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의 돌, 세대의 끝

여호수아 24:25-33

by 게으른대학원생

모세와 아론에 이어 여호수아의 시대도 끝이 났다.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율레와 법도를 정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율법책에 기록하고, 증거의 돌을 세운 뒤, 백십세의 나이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다. (31)

그 이후의 세대,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걷게 될 행보를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 묵상했던 주요 구절은 27절이다.


"모든 백성들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27)


가장 먼저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돌이 어떻게 들을 수 있지?"


여호수아는 돌을 "성소 곁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워 세겜의 언약에 대한 증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 돌에게 "들을 수 있는 행위성"을 부여한다.

일반적 상식으로 돌은 들을 수 없는, 생기 없는 사물이다.

그런데 여기서 돌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들은 법정의 증인"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온전하도록 영향력을 발휘한다.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비인간(non-human)"을 함께 사고하는 것은 연구자로서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는 비인간이 내 묵상의 일부를 차지했던 적은 거의 없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만물을 통해 일하신다.

그렇다 해도 돌이 증인으로써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본문해설은 "돌의 변하지 않는 특성"을 반영한 말씀이지만, 여전히 돌을 매개로한 이들의 언약은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이 언약의 불완전함은 인간의 불완전함인가? 아니면 개입하지 못하는 무생물의 불완전함?

관계의 불완전함을 생각해보았다. 관계의 불완전함은 인간과 돌의 불완전함을 전제로 한다.

돌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매개로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살아있게 만들지는 못한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지 못하면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속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 비로소 그 돌도 증인이 될 수 있다.

십자가 목걸이를 아무리 몸에 달고 산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진다면 그것은 그저 장식구일뿐,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단지 돌이나 인간의 불완전함에만 주목하기 보다, 관계의 불완전함에 주목해봤다.

그 불완전함은 하나님으로 인해 완전해질 수 있다.


(그러나 관계적인 해석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역사를 설명할 때만 가능하다.

그 경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존재로까지 갈 수 는 없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세대들에게 세겜의 돌은 그저 돌이었을 것이다.

세대를 넘어서도 세겜의 돌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한다.




"다가오는 한 해도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워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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