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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Feb 02. 2024

코스모스

사건의 지평선을 들어도 이제 그다지 슬프지 않다.

22년 11월만 해도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모두와 이별하면서 이렇게 슬픈 노래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때만큼 가사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콕콕 찌르진 않는다.

아침 등굣길에 아이들을 태워다 주면서 듣는 사건의 지평선은 이제 딸아이도 더 이상 슬프진 않나 보다.

스웨덴에 바로 왔을 때만 해도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난다며 슬퍼했는데 오늘 보니 신나게 따라 부르고 있다.

운전하는 동안 내 눈과 정면 승부하는 스웨덴의 아침해는  뜨는 해가 분명한데도 지평선에 살짝 걸려서는 지고 있는 것처럼  아침 8시에 노을을 선사하는 스웨덴의 해가 이제 더는 낯설지 않다.


벌써 일 년,  우린 여기 온 지 일 년이 지났고

지난 12월에 일 년 만에 들른 한국은 우리 눈에 너무 신시계였다.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에 보이는 빼곡한 고층 아파트가 신기했다.

나도 모르게 저 아파트에 모두 사람이 사는 거야?라는 외국인 감탄사를 나지막이 읇조리며 실소를 했다.

서울 시내는 또 어찌나 고층 빌딩이 많던지 우린 정말 시골 사람이었다.

거리마다 맛있는 음식 냄새로 진동하고 역시 내가 나고 자란 40년은 부정할 수 없었다.

빠르고 편리한 나라.

쿠팡은 주문만 하면 다음날 도착하고 음식도 배달 버튼을 누르면 30분이면 딩동하고 벨을 울린다.

바쁜 한국의 리듬에 맞춰 3주간 우리 셋은 일명 노예 아이돌이라 불리며

바쁘게 친구들 친척들 부모님을 만나고 시간을 보냈다.

매일 시끌벅적했고 집에 돌아오면 따끈한 바닥에 철퍼덕 퍼져서 노곤하게 다리 뻗고 티비 채널을 돌려댔다.

1월 2일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아이들은 돌아가기 싫어요를 외쳤고

사실 나도 가기 싫었지만 아이들 마음을 바꿔줘야 하지 않을까란 의무감에

짐짓 어른스럽게 아빠가 우릴 기다리고 계시잖아 엄만 이제 스웨덴도 좀 가고 싶은데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릴 했다.

그렇게 3주간의 여행 같은 여행 아닌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스웨덴은

오자마자 북극과 가까운 위용을 자랑했다.


자정에 알란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를 데리러 나온 남편과 차를 타고 오는데

하늘을 칠흑같이 어두웠고 간혹가다 있는 건물만이 불빛을 반짝였다.

가로등은 자신이 내는 빛을 등불 아래 삼각뿔 공간밖에 비추질 못했고

가장 큰 기세를 자랑하는 건 몰아치는 눈보라였다.

눈은 내려앉지 못하고 휘이잉 큰 바람에 땅에서 다시 공중으로 공중에서 다시 땅으로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 그래 여기가 겨울의 스웨덴 ,

휘황찬란하던 서울 한강변의 불빛과 한강 다리를 건너며 느꼈던 편안함은 온데간데없고

아 그래 여기 스웨덴,

북위 62도

반가움에 혼자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남편의 목소리는 아득하고

창밖에 눈을 고정시킨 나는 다시 한번 이곳 자연의 거대함에 한낱 작은 인간의 무력함을 고스란히 느껴본다.



오자마자 우리는 스키 여행에 강습에 개학에 정신없이 움직였다.

문득 내가 이곳이 이렇게 익숙했었나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모든 게 낯설던 작년 이맘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새로울 게 없었다.

모든 장면이 생경하던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니 눈앞에 보이는 모든 장면과 시간이 예상되는 나를 보며

난 이제 여기에 적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혼자 있고 싶었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고 바쁘지만 의미 없이 돌아다니다가

역시 무리다 싶은 시기에 감기에 걸렸다.

약을 종류별로 먹어도 감기는 나아지지 않고 나를 비웃듯 차례차례 인후통 콧물 순으로 순서를 밟고 있었다.

약을 먹으면 멍하고 약기운이 떨어지면 콧물이 줄줄 나서 정신이 없었다.

동시에 모든 게 짜증 나기 시작했다.

다 잘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다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일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 싶었다.

나는 누구지라는 어이없는 질문과 함께

내가 누군지가 지금 갑자기 왜 궁금하지라는 질문도 함께


어제 코스모스 도입부를 읽어서인가

광활한지도 모를 끝없는 우주 안에 아주 작은 푸른 별 안에 발 딛고 서있는 나를 생각하자

내가 40년간 살던 장소를 두고 전혀 다른 곳에 와 있는 내가 느꼈던 거리감,

14시간을 날아온 다른 세계가 아니라 저 멀리 닿을 수도 없는 곳에서부터 나를 가늠해 본다는 건 너무나 외로운 일이었다.

데미안 셔젤의 퍼스트 맨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달의 분화구에서 보여줬던 그 눈빛이 떠올랐다.

왜 모든 것에 겸손해져야 하는지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작디작은 생명체

내 안의 우주를 믿던 나에게 내 밖에 우주를  생각하게 만든 책 때문인가.

나는 너무 하찮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내가 누구지

난 무엇을 원하지

난 왜 아무것도 한 게 없지


아프다는 핑계로 누워서 끊임없이 유튜브 인스타 드라마를 클릭하면서도 떠나지 않는 머릿속의 질문이 나를 괴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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