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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Mar 29. 2024

하루에 공항 두 곳

비행기를 놓치다.

마지막날

스탠스테드 공항 - 게트윅 공항


체크포인트

스탠스테드 공항은 일찍 갑시다.




 마지막날 아침, 1시 40분 스톡홀름행 비행기를 타려면 10시에 숙소를 출발하고 11시 공항 도착하면 되겠다며 집을 나섰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을 아쉬워하며 여행동안 아침을 먹었던 브런치 카페에 한 번 더 갔다. 아이들이 다음에 런던에 오면 또 여기서 아침을 먹자며 둘이서 즐겁게 다짐한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어서일까 생각보다 조금 늦게 숙소에서 나섰다.

 

 10시 반에 출발해서 빅토리아 역으로 향했다. 여기서 다시 스텐스테드 익스프레스를 타면 공항까지 30분 정도 걸릴 것이다. 서둘러서 기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기차가 바로 출발하지 않는다.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나 보다. 이렇게 저렇게 한 시간을 낭비한 거 같아 마음이 초조해졌다. 12시가 좀 지나 공항에 도착했다. 첫날 지나온 동선으로 아이들을 재촉해서 공항에 들어섰다. 빠른 걸음으로 라이언 에어 부스를 찾아갔다. 티켓 수속을 하는데 옆에서 몇몇 사람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었다. 항공사 직원은 그들과 눈도 맞추지 않고 고개만 젓고 있었다.

 

 직원이 항공권을 주면서 말했다. 너 빨리 서둘러야겠어. 늦었다.


 아뿔싸 수속장에 아비규환인 사람들이 보였다. 명절 때 한국 단골 뉴스 공항풍경. 명절을 맞이해서 해외로 여행 가는 사람들을 비출 때 모습이었다. 머리만 까만 머리에서 노란 머리로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정신없는 공항을 전에 본 적 없던지라 적지 않게 당황했다. 줄 제일 뒤서 서서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거 같아 지나가는 직원을 붙잡고 늦었는데 좀 앞에 서도 될까 부탁해 봐도 소용없었다. 우리는 인파에 끼여 초조하게 출국 심사를 기다렸다.

 

 1시 15분에 파이널 콜인데 1시가 다 되어서 캐리어 검사를 받았다. 분명히 액체류를 모두 빼내었다고 생각했는데 캐리어 세 개 중에 두 개가 추가 검사에 걸렸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사색이 된 내 얼굴을 보면서 애들이 어쩌냐고 묻는다. 애들에게는 연신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내 얼굴만 봐도 괜찮지 않음이 느껴졌나 보다. 일단 최대한 빨리 뛰어 게이트로 내가 먼저 간 다음에 사정해서 뒤에 온 아이들을 태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의 속도 모른 체 캐리어를 다 뒤집어 액체가 있는 곳을 찾아낸 공항 직원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 버려도 되겠냐고 한다. 예상치 못한 아주 작은 액체류들이었다.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을 보자마자 가방에 다시 짐을 쑤셔 넣고 애들한테 이야기했다.

 

엄마만 보고 각자 캐리어 들고 최대한 헤어지지 않게 따라와.


 북적한 사람들 사이를 미친 듯이 캐리어를 끌며 뛰었다. 양쪽으로 나눠지는 게이트 사이에서 전광판을 확인하고 달렸다. 첫째는 잘 따라오고 있었지만 둘째는 힘든지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게이트가 보인다. 마지막 사람들이 탑승 중이었다. 살았다! 싶은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고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그런데, 항공권을 확인한 직원이 날 보더니 여기가 아니란다. 뭐? 스톡홀름행이 아니야? 전광판에 부다페스트,, 가 적혀있었다. 잘못 왔다. 당황한 나를 보더니 스톡홀름 게이트를 확인해 주겠다고 했다.

 

 스톡홀름 게이트는 반대쪽 끝이야. 빨리 가봐. 게이트가 열렸는지 장담을 못하겠지만.


 망했다. 급한 마음에 전광판 게이트를 잘 못 본 것이다. 아이들에게 일단 다시 빨리 가보자고 했다. 처음보다 더 전속력으로 달렸다. 이미 지친 둘째가 자긴 못 뛰겠다고 했다. 일단 캐리어 엄마 줘. 해서 캐리어 두 개를 양옆에 끌고 다시 미친 여자처럼 달렸다. 그렇게 반대쪽 게이트에 다시 도착했다. 게이트엔 아무도 없었다.


 창밖으로 비행기 계단에 10명 남짓한 마지막 승객들이 계단을 오르는 게 보였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부탁했다. 저 비행기 탈 수 없냐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모두 고개를 저었다. 자긴 게이트를 열 수 없다며 항공사 직원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서비스부스를 알려준다. 눈앞에 비행기가 보이는데 어떻게든 타야겠다.


 아. 내 앞에 여자 한 명이 울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역시나 항공사 직원은 그 여자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었다. 지금 저기 출발 전인 비행기인데 어떻게 안되냐고 물었다. 제발... 아직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내려가게만 해주면 안 될까? 제발... 안된단다. 게이트는 닫혔단다. 떠나지 않는 나를 보고 이야기한다. 자기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표가 있는지 확인해 주는 일이란다. 그래? 그럼 다음비행기 표가 있어?? 키보드 타자 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다. 그 몇 초가 너무나 길다.


 오늘표는 없단다. 이번주엔 더 이상 표가 없단다.


 이번주 표가 없다고???

 

 이 공항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눈앞에서 비행기를 놓쳤다...


 아이들을 돌아봤다. 아까 다시 게이트를 찾아 달릴 때 뒤를 보니 둘째가 대성통곡하며 날 따라오고 있었다. 뛰고 울어서 볼이 벌겋게 달아오른 둘째를 달랬다. 아무 성과 없이 서비스부스에서 다시 게이트로 갔다. 눈앞에 우리가 타야 했던 비행기가 아직 있었다. 사태를 알리기 위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비행기가 출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 나온 사례가 있단다. 비행기 기장의 마음을 돌려 비행기에 무사히 탑승한 사람의 이야기. 그 사람은 비행기 기장 앞에서 눈물로 호소했다고 한다. 나와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서라도 타기 위한 노력을 하라고 했다. 할 말이 없었다. 왜냐면 내가 놓친 거니까. 난 남편이 시키는 대로 했다. 비행기 놓친 이 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 여기 있다며 기장과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들었다. 앉아있던 아이들에게도 여기로 와서 아빠가 이렇게 하면 비행기 문을 열 수 있다고 했다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라고 했다. 아이들은 얼마 서있지 않고 나를 말리더니 의자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나는 계속 태워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드디어 기장이 날 봤다. 손가락으로 손목에 찬 시계를 집으면 노노라고 했다. 그리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래, 늦었지 내가.... 남편에게 기장의 반응을 이야기했다. 더 하란다. 우는 시늉에 발도 동동 구르란다. 할 수 없었다. 난 계속 손을 흔들었다. 제발 태워달라. 부기장이랑 눈이 마주쳤다. 나를 딱하게 보는 거 같았다. 또 태워달라는 제스처를 했다. 딱하게는 보았지만 이내 시선을 외면했다. 아무래도 떠나지 않는 나를 보고 두 기장 모두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그렇게 끝까지 서 있던 나는 비행기가 활주로로 나가는 걸 보고서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진정된 듯 보였다. 둘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울었어? 엄마가 우리 버리고 가는 줄 알았어. 엄마가 어떻게 너네를 버리고 가. 먼저 가서 태워달라고 할라 했지... 뛰느라 힘들었지? 응.....


눈앞에서 비행기를 놓쳤다는 말만 들어봤지 실제로 내가 겪을 줄이야.


내가 게이트만 잘못 보지 않았더라면.

캐리어 세 개에 액체가 있는지 한 번씩 더 확인했더라면.

공항이 이렇게 붐빌 것을 알았더라면.

기차 배차간격을 미리 생각했더라면.

아침을 사 먹지 않았더라면.


모두 내 잘못이었다.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나.


라이언에어는 이번주는 표가 없다고 하고

본격적인 여름휴가의 시작이라 여기서 더 있기도 힘들 거 같고,,,


남편이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 게트윅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권이 있단다.

집으로 돌아오란다.


 수속할 때 항의 하던 이도 서비스 부스에서 울던 여자도 다 나와 같은 처지였구나. 얼굴 붉히고 울며 항의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어쨌든 그들도 아무런 해결책을 얻지 못했다. 그래 돌아가려면 일단 표를 사고 이 공항을 나가자. 출발하는 곳은 들어오기만 해 봤지 어디로 나가야 하나. 보이는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딱한 얼굴로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비행기 타러 가는 사람들을 거슬러 거슬러 비상구로 우리를 이끌었다.


 비행기를 놓쳤구나. 이 공항은 굉장히 붐벼서 꼭 비행기 출발 세네 시간 전에는 와야 해.

 그렇구나.. 알겠어..


 공항 직원은 임시 출구 같은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다른 직원에게 설명을 한 후 우리 항공권을 가져갔다. 지하철 패스 같은 개찰구에서 항공권을 찍고 우리는 다시 공항 로비로 나왔다.


 스탠스퍼드 공항이 런던 북쪽이라면 게트윅 공항은 런던 남쪽에 위치한다. 다시 스텐스터드 익스프레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게트윅 익스프레스를 타고 게트윅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8시 비행기였고 공항에 도착하니 5시쯤 되었다. 이 공항도 사람이 많으면 어쩌나 초조한 마음으로 공항에 들어섰다. 그런데 웬걸. 게트윅 공항은 항공사 부스가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에 깔려 있는 항공사 앱에서 체크인된 항공권의 바코드만 찍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줄을 선 이가 아무도 없는 건 시간대 때문인지 아님 정말 공항마다 특성이 있는 건지 지하철 타듯이 게이트를 통과했다. 캐리어를 맡길 시에만 무인 self 수속이 필요해 보였다. 짐을 기내에 싣는 경우엔 게이트만 통과하면 따로 할 일이 없었다. 액체류 심사도 줄을 아무도 서있지 않아서 바로 할 수 있었다.


 휴, 일단 무사히 들어왔다. 저녁시간이니 저녁 먹을 곳을 찾았다. 배는 전혀 고프지 않았다. 일단 어디에 앉고 싶었다. 종일을 탈 것과 씨름한 기분이었다. 전광판이 잘 보이는 음식점에 자리를 잡았다. 연신 전광판을 보면서 스톡홀름행 비행기의 게이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그새 다 잊었는지 언제 비행기를 놓쳤냐는 듯 저녁도 잘 먹고 각자의 미디어 시간을 챙겨서 쓰고 있다.


 멘털이 무너진 건 나뿐이구나. 남편 볼 면목도 없고 돈은 돈대로 날리고 무엇보다 셋이서도 잘할 수 있단 자신감이 무너졌다. 정신이 멍했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비행기를 놓치기 전은 초단위로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스탠스테드에서 게트윅까지는 어떻게 왔는지. 지하철과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더니 게트윅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얼른 집에 가서 내 방, 내 침대에 눕고 싶다.


 거의 자정 무렵에 공항에 도착한 우리를 남편이 반겼다. 별말 없이 집에 가자고 한다. 다음 날 비행기 놓친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큰 경험을 했다는 말로 위로해 주었다. 웬만하면 위로를 건네지 않는 분인데. 아무도 나를 질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며칠간 자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건 나 스스로였다. 혼자서 잘할 수 있다며 자신하다 커다란 구멍에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한동안은 런던 여행 사진도 보고 싶지 않았다. 현실부정. 하지만 시간은 지나갔고 본격 방학에 매일 아이들 밥을 세끼씩 차리며 서서히 그날의 충격을 잊어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 지났고 다음 여행이 다가왔다. 이번엔 공항에 무조건 빨리 갈 테다.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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