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 전철(2018)
홍성욱, 전철. (2018). 과학기술학(STS)의 관점에서 본 종교와 과학. 신학연구, 55(2), 29-53.
종교와 과학의 만남은 우리가 “어떤 세계를 살아갈 것인가?”, “어떤 사회를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과학만으로도, 종교만으로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과 종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논의하고, 협력하며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 논문은 그러한 만남이 기술적이면서도 사회적인 해법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과학이라는 사실과 종교라는 가치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온 오래된 도식을 해체해야 한다. 과학기술학(STS)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적절한 도구이다.
과학과 종교의 만남은 오랜 역사를 지닌다.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이나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은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과 종교는 대립적인 세계관을 지니며 종교적 신념이 과학적 발전을 저해해 왔다는 인식이 지배적으로 퍼졌다. 그러나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그처럼 단순하지 않다. 로버트 머튼은 17세기 근대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청교도주의가 중요한 가치체계로 기능했음을 주장했다. 근대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보일과, 그의 영향을 받은 뉴턴 역시 청교도적 신앙을 지닌 과학자였으며, 자연의 섭리를 발견하는 일이 곧 신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이라 여겼다. 이는 종교적 신념이 근대과학의 발전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과학과 종교를 단순히 대립과 갈등의 관계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러한 갈등 자체가 과학과 종교가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었는지를 방증한다. 만나지 않았다면, 갈등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근대과학이 발전하면서 자연은 점차 기계적으로 대상화되고 착취되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독교는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관점이 산업혁신을 추동하면서, 자연은 신의 섭리가 깃든 산실이 아니라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간주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학과 종교의 거리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과학은 기술과 결합하여 신의 자리를 대체해 갔고, 합리적 이성에 기반한 과학은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구성해 나갔다. 반면 종교적 가치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이처럼 멀어질 것만 같았던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과학기술학(STS)은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STS는 과학을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가 함께 구성하고 엮어내는 산물로 이해하며, 과학의 ‘객관성’, ‘가치중립성’, ‘보편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해 온 관점을 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STS의 과학 이해는 위험사회라는 조건 속에서 현대과학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즉, 현대과학은 과학 지식의 불확실성과 과학자 공동체의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언제나 사회에 이로울 것이라는 확신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며, 과학자 사회의 규범 역시 민주적 가치를 온전히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학의 불확실성은 종교의 관점에서 볼 때 과학의 ‘빈틈’이나 ‘틈새’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빈틈과 틈새가 곧바로 종교의 자리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이해한다면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여전히 평등하지 않다. STS는 과학 안에는 사실과 가치가 이미 얽혀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과학적 사실과 종교적 가치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결핍을 보완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필요로 하며 함께 나아가는 관계이다. 과학적 사실도, 종교적 가치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홀로 설 수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두 축은 서로 얽혀 있으며, 분리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기술과학(technoscience)이 마치 이 세계를 움직이는 유일한 축인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은 그 축의 회전을 더욱 가속화하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기술과학은 홀로 세상을 움직이지 않는다. 기술과학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제도적 인프라를 필요로 하며, 바로 그 인프라의 지속적인 실천이 기술과학을 지탱하고 있다. 이 논문이 주장하는 과학과 종교의 만남은 바로 이러한 인프라를 해체하고, 종교적 가치가 사물과 실재의 방향을 제시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가장 큰 불안은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그 방향을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종교와 과학의 만남은 지금 더욱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