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1-12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3)
예수님은 다른 이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자를 책망하신다.
사실 눈의 들보는 눈의 티보다 보기 쉽다.
그러나 보이는 것만을 보려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은 자기 눈 속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의 실수와 위선은 잘 보여도, 나의 실수와 위선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종 거울 앞에 서 보는 건 어떨까?
나 라는 사람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니 말이다.
어떤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떤 티비 프로에서 배우 류혜영이 거울을 보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무엇을 보아야 할까?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예수님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 "밝히 본 후에" 다른 이의 티를 빼라 말씀하신다.
우리는 밝히 볼 수 있을까?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 속에 티와 들보는 새겨져 있다.
우리의 눈은 그것들로부터 자유할 수 있을까?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고 빼낼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뒤이어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7)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많이 잘못 해석된다.
하나님이 마치 요술 램프처럼 구하는 대로 다 주실 것이라고 말이다.
하나님이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 약속하신 좋은 것(good gifts)은 무엇일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재물? 지식? 권력? 사람? 기회?
언뜻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두 내용의 말씀이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12)로 연결된다.
내 눈 속의 들보를 빼기 위해서는, 그래서 밝히 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성령이 필요하다. 우리는 성령을 하나님께 구하고, 성령을 찾으며, 그 분이 오시길 계속 문을 두드릴 수 있다.
들보를 보지 못하는 자는 겸손하지 못한자이다.
정죄하고 심판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리에 선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선 자가 구하고 찾고 두드릴 이유가 있겠는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데.
구하고 있는가? 찾고 있는가? 두드리고 있는가?
스스로 그런 질문을 던진다.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달라고,
비판과 정죄, 시기와 질투로 세상과 사람을 보지 않고
밝히 하나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게 해달라고 그렇게 성령을 구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