술의 현장을 다루는 단일 사례연구를 많이 수행해왔기 때문에 기술체제를 둘러싼 대중의 집단적 이해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고 볼 수 있다. 자사노프 역시 이러한 문제를 비판하며 “시민인식론”을 통해 생명공학에 대한 각 나라의 공유된 이해방식을 분석한 바 있다.
또한 두 번째 비판은 여전히 구성주의 PUS가 ‘이해’, ‘합리성’, ‘지성’의 문제 즉 계몽주의적 관점에서 대중참여를 다루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과학기술에 대한 집단적인 ‘비전’과 ‘욕망’과 같은 감성의 문제가 황빠현상의 출현에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이는 구성적 PUS가 이성과 합리성의 측면에서 대중을 이해하려 했던 측면과 구별된다. 지식과 태도의 모델에서 벗어났지만, 구성적 PUS 역시 신뢰를 강조할 때,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나 제도적 과학의 비성찰적 태도가 대중의 과학이해에 영향을 미친다고 불석할 뿐, 대중의 감정과 상상의 측면들을 분석에 포함하지는 않는다. 반면 이러한 한계는“사회기술적 상상”,“애착(attachment)”, 정동(affect)“과 같은 개념들을 통해서도 극복되고 있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