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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Mar 22. 2024

런던 근교 세븐 시스터즈

영국의 부산? 브라이튼.

여섯째 날

세븐 시스터즈 - 브라이튼 - 파빌리온 궁전 


체크포인트

런던근교 여행 투어 예약, 파빌리온 궁전 관람해 보기




 런던에 일주일이나 머무는데 근교를 한번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일정 중에 하루 정도는 근교로 나가보자. 런던 근교 당일 투어를 검색했다. 코츠월드, 옥스퍼드, 스톤헨지, 윈저성 등등을 보던 중에 눈을 사로잡은 사진이 있었다. 바닷가에 새하얀 절벽 사진, 세븐 시스터즈. 스톤헨지와 세븐 시스터즈 사이에서 고민하다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얘들아, 너네는 이 두 군데 중에 어딜 가고 싶어?"


스톤헨지 사진을 보더니 대뜸 둘째가 이야기한다.


"이 돌을 보러 가는 거야?"


 아... 아니 이 돌이 말이야... 스톤헨지가 얼마나 신기한 돌인지 설명해보려 했으나 전혀 관심이 없다. 옆에서 첫째가 야 넌 스톤헨지도 모르냐며 무시한다. 결론은 둘 다 바닷가가 더 재미있을 거 같다고. 그래, 그럼 바닷가로 가자. 그래서 결정된 세븐 시스터즈와 브라이튼 당일 투어. 들어본 적 있는 지명을 다 제치고 사진 하나로 결정하게 된 세븐 시스터즈.


 세븐 시스터즈와 브라이튼은 런던에서 쭈욱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이동 시간은 세븐 시스터즈까지 2시간 30분 정도다. 일정 중에 가장 일찍 아이들을 깨워본다. 8시에 미팅장소에서 만나야 했기에 6시부터 일어나서 준비해야 했다. 일찍 재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눈에 잠이 그렁그렁 붙어 있다. 차에서 자면 된다는 말을 해가며 아이들을 준비시켜 나갔다. 바쁘게 이동했지만 일단 투어 차량에 올라타고 출발하니 편안했다. 일주일째 종일 다리를 쉬지 않고 걸어 다니던 일정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정이라니 다시 한번 투어가 좋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런던의 고속도로를 달리며 세븐 시스터즈로 향했다.


 어제 오후부터 비가 오더니 오늘은 날씨가 흐리다. 근교로 나가자 낮은 구릉이 연신 이어지고 간간이 보이는 사이사이 작은 나무숲을 제외하곤 전부 초록풀들로 덮여 있다. 옆자리에 앉아 쫑알거리며 놀자던 둘째가 한 시간쯤 지나자 꾸벅꾸벅 존다. 창밖을 바라봤다. 낮게 깔린 회색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고 흐릿하게 안개 낀 언덕에 진초록풀들이 바람에 누웠다 일어난다. 마치 폭풍의 언덕 소설 속 배경일 것만 같아. 6월의 황무지는 이런 모습이구나. 아무래도 투어 검색할 때 봤던 세블 시스터즈의 화창한 날씨는 기대하기 어렵겠다.


 세븐 시스터즈에 도착했다. 작은 샵에 기념품과 함께 세븐 시스터즈를 설명하는 공간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하얀 절벽은 석회암이란다. 아하. 분필로 만들어진 절벽. 분필이니까 물러서 잘 깎이겠지. 현재도 계속 깎여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깎여 들어가는 절벽 때문에 건물도 함께 헐어내고 있단다. 사진으로 건물이 있던 때와 지금 건물이 없어진 모습을 비교해 놓은 절벽 사진을 봤다.

 

 밖으로 나와 절벽이 잘 보이는 반대쪽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드디어 인터넷에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던 하얀 절벽과 마주했다. 비록 안개 끼고 흐린 날이라 아쉬웠지만 날씨 요정이 항상 우릴 도와주는 건 아니니까. 막아줄 것 없는 언덕에선 바람이 무척 세게 불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에 둘째가 금세 산발이 되어 있었다. 애들이 절벽을 바라보고 풍경을 감상하는 건 잠시 잠깐. 탁 트인 언덕에 올라와 좋은지 둘이서 빙글빙글 큰 원을 그리며 뛰어다닌다. 차 안에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어서 그런가. 아니며 어른들만 있는 투어라 다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한 만디씩 말을 걸어주셔서 그런가. 평소보다 더욱 신이 났다. 가이드 선생님이 그만 뛰고 이제 사진 찍어야 하니 여기 작은 돌을 주워서 엄마 이름 이니셜이랑 하트를 만들라고 시키셨다. 금세 돌을 주워 만들고는 사람들에 섞여 여기저기 참견 중이다.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종일 질문 공세를 혼자 받아내다가 더 이상 나에게 오지 않아서 좋기도 했다. 민망함과 편암함이 함께하는구나.


 가이드님이 투어 메인사진처럼 스냅사진을 찍어주신다며 소품을 세팅했다. 신혼부부, 친구, 커플 차례로 사진을 금세 수백 장씩 찍어주셨다. 우리 셋도 사이좋게 돗자리 위에 앉았다. 얘들은 아직도 웃느라 정신이 없다. 셋의 사진을 찍어주던 가이드님이 애들 보고 너네는 이제 나오라고 한다. 엄마도 혼자 독사진 찍어야 한다고. 대체 이 둘은 왜 이렇게 웃음이 터졌나. 이제는 나가지 않겠다며 엄마를 방해하며 웃고 있다. 간신히 애들을 내보내고 나 혼자 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오늘은 나도 사진 한 장 건져보자.


 여행 내내 가는 곳마다 싫다는 애들을 세우고 인증숏을 찍어줬는데 사일째 밤, 누워서 사진을 보다가 깨달았다. 내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정신없이 다니느라 누구한테 찍어달라고 할 여유도 셋이 셀피를 찍을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어제부턴 애들한테 엄마 사진도 찍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웬걸, 눈을 감거나 딴 데 보고 있는데 찍거나. 이럴 거면 찍지 말라고! 오늘은 드디어 어른이 찍어주는 사진이 생겼다. 게대가 연속촬영 수백 장. 내 사진도 한 장 정도는 건질 수 있겠지. 세븐 시스터즈를 다시 올 날이 있을까. 흐린 날씨에 아쉬운 세븐 시스터즈를 뒤로하고 브라이튼으로 향했다.


  브라이튼 가는 길에 가이드님이 이야기하신다. 영국 사람들이 너 주말에 어디 다녀왔어? 물었을 때,  세븐 시스터즈라고 답하면 하면 응? 어디?라고 하지만 브라이튼이라고 하면 오! 너 브라이튼 다녀왔어? 한단다. 브라이튼이 런더너들에겐 런던에서 가까운 휴양지 인가보다.


 브라이튼에 내리니 확실히 휴양지의 느낌이 났다. 바닷가에 내려 길 건너 도시로 들어갔다. 작은 도시라 읍면 정도 크기로 보인다. 조금 걸어가니 파빌리온 궁전이 나왔다. 파빌리온 궁전은 조지 4세가 지은 왕실의 여름휴가 별장이다. 조지 4세는 동양의 느낌을 담은 궁전으로 짓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인도 타지마할의 둥근 지붕을 연상시키는 궁전 외부와 꽃과 푸른 잎이 흐드러진 영국의 여름 정원이 함께하고 있다. 내부 역시 중국 인도 유럽 그 사이 어디쯤에 있다. 재미있는 건 이 셋 곳이 함께해서 본 적 없는 모습의 궁전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붉은색과 유럽의 화려함이 함께하는 재미있는 궁전이었다. 용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물고기 몸통에 용머리를 붙인 생전 처음 보는 용 장식에 너나 할거 없이 셋이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상한 것 찾기에 열을 올렸다. 용머리에 물고기 몸통 혹은 체형은 서양인인데 눈만 쌍꺼풀 없는 여자와 아이를 그린 그림. 아시안의 눈으로 보는 이 궁전이 얼마나 웃기던지 아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했다.

 영국 여행동안 꼭 한 번은 영국 에프터눈 티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가이드님이 브라이튼의 에프터눈 티 카페를 몇 군데 추천해 주시길래 오늘이 기회다 생각했다. 딸기잼과 크림 바른 스콘에 홍차를 마셔야지. 파빌리온 궁전의 의외의 매력에 시간을 너무 소비해버렸나 보다. 급하게 에프터눈 티 가게로 향했다. 에프터눈 티는 여유롭게 마셔야 하는데 약속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빨리 달라고 주문해 보았지만 사장님은 차림을 하실 수 없는지 안주인이 금방 올 텐데 조금 기라디라며 최대한 빨리 주겠노라 하셨다. 하지만 주인아주머니는 한참 뒤에 오셨다. 우리 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영국 사람들은 천천히 티를 즐기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스콘이 나오자마자 급하게 스콘에 딸기잼과 클로티드 크림을 듬뿍 발라 와구와구 먹었다. 티도 급하게 한 사발 들이킨 다음에 시간에 맞춰 놀이공원 앞으로 경보로 걸어갔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아침보다 날씨가 좋아졌다. 파란 하늘과 하늘보다 더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바닷가 앞에 놀이공원으로 레트로한 느낌이라고 여행 상품에 소개되어 있었는데. 별안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장소가 하나 있었다. 아, 월미도! 속으로 생각했다. 부산은 아니고,, 영국의 월미도네 월미도. 아이들이 열심히 갈매기를 구경한다.


 알찬 투어였다.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후라이드 치킨이다. 런던의 마지막 날을 장식할 후라이드 치킨. 마침 투어 종료도 인근이어서 런던에 오면 꼭 가겠다고 점찍어 두었던 치킨집으로 갔다. 피시 앤 칩스 집인데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고 계시고 후라이드 치킨을 맛볼 수 있어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간다고 들었다. 내가 튀기던 닭 말고 남이 튀겨준 닭을 먹을 테다. 주방에서 착오로 오래 기다린 후라이드가 드디어 나왔다. 배가 무척 고팠던지라 호호 불면서 후라이드 치킨을 먹었다. 아이들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최애 비비큐보다 훨씬 맛있단다.

 

 사장님이 테이블로 오셨다. 미안하다며 맥주 한잔 드시겠냐고 물어보시는데 아이들과 다니느라 계속 콜라만 먹던 나는 맥주의 유혹을 거절할 수 없었다. 황송하게 직접 맥주를 따라주시는데 늦게 나온 치킨 때문에 배고팠던 짜증이 맥주 한잔에 싹 사라졌다. 왜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할 생각을 못했을까. 앞으론 혼자서라도 맥주를 한 잔 해야겠다. 한껏 기분 좋아진 우리 셋은 치킨집을 나섰다.

 

 둘째가 말했다. 요기서 조금만 걸으면 며칠 전에 왔던 한인마트 아니야? 과자 하나씩만 사줘 엄마~~ 그래. 가자! 조리뽕과 치토스를 든 남매가 처음으로 인증숏을 요청한다. 찰칵! 런던의 갈색 건물, 빨간 이층 버스를 배경으로 조리뽕과 치토스를 든 남매가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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